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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2023년 5월] 뉴스 모교소식

서울대 축제 가면 바보? 심심할 틈이 없어요

모교 봄 축제 ‘리오, 더 오리’

5월 9~11일 관악캠퍼스 잔디광장 등 캠퍼스 일원에서 봄 축제 ‘리오 더 오리’가 열렸다. 사진은 축제 첫날 잔디광장에 텐트를 설치하고 야간 캠핑을 즐기는 모습. 


서울대 축제 가면 바보? 심심할 틈이 없어요
 
모교 봄 축제 ‘리오, 더 오리’
 
잔디광장 완공 후 처음 열려 
‘바나나 전시 논란’ 등 풍자도
본회서 축제비용 일부 지원 


“서울대 축제가 재미없다고요?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어요!”

서울대 축제는 유독 기대감이 낮다. ‘서울대 3대 바보 중 하나는 서울대 축제 가는 사람’이라는 유구한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축제 현장에서 만난 재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5월 9~11일 관악캠퍼스 잔디광장에서 봄 축제 ‘리오, 더 오리’가 개최됐다. 모교 축제 전담기구인 축제하는 사람들이 주최하고 본회를 비롯해 SKC, 본디, 한국파이롯트, NH농협은행 등 기업들에서 후원했다.  

팬데믹 이후 두 번째 대면 봄 축제인 이번 축제는 지난 겨울 완공한 잔디광장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아트마켓과 푸드마켓, 게임, 버스킹과 공연, 캠핑, 게임 토너먼트 등이 3일간 이어졌다. ‘교조인 학은 되지 못했어도 누구보다 축제를 즐기는 오리’라는 모교 축제 마스코트 ‘리오’가 메인 테마였다.  

학생들이 직접 차린 축제 부스에선 재기발랄함이 엿보였다. 첫날부터 ‘서울대 축제에 나타난 카텔란의 바나나’가 SNS상에 화제가 됐다. 최근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국내 전시에서 벽에 실물 바나나를 붙여둔 작품을 모교 재학생이라고 밝힌 관람객이 먹어버린 일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학생들이 준비한 ‘현대미술 너무 어려워요’ 부스는 이 논란을 아이디어로 승화시켰다. 화제의 전시와 똑같이 덕트 테이프로 붙여둔 바나나를 먹고, 껍질을 다시 붙이면 ‘예술가 증서’를 증정했다. 용기 있는 관람객이 나타나자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합세해 박수를 보냈다. ‘아날로그 사진관’ 부스는 19세기 사진술인 습판 사진 방식의 카메라로 즉석 사진을 찍어줘 인기를 끌었다.  

뜨거운 봄볕에 장터 부스에선 아이스크림과 음료 등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일회용기 없는 봄 축제’를 표방해 잔디광장 한쪽에서 다회용기를 무상으로 대여해 줬다. 관악 게임 토너먼트 결승전에선 팀전으로 인기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많은 이들이 흥미롭게 지켜봤고, ‘리오 올림픽’ 코너에선 물총 쏘기와 계주 등 참가자들이 잔디광장을 내달리며 땀을 뻘뻘 흘렸다. ‘인생 네컷’과 양궁, 미니 축구, 낚시 게임 부스에도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마침 모교에 견학 온 고교생들이 축제장에 들러 흥미롭게 구경하기도 했다. 




1. 봄 축제가 열린 관악캠퍼스 잔디광장 전경. 완공된 잔디광장을 사용한 첫 축제다. 2. 애니메이션 코스튬플레이를 하고 축제장에 온 학생들. 3. 관악 게임 토너먼트에서 팀을 이뤄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를 플레이하는 학생들. 


축제 첫날 밤엔 잔디광장에 여러 개의 텐트가 설치돼 캠핑을 하며 공연을 즐겼다. 그밖에도 학생들이 준비한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공연이 지속적으로 열렸다. 걸그룹 ‘잇지(ITZY)’가 초청 공연을 펼친 폐막제 때 잔디광장 일대는 발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찼다. 

축제 현장에서 만난 신입생들은 ‘서울대 축제가 재미없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막상 와보니 재밌고 즐겁다’고 말했다. 코스프레 차림으로 등장해 시선을 끈 애니메이션 동아리 ‘노이타미나’ 새내기 회원들은 “동아리 부스는 없지만 홍보 겸 나왔다”며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고 있었다. 먹거리를 들고 축제장을 나서던 재학생 최모씨(자유전공23입)와 신모씨(자유전공23입)는 “잔디광장에 한정해서만 축제 분위기고 다른 곳은 조용한 게 아쉽다. 학교 전체를 활용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한다. 또 부스 말고도 즐길거리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재학생 오모씨(화학교육21입)와 박모씨(화학교육21입)는 “잔디밭이 학교 중앙에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다만 평지여서 버들골에서 열린 축제보다 공간이 휑해 보이고 더 채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또 “시시한 분위기가 아니라 재밌게 참여하는 걸 보니 많이 준비한 게 느껴지고 대학교 축제답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학교는 연예인들이 많이 와서 서울대 축제가 상대적으로 재미없단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막상 겪어보면 다르다”고 말했다. 

모교 학생회는 2003년부터 산하에 축제 전담 기구 ‘축제하는 사람들(축하사)’을 만들어 축제 기획과 진행을 하고 있다. 구현준(간호20입) 부축장은 “코로나 때도 비대면 축제를 계속한 덕분에 작년 대면 축제를 재개할 때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새 잔디광장은 참고 자료가 없어 고생하긴 했지만 광장 공개 시점에 맞춰 축제를 열게 되어 좋았다. 총동창회에서 많이 지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50년 전 대학신문엔 ‘파트너 구해 줍니다’
 
청년문화 상징이란 책임감 커
권위주의 정권시절 휴교령 빈번



1975년 축제를 즐기는 남녀 학생들.


학원사태와 휴교령이 빈번했던 1970년대. 힘든 시절에도 대학생들은 대학문화이자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축제를 공들여 가꿨다. 모교의 경우 1975년 이전까지 곳곳에 흩어진 단과대별로 강한 개성을 지닌 축제들이 성행했다. 문리대 ‘학림제’, 공대 ‘불암제’. 법대 ‘낙산제’, 상대 ‘홍릉제’, 사대 ‘청량제’, 농대 ‘상록제’, 가정대 ‘아람제’, 치대 ‘저경제’, 약대 ‘함춘제’ 등이다. 당시 축제는 학술강연회, 토론회, 체육대회, 음악회, 촌극, 모의국회 등 다양한 학생 행사가 집약된 장이었다. ‘대학생들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는 주제 의식도 분명해 문리대는 축제에도 4·19 정신을 계승하는 내용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축제에 임하는 자세가 마냥 진지할 수만은 없을 터. 마지막날엔 카니발을 열거나 운동장에 모여 이성 파트너와 블루스, 디스코, 포크댄스를 추는 것이 관례였다. 여대생 수백명이 축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커플들의 앞엔 1960년대 주로 마시던 막걸리가 아닌 생맥주가 놓였다. 인생의 반려자를 축제에서 찾은 학생도 많았다. 
 
1975년 관악캠퍼스 이전 후 학도호국단 주관으로 범서울대 축제인 ‘대학축전’이 열렸다. 학생 주도의 축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반발도 있었지만 7일간 열린 제1회 대학축전은 성대했다. ‘동창의 날’도 있어 마치 홈커밍데이처럼 총동창회장과 동문들이 참석해 축제에 어울렸다. 아직 관악으로 이전하지 않은 단과대학은 각각의 캠퍼스에서 축제를 열었다. 

1970년대에도 외부 연예인이 축제에 초청됐다. 고려대 출신 학생 가수 김상희씨가 모교에 초청되어 ‘대머리 총각’을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언제나 축제 즈음엔 파트너 구하기가 고민이었던 듯하다. 1976년 가을 축제를 앞두고 대학신문에 ‘파트너가 없는 남녀 학생들을 짝지어주겠다’는 공고가 실렸다. ‘접수장소인 학생회관 3층 여학생부실이 신청자로 장사진을 이뤘는데, 성비는 남성이 9 대 1로 압도적이었다’고 기록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서구 문화가 만연한 것을 반성하며 축제에서도 민속문화의 비중이 커졌다. 1979년 모교 축제 중 열린 봉산탈춤 공연에는 1000명의 관객이 모였다. 당시 출연자 몇 명이 빠져 공연을 취소하려 했지만 뜨거운 성화에 못이겨 강행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