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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호 2024년 12월] 뉴스 단대 및 기과 소식

“국가가 심판 맡는 시대는 갔다, 기업과 함께 선수로 뛰어야”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

관악경제인회 조찬포럼

국가가 심판 맡는 시대는 갔다, 기업과 함께 선수로 뛰어야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


 

중국 공급 과잉, 미국 무역 규제

샌드위치신세된 한국 해법은


중국은 사회주의에 시장 경제를 접목해서 미국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전기차·2차 전지·디스플레이·모바일 기기 등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물론 전통적 제조 강국인 독일·일본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죠.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품질은 조금 못 미치는데 가격이 절반도 안 됩니다. 중국 기업도 이런 식으론 돈 못 벌어요. 국가가 나서서 손실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공급과잉 전략이죠. 트럼프 대통령의 일론 머스크 기용은 민주주의에 계획 경제를 접목하겠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심판인 시대는 갔어요. 우리 정부도 선수로 나서야 합니다.”

관악경제인회가 125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조찬포럼을 개최했다. 이희범(전자공학67-71) 명예회장, 서병륜(농공69-73) 수석부회장, 조완규(생물48-52) 전 모교 총장 등 6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이 ‘Physical Embodied AI’를 주제로 연단에 섰다. 고 본부장은 연세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며 1999년부터 현재까지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회 이상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고, 한국 증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그랜드챌린지 위원을 겸하고 있다.

“Physical Embodied AI는 기존 제조업에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패권 경쟁 중인 미국과 중국이 첨예한 경쟁을 벌이고 있죠. 전기차에 AI를 넣어 자율주행 자동차를, 인간형 로봇에 AI를 넣어 가사도우미 로봇을 만드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인간형 AI 로봇은 군용으로 개발될 가능성도 크고요. GPT 같은 AI는 시청각 언어로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결과물을 보여주긴 하지만, 물리적 실체는 없습니다. Physical Embodied AI가 훨씬 복잡한 건 당연하죠. AI 기술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더 많은 감각과 운동의 영역까지 나아갈 겁니다. 궁극적으로 AIPDA(Personal Digital Agent), 로봇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범용 로봇으로 진화할 거예요.”

IT 강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는 이러한 격변기를 잘 준비하고 있을까? 고태봉 본부장은 회의적으로 봤다. 산업화 시대의 모범생으로서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를 구축했지만, 네이버·카카오 같은 글로벌 IT 기업을 배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미·중 패권 다툼 속에서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맥을 못 추고 있을 뿐 아니라 미개척 시장을 빼앗기고 있고, 오랜 동맹국인 미국이 자국 내 우리 기업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우리나라 수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나라가 중국이었고, 그다음이 미국이었습니다. ·중 패권 경쟁의 영향으로 누구보다 큰 고난을 겪을 수 밖에 없죠. 아세안, 남미, 중동, 아프리카, 인도 등 소위 글로벌 사우스 지역이 돌파구로 떠오르는데, 중국이 이미 빠르게 선점하고 있습니다. ·중 무역 전쟁에도 별 다른 타격 없이 건재한 이유죠. 현대기아차가 러시아 자동차 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0%입니다. 그 빈 자리를 중국 자동차가 파고들어 60%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요. 중국과 국경 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의 모디 총리마저 시진핑 주석의 손을 잡았죠.”

고 본부장은 미·중 패권 경쟁의 양상을 양국 대표 IT 기업의 성과를 비교하며 설명했다. 2008년부터 애플이 추진했던 자동차 사업이 결국 중단된 반면 샤오미는 불과 3년 만에 완성된 전기차를 선보였다. 중국 내 여러 기업들이 분야를 나눠 맡고 힘을 합친 것.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한 러시아가 여러 나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는 것을 거울삼아 자급자족을 목표로 자국 내 산업을 육성한 결과다. 미국에서 신형 로봇 한두 개 나올 때 중국에선 10개 이상 나온다. 그러나 미국도 가만있을 리 없다.

“BYD가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량이란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테슬라는 자율주행으로 국면 전환을 꾀했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기존 전기차나 내연기관차는 인터넷 안 되는 스마트폰 같은 것이 돼 버릴 겁니다. 아이폰이 출시되고 피처폰이 멸종된 것처럼 시장에 대변혁을 일으킬 거에요. 중국의 자율주행은 중국 내에서만 가능하지만, 미국의 자율주행은 스타링크를 통해 세계 어디에서나 가능하죠. 테슬라는 완벽한 자율주행을 달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로봇택시 사이버캡을 출시했습니다. 그야말로 막상막하죠.”

대외 여건이 숨통을 점점 조여오는데, 국내 상황은 답답하기만 하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급속한 고령화, 기업가 정신의 실종까지. 그나마 대기업 중심으로 지금까지 잘 버텼지만, 기존 시장을 지키는 데 급급할 뿐이다.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구축하는 데엔 세계 최고였던 우리나라가 AI 관련 인프라 구축엔 난항을 겪고 있다.

고 본부장은 아빠가 점심을 굶어도 아이 교육비는 아끼지 않았던 대한민국이다. 여태껏 한 번도 준 적 없었던 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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