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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호 2023년 8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 탐방: 서울대, 서울 대형건물 중 온실가스 배출 1위라니 할 일 많아요

환경동아리 ‘씨알’


동아리탐방 환경동아리 ‘씨알’
 
서울대, 서울 대형건물 중 온실가스 배출 1위라니 할 일 많아요



지난해 9월 씨알은 기후위기대응을 요구하며 서울에서 열린 기후정의행동에 참여했다. 


탄탄한 지식 토대로 환경운동
음식물쓰레기통 설치 등 변화 


폭염이 절정에 달한 7월 30일 오후, 학생회관에 있는 모교 중앙 환경동아리 ‘씨알’의 동아리방에 들어서자 열려 있는 커다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땀 흘리며 온 기자를 본 이 강(정치외교22입) 대표가 넌지시 ‘에어컨 틀어드릴까요’라고 물어왔다. 배려가 고마웠지만, 에어컨 가동이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에 지양했으리라 짐작했고, 그 뜻을 존중하고 싶었다. 신다솜(미학20입) 부원이 머그컵에 떠온 냉수를 홀짝이는 사이 몇 줄기 바람이 불어들고 차츰 땀이 식었다. “생각보다 견딜 만하다”는 말에 이 강 대표는 “저흰 이렇게 지낸다. 다행히 동방이 북향이라 시원하다”며 웃음지었다. 

씨알은 환경을 지키기 위해 공부하고 실천하는 동아리다. 1993년 결성됐다. 정규 활동은 스터디와 프로젝트. 지난 학기 4개의 스터디 팀이 꾸려져 데이터 산업과 환경의 관계, 기후정의와 인권 및 동물권, 도시계획과 환경, 전쟁과 환경·평화를 주제로 공부했다. 3개의 프로젝트 팀은 플라스틱·의류 업사이클링, 학내 다회용기 활성화,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매주 1회 30여 회원 전체가 모여서 각 팀의 활동을 공유한다.  

씨알의 특징은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실천에 나선다는 것이다. 매 학기 초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신입 회원들과 ‘첫걸음’ 세미나를 연다. 1학기엔 기후 정의를 공부했다. 동아리방 책장도 도서관에 있는 환경 주제 서가로 착각할 만큼 환경 관련 책이 빼곡했다. 환경에 있어선 대부분이 비전공자라 서로 의논하면서 배워간다. ‘알고 하면 환경 운동도 달라진다’는 것이 씨알의 오래된 지론이다. 

미학을 전공한 신다솜씨는 “전공과 환경이 관련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는데, 씨알에서 ‘기후변화의 심리학’이란 책을 함께 읽고 환경에 관련된 미의식, 감수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며 “지식이 부족하면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막연히 일회용품 안 쓰는 게 환경 보호인가 생각하는데, 공부를 하다 보면 환경이 많은 것과 연결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면 실천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강씨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실천할 수 있고, 삶도 달라진다. 얼마 전 채식주의와 환경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나서 힘들어도 채식을 실천해보고 있다”고 했다. 

학생회관에 없던 음식물 쓰레기통을 만든 것은 씨알의 성공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다. 관리 면에서 위험부담이 커 학교 측의 우려가 컸지만, 끈질긴 협의 끝에 설치할 수 있었다. 덕분에 건물 내에서 배달 음식 등으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가 크게 해소됐다. 지난 학기엔 도서관에 플라스틱 업사이클링(재활용)을 위해 병뚜껑 수거함을 설치했다. 처음엔 잘 안 모여서 걱정했지만, 학생들의 협조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2학기 땐 병뚜껑으로 재활용 제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씨알은 모교 지속가능발전연구소와 협력해 학내 에너지와 전력 사용량 등 환경 지표를 모니터하고 있다. 서울 관내 대형건물 중 온실가스 배출 1위, 에너지 소비 1위 등 환경 관련 지표에서 불명예 타이틀이 많은 서울대에서 환경 운동하기 버겁지 않을까. 동아리방 입구에도 ‘서울대의 에너지 전환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에서 환경 활동을 하는 의미가 큰 것 같아요. 그런 서울대를 더 친환경적으로 바꿨을 때 서울시, 한국 사회에 우리 일이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다만, 학교와 협업하다 보면 저희 주장에 동의와 공감은 많이 해주셔도, 대학의 주 역할인 교육이나 연구와 비교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가 뒤로 밀릴 때가 있습니다. 예산 배분에서도 환경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가 후순위가 돼서 활동이 힘들 때도 있고요.”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 혼자만 애쓰나’ 싶을 때, 완벽한 실천이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마다 무너지기 쉽다. 씨알 부원 모두 한 번씩은 거쳐간 고민이다. 이 대표는 “완벽하게 친환경적으로 산다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내가 바꾼 것들을 생각하면서 계속 실천해 가야죠. 환경 문제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에 지칠 땐  얘기를 나누는 게 생각보다 큰 힘이 돼요. 저는 고등학교 때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발간한 평가 보고서를 읽고 환경과 기후에 관심을 갖게 됐거든요. 씨알에 와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굉장히 큰 힘을 얻었어요.”

신다솜씨는 “한때 카페에서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할 때마다 ‘귀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눈치 보였는데, 씨알에선 그게 자랑거리가 되더라”고 했다. 동아리방에 으레 굴러다닐 법한 일회용 젓가락도 씨알엔 없다. 가정집처럼 스테인리스 수저 여러 벌을 통에 꽂아놓고 쓴다. “활동 보고도 꾸준히 올라오고, 부원들이 쓰는 환경 관련 글도 공감돼서 들어왔거든요. 기숙사에서 쓰레기통 비울 때마다 쓰레기 줄여야지,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씨알에서 잘했다 해주니까 쓰레기 줄이는 게 즐겁더라고요. 환경을 위하는 게 손해 보고,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환경운동에는 연대가 필수다. 모교에 환경 관련 동아리만 씨알을 포함해 6곳. 서울대환경동아리연합회의라는 이름으로 뭉쳐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곤 한다. 올해 봄축제에도 연합회의와 지속가능발전연구소, 총학생회가 협력해 부스에서 음식을 팔 때 다회용기에 담아 내는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작년 9월엔 기후정의의 날을 맞아 전국 환경 관련 단체가 모이는 기후정의행진에도 참여했다. 이 강 대표는 “앞으로 학교 외부 단체와 연대를 늘려갈 것”이라고 했다.  

동아리방에 들렀을 때 방명록을 쓰는 것이 소소한 전통.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요즘 뭐가 맛있고, 시험 치기 싫고’ 같은 시시콜콜한 잡담을 적고 가는 노트가 수십 권째 쌓여가고 있다. 올해 초 파워플랜트에서 동아리의 역사가 담긴 자료를 모아 아카이브전을 열기도 했다. 1년에 한 번 홈커밍데이를 열고 씨알을 거쳐간 수십 명의 선배들 앞에서 활동 내용을 발표하고, 격려도 듬뿍 받는다. 이 강 대표는 지난해 씨알 창립 멤버 선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씨알’은 함석헌 선생이 ‘민중, 민초’라는 뜻으로 쓰던 단어인데, 멋있어서 동아리 이름으로 지었다”는 비화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동아리를 후원하는 선배들도 있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끓는 지구’ 시대로 돌입한 가운데, 씨알에도 신입 지원자가 급격히 늘었다. 동아리엔 좋은 일이지만 환경 문제가 그만큼 심각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고 했다. “저희도 얘기하다 보면 그때그때 달라져요. 어떤 날은 절망하고, 어떤 날은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싶죠.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요.”(이 강)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