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호 2023년 3월] 뉴스 모교소식
포럼: “100년 전 제도로 오늘의 인재 기르고 있다”
국가미래전략원 개원 1주년 교육혁신 세미나
“100년 전 제도로 오늘의 인재 기르고 있다”
국가미래전략원 개원 1주년
2월 23일 모교 국가미래전략원 개원 1주년을 기념해 교육개혁을 주제로 대담회가 열렸다. 유홍림 총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이주호 장관 교육개혁 기조발표
“분과 학문 가르치는 시대 갔다”
전현직 총장 대담서 한목소리
“인구 문제와 경제 위기 모두 교육이 원인이다”, “100년 전 대학 제도로 급변한 세상의 인재를 기르고 있다”.
‘풍전등화’ 같은 교육의 현실에 쓴소리가 쏟아졌다. 2월 23일 국가미래전략원(원장 김병연) 1주년을 기념해 ‘교육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대담회에서다. 관악캠퍼스 우정관에서 열린 이번 대담회는 모교 유홍림(정치80-84) 총장, 오세정(물리71-75) 전 총장, 이우일(기계공학72-76)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김세직(경제79-83) 모교 경제학부 교수가 참여하고 김병연(경제81-85) 국가미래전략원장이 진행했다.
이날 대담에 앞서 이주호(무역79-83)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기조발표를 통해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을 설명했다. 이 장관은 학교, 가정, 지역, 산업·사회 맞춤 교육을 골자로 “AI 기반 코스웨어 형태로 개별화된 맞춤교육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진 대담회에서 패널들이 교육 혁신에 관한 각자의 견해를 내놓았다.
오세정 전 총장은 “인구 문제가 심각한 것은 우리가 교육을 잘 못하기 때문”이라며 “지금처럼 학생들이 틀리지 않는, 정답 맞히기 교육을 해서는 창의성을 길러줄 가망이 없다. 10년 동안 허송세월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대의 입시정책은 대학은 물론 초중고 교육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지만, “막상 와서 보니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더라”고 토로했다.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수상자가 서울대 수학과에 떨어지고 MIT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 교육부 규정상 올림피아드 성적을 (생활기록부에) 쓸 수 없으니 대학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세세하게 규제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오지선다’ 입시를 하면 자기 생각을 하기보다 남의 생각을 꺼내는 공부를 하게 된다”고 염려했다.
김세직 교수는 “우리가 겪는 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인적 자원, 즉 교육에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교육”이라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 멤버로서 모교에서 ‘창조형 수업’을 진행 중이다.
그는 “인적 자본은 모방형과 창조형으로 나뉜다.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모방인적자본은 90년대부터 그 가치가 급격히 하락한다. 완전히 무용지물이 됐음을 챗GPT가 보여준다. 그럼에도 온 나라가 모방형 인적 자본을 키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수업에서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방법’처럼 정답 없는 문제를 낸다. 입시 또한 부분적으로라도 창의력을 평가해야 한다. ‘살면서 남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것 하나라도 있는가’를 모든 면접에서 물어보자”고 제안했다. “서울대도 하루 면접자 26명 중 2명만 답하더라. 창의성을 기준으로도 학생을 평가할 방법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칸막이 교육’을 허물자는 데도 한목소리를 냈다. 유홍림 총장은 “분과별 칸막이가 왜 문제인지에 대한 깊은 공감대가 선행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대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 창출’ 방법이 새로워지고 있다. 자연과학의 경우 접근 방법에 따라 ‘물리’, ‘화학’, ‘생물’ 등 ‘도메인(domain) 지식’을 창출해 왔지만 이제 ‘주제’에서 시작하는 융합교육이 필요하다. 기존의 분과화된 연구 범위와 방법론으론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가 신설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대학’이 그 예다. 유 총장은 “기존의 분과 지식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왜 새로운 형태의 지식 창출을 위해서 협업과 경쟁을 해야 되는지 서울대와 모든 대학이 공감할 수 있게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오세정 전 총장 역시 “지방사립대는 위기감이 있어 전공의 벽을 많이 낮추는데 수도권은 아직 그렇지 않다. 그러나 언젠간 갈 수밖에 없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새로운 대학 교육 모델을 만들기 위해 설립 준비 중인 태재대학에 비추어 제언했다. 한국의 ‘미네르바 스쿨’로 불리는 태재대학은 ‘무(無) 전공’ 체제로 전공과목 일정 수를 이수하면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글로벌 순환 캠퍼스’를 표방해 학생들은 4년간 5개국을 이동하며 생활한다.
염 전 총장은 “지금 대학 시스템은 20세기형 대량 생산 체제에 맞는 시스템”이라며 “태재대학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학부 체계를 완벽하게 바꿨다.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자기주도, 소통과 협력, 다양성과 공감능력, 지속가능성 등을 가르친다. 교육부에서 ‘왜 역사, 철학을 안 가르치냐’더라. 그렇게 쪼개진 분과 학문을 교양이라고 얘기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우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100년 전과 똑같은 제도로 100년간 엄청나게 변한 세상에 대응할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현주소를 짚었다. 그는 “서울대에서 교과서를 바꾸면 (대학들이) 똑같이 바꾼다. 획일화된 시스템을 다양화하도록 규제를 바꿔줘야 한다”고 했다. 한편으론 “교육부가 규제를 풀어도 대학에서 잘 적용하지 않는다”며 “모든 학생이 8학기 동안 똑같은 교과 내용을 듣는데 2년간은 인성 공통교육, 나머지 2년은 반도체 등 관심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골라서 듣는 것은 어떤가”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유홍림 총장은 “교육 혁신은 대학을 핵심 엔진 삼아 정부, 기업이 같이 해야 한다. 벌써 전 세계가 경쟁 체제”라며 “예산 배정에서도 초·중등, 고등, 평생교육을 분절적인 과정이 아닌 하나의 교육 과정으로 생각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