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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호 2023년 2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탐방 칵테일·음료 동아리 휴림  

“알면 알수록 넓고 깊은 술의 세계, 저희 진심입니다”

동아리탐방: 칵테일·음료 동아리 휴림  
 
“알면 알수록 넓고 깊은 술의 세계, 저희 진심입니다”
 
매주 주류 세미나·시음회 열고
동아리표 럼주 독립병입도


모교 칵테일·베버리지 동아리 휴림의 회원들이 동아리방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칵테일 제조를 시연하고 있다


“세상에 맛있는 술이 얼마나 많은데, 소주나 맥주만 알고 살기엔 삶이 너무 아깝잖아요.” 

주도(酒道)의 기본은 나를 알고 술을 아는 것이다. 보통은 주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맞는 술을 찾는 것 또한 주도. 모교 유일의 칵테일·베버리지(음료) 동아리 ‘휴림’은 ‘좋은 술’을 마시며 ‘좋아하는 술’을 찾아 가는 동아리다. 1월 25일 서울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최민규(전기정보공학 2년) 회장과 2019년부터 활동해온 이명섭(약학 2년) 부회장을 만났다.  

“저희의 제1 원칙은 ‘취향 존중’이에요. 모토는 ‘내 입에 맞는 술이 좋은 술’이고요. 주류 동아리를 표방하는 곳은 많지만 저희처럼 술에 진심이고 깊게 탐구하는 곳은 거의 없을 거예요.” 

SNS에 올린 사진 속 휴림의 동아리방은 여느 바를 방불케 한다. 온갖 술이 즐비한 진열장에 업소용 냉장고를 두고, 칵테일 셰이커며 각얼음, 라임까지 갖은 재료를 구비했다. “바 분위기를 내려고 높은 테이블도 선배들이 직접 조립해서 놓았다”고 했다. 이곳에서 매주 2회 회원들이 진행하는 정규 세미나가 열린다. 칵테일 재료와 장비, 제조기법을 알려주고 직접 만들어 함께 마신다. 여기에 비정기적으로 위스키, 보드카, 흑맥주, 이탈리아 와인, 전통주까지 다양한 술이 테이블에 올라온다. 

그중 가장 자주 다루는 술은 칵테일과 위스키. 주(酒)종목이 이렇게 된 덴 이유가 있다. “보통 술에 입문한다면 와인을 생각하는데, 와인은 병을 따면 바로 비워야 해서 가격이나 여러 면에서 부담이 있어요. 여러 병을 여러 명이 조금씩 맛볼 수 있다면 사람이 많을수록 다양한 경험을 할 수가 있죠. 위스키가 그래요. 혼자서 맛보기 힘든 술을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저희 동아리라는 데 자부심을 느껴요.”(최민규) 

“1인 1병은 불가능하지만, 4인 4병은 가능한 곳”이라는 설명. 언제든 소정의 재료비를 내고 동아리방에서 칵테일을 연습해볼 수 있다. “처음엔 잘 아는 달달한 칵테일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더 묵직한 맛의 칵테일로 선회하면서 위스키도 맛보게 되죠. 색다른 맛을 찾다가 와인도 먹고, 직접 만들어 보게 되고요.”(최민규) 이명섭씨는 “위스키를 마시는 게 농축된 향과 맛을 천천히 풀어가는 과정이라면, 칵테일은 잘 조립해놓은 것을 흐트러지기 전에 즐기는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휴림의 독을 그득 채우는 것은 술에 관한 회원들의 ‘이타심’이다. 마시고 싶은 술을 회의에 올려서 ‘동비’(동아리 회비)로 구매하는데, 해외 여행 갔다가 특이해서 한 병, 집에서 홈텐딩(홈 바텐딩) 하다가 같이 먹고 싶어서 한 병, 이따금 선배들이 ‘하사’ 해준 한 병까지 더해 진열장이 빼곡하다. 아무리 맛있는 술로 세미나를 열어도 못 먹어본 회원에게 우선권을 준다. “동아리에서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선배님들께서 툭툭 던져주시는 얘기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이면서 알게 되는 거죠. 그렇게 배운 저희도 내 후배들은 나보다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알고 있는 걸 최대한 주게 되고요.”(최민규) “예전엔 별 일 없이 동아리방에 머물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이거 드셔보실래요’ 권하고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알려줬어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그런 문화가 줄어든 건 아쉬워요.”(이명섭)  




휴림의 다양한 활동이 담긴 SNS 화면 캡처 (인스타그램 @hurim.snu)


입문자를 위해 성격 분류법으로 유행한 MBTI의 칵테일 버전도 만들었다. 달거나 안 달거나(Sweet/Dry), 알코올 느낌이 세거나 순하거나(Boozy/Gentle), 맛이 복합적이거나 단순하거나(Complex/Simple)의 3요소로 취향을 구분한다. ‘SBS’형에겐 칵테일 ‘갓 파더’를 추천하는 식이다. 동아리 창작 칵테일도 있냐고 묻자 “각자 몇 개씩은 있다”며 웃었다. “‘자하연 시리즈’가 있어요. 초심자들에게 한 번 만들어 보라고 하면 이것저것 섞어서 어두운 색이 나오거든요. 자하연 물이 아시다시피….” 이래봬도 동아리 생활 몇 년에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딴 회원이 여럿이다.  

주류 동아리지만 술을 강권하는 일은 절대 없다. 동아리방에선 온갖 귀하고 다채로운 술을 차근차근 음미하고, 이어지는 뒤풀이에선 평범하게 ‘소맥’도 달린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전 알코올을 별로 안 좋아해요(웃음). 취하면 맛있는 술을 더 많이 먹을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처음 동아리에서 위스키를 먹고 ‘이게 뭐야’ 싶었어요. 점점 맛에 대한 민감도가 올라가면서 쓴맛 안에서도 다양한 맛들이 드러나더라고요.”(이명섭) “취하려고, 또는 텐션(분위기) 올라가는 게 좋아서 술을 먹는 사람이 아직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희처럼 맛으로 술을 먹는 사람들도 조금씩 영토를 넓혀가고 있어요.”(최민규)

최근엔 학생 동아리로서 하기 어려운 일도 해냈다. “휴림의 이름으로 첫 독립병입 럼을 냈어요. 같은 증류소에서도 캐스크(오크통)마다 술 맛이 다른데, 원하는 맛을 내려고 원액이 담긴 캐스크를 골라서 독자적으로 숙성시키고,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파는 걸 독립병입이라고 해요. 유통업체 도움을 받아서 동아리원들이 샘플을 맛보고 직접 캐스크를 골랐죠. 저희가 디자인한 라벨을 붙인 독립병입 꼬냑과 싱글몰트 위스키도 곧 출시할 예정이에요.” 

술을 매개로 자신을 알게 되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온 이들은 더욱 넓고 깊게 경험을 뻗치고 싶다고 했다. “저희가 술을 미식의 영역으로 다루고 있잖아요. 음식과 조합이 빠질 수 없는데, 동방에서 조리를 할 수는 없어서 배달 음식 정도만 놓고 먹은 게 아쉬워요. 제대로 음식 페어링 세미나를 열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최민규)   

박수진 기자 

▷휴림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https://www.instagram.com/hurim.snu/?hl=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