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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2023년 4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 탐방: “동창회 모임에 어울리는 향은 나무향 아닐까요”

동아리 탐방 향기 동아리 ‘미누시아’ 

동아리 탐방
향기 동아리 ‘미누시아’ 
 
“동창회 모임에 어울리는 향은 나무향 아닐까요”



모교 향기동아리 '미누시아' 회원들이 향료를 배합해 향을 만드는 조향 활동을 하고 있다. 


직접 만든 향 학내 곳곳에
오감 활용 체험형 ‘향 전시’도 

‘향수 모으는 사람들의 모임일까? 디퓨저를 만드나?’ 모교 향기 동아리 ‘미누시아’를 접하고 든 의문이다. 4월 6일 학내 카페에서 만난 이유빈(수의학18입) 회장과 강해담(조소20입)·김성민(화학22입) 회원은 “향을 내 언어로 표현하고, 만들어 보고, 관심사와 경험을 향으로 엮어 예술로 만드는 활동까지 하는 동아리”라고 설명했다. 

“향은 참 쉬우면서도 어려워요. 문법도, 공식도 없어서 더 재밌죠.” 2018년 설립한 미누시아는 30여 회원이 활동 중이다. 회원들이 향에 빠져든 계기는 다양하다. 향수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공감각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어 찾아온 미술 전공생, 이유빈씨처럼 차나 술에서 나는 향이 궁금해 온 회원도 있다. 강해담씨는 후각이 기억을 불러오는 강렬한 경험을 한 것이 계기였다. “향은 즉각적으로 사람에게 뭔가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레몬향이라고 하면 상큼한 느낌이 확 오듯이요. 소외되기 쉬운 후각의 정서적인 역할에 관심이 생겼죠.” 

회원들은 주1회 스터디를 열어 향을 공부한다. 조향사를 초청해 강의를 듣기도 한다. 분자 단위 향료를 배합해 직접 향을 만들고, 방학 중엔 직접 기획한 ‘향 전시’를 연다는 점에선 예술이나 창작 동아리의 성격도 있다. 이들이 어제 만든 것이라며 향이 나는 액체가 담긴 조그만 통을 꺼냈다. 같은 꽃을 주제로 만들었다는데 코를 대보니 저마다 느낌이 달랐다. 

“‘장미향’이라고 해도 그걸 구성하는 분자들의 향은 완전히 달라요. 우선 분자마다 향을 맡고 ‘바나나껍질 향이다’, ‘쓴 것 같다’처럼 각자의 감상을 나누죠. 이때 모두 생각을 마치기 전까지 절대 말하지 않는 게 룰이에요. 그걸 조향 언어로 다시 정리하고, 공부한 다음 직접 향을 만들어 보는데 사람마다 달달하거나 싱그럽거나, 각기 다른 장미향이 나와요. 만들다 보면 코가 지치기도 하고 배도 고파져요(웃음).” 
 
학내에 미누시아의 향을 퍼뜨리기도 한다. 지난 가을 학교와 협의해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 화장실에 직접 만든 향을 배치했다. “도서관엔 시원한 나무 향을, 다양한 학생이 어울려 지내는 학생회관엔 다채로운 과일이 섞인 향을 내려 했다”고 했다. 향을 맡고 동아리에 찾아온 이들도 있다. 가끔은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  

활동의 백미는 방학 중 여는 향 전시. “디퓨저나 시향지 몇 개 놓는 게 아닌, 후각을 시각, 청각과 결합해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지난 겨울 ‘코스요리’ 콘셉트로 향 전시를 열었어요. ‘페르세포네 설화’에서 ‘석류, 스틱스 강, 수선화’ 등의 심상을 추려서 향을 개발하고, 시간차를 두고 체험하게 했죠.” 드라이아이스로 향을 퍼뜨리고, 파이나 젤리 등 다양한 물성으로 향을 전달하는 시도도 했다. 사진만 봐선 여느 미술 전시와 구분되지 않았다.

“저희 목표는 향의 재조명이에요. 향이란 게 아직은 ‘사람에게 나는, 공간에서 나는 향’처럼 소유의 영역으로 이해되는 것 같은데, 거기서 벗어나 향을 콘텐츠화 하고 경험의 영역에 끌어들이고 싶어요. 꼭 내 몸에 뿌리지 않아도 영화나 공연처럼, 일시적으로 느끼고 경험했을 때 아깝지 않고 즐거울 수 있게요. 영화도 슬프고 우울한 작품이 있듯이, 대중적으로 좋은 향은 아니라도 향수를 자극하거나 여운이 남는 향으로 확장하고 싶어요.”(강해담) 
 
‘동창회 모임에 어울리는 향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재밌는 질문’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건 나무의 이미지네요. 동창회가 저희의 기반, 뿌리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건물에 놓는 향이면 ‘샌달우드’, ‘화이트우드’같이 너무 무겁지 않고 따뜻한 나무 향이 어떨까요? 소나무향도 좋지만, 서울대니까 조금 더 특색을 살려서요.”(강해담) 이유빈씨는 “향을 정할 땐 맥락이 중요하다”며 “음식을 먹는지, 회의를 하는지에 따라 다른 향이 어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각이 핵심인 동아리가 팬데믹은 어떻게 보냈을까. 기지를 발휘한 선배가 있었다. “전 회장님인 공유창(국어교육 17입) 선배님이 군대에 계시면서도 비대면으로 항료 키트를 보내서 집에서 맡아보고, 줌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해주셨어요. 감사한 일이죠.”(이유빈) “결국엔 사람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촉박하게 전시를 준비하느라 힘들고 막막해도 함께 남아준 사람들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어요. 향과 관련된 차, 술 모임도 하면서 신입들과 유대를 쌓으려고 노력해요.”(강해담)  

마음놓고 쓸 동아리방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동아리가 소장한 300여 개의 향료는 학생회관 캐비닛에 보관하고, 동아리연합회실이나 빈 강의실을 빌려 쓰고 있다. 김성민씨는 “빌려쓴 공간은 꼭 환기를 하고 나온다. 안 그런 동아리가 어딨겠냐만 동아리 특성상 공간이 꼭 필요해서 아쉽다”고 했다. 분자 단위의 향료를 구입하고 관리할 땐 김성민씨처럼 화학을 전공한 회원들의 도움이 크다. 

이들은 향을 알고 세상이 더 다채로워졌다고 했다. 요즘엔 코에 꽃가루를 묻혀 가며 캠퍼스 가득한 봄꽃 향을 맡느라 즐겁다. “조향을 시작하고 주변 향을 훨씬 잘 느끼게 됐어요. 화학적, 생물학적 요소가 있지만 향은 공부한다고 잘 아는 게 아니고, 정해진 공식도 없어요. 시각, 청각과 다르게 후각은 무시하기 쉽지만 직관적인 듯, 아닌 듯한 매력이 있어요.”(김성민)

“향과 기억이 연결돼 있다고 하잖아요. 의식적으로 향을 맡으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순간도 더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냥 걷다가도 한 번 더 깊게 숨을 들이쉬게 돼요. 그러면 그 순간이 좀더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이유빈)

박수진 기자

▷향기동아리 '미누시아'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nu_scent_cosme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