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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2022년 1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2000여 팩 보약 달여 지역사회 곳곳에 나눈 ‘산타 아줌마’

고희정 (식품영양87-91) 약촌미가한의원 원장
2000여 팩 보약 달여 지역사회 곳곳에 나눈 ‘산타 아줌마’
 
고희정 (식품영양87-91)
약촌미가한의원 원장



작은 봉사도 함께 하면 큰 의미
예고 없이, 조건 없이 주위 챙겨  


고희정 동문은 본회 직원들에게 ‘산타 아줌마’ 같은 분이다. 때때로 제철 과일과 보약을 넉넉히 보내준다. 산타는 성탄절 시즌을 타지만, 그의 선물은 시즌을 타지 않는다. 안동 사과빵, 추억의 달고나… 어디서 이런 걸 샀을까 싶은 간식들이 상자에 담겨 예고 없이 도착한다. 아무런 청탁도, 민원도 없는 정성이다. 감사한 분이 생각나는 연말, 고희정 동문을 만나러 11월 28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약촌미가한의원을 찾았다.

“제 나이 50이 되던 때였어요. 지천명이라고 그즈음 되니까 주변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마침 총동창회에서 홈커밍데이를 개최하는데 경품을 좀 협찬해줄 수 있겠냐고 문의가 왔었죠. 그때부터 꾸준히 몸에 좋은 공진단 세트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협찬품을 보내고 가만 생각하니, 그런 큰 행사가 있으면 직원들도 할 일이 더 많아지잖아요. 초대받는 동문도 물론 중요하지만 준비하는 직원도 조금은 보살핌을 받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소소한 선물이었는데, 진심 어린 감사의 답장을 보내주셔서 한 번으로 그칠 수 없게 됐죠.”

동창회가 특별해서 보낸 선물은 아니다. 주변의 이웃들, 지인들을 조금씩 챙기다 보니 점점 더 커져 동창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시작은 2017년 여름이었다. 한의원 인근의 문원중학교에서 땡볕 아래 축구 시합을 하다 다친 어린 선수들이 내원한 게 계기였다. 전국에서 모인 축구 꿈나무들이 객지에서 부상당한 게 무척 안쓰러웠다고.

“슬하에 아이 셋을 기르는 엄마의 마음에서 학생들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한약과 붕대, 파스, 연고 같은 간단한 의료용품과 사과를 몇 박스 사서 싣고 학교에 찾아갔죠.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저 나름의 ‘깜냥’을 찾게 됐어요. 돈으로 하려고 했으면 지금도 망설였을 겁니다. 동창회 신문만 봐도 거액을 희사하신 분들이 워낙 많잖아요. 큰돈은 아니지만, 저의 능력과 전문성을 녹여 기부하니까 부담이 덜 되더라고요. 형편이 좀 넉넉해지면 하자고 봉사를 미뤘는데 그때 생각이 바뀌었죠. 봉사하며 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도 영향을 끼쳤고요.”

고 동문은 과천시장애인복지관, 과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 주민센터 등 지역사회 곳곳에 한약과 간식을 전달하고 있다. 20가지 약재를 가미해 직접 개발한 ‘약촌대보탕’과 동네 마실 나왔을 때 그때 그때 눈에 띄는 간식들을 담았다. 주로 향수를 자극하는 옛날 간식이나 지역 특산물 혹은 과자류다. 그러다가 2020년 초 코로나19가 무서운 기세로 번졌을 때 봉사활동에 더욱 매진했다. 감염병이라 대면 진료가 어려워지면서 진료 환자 수가 줄자, 마을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직접 실행하는 기회로 삼았다.



고희정 동문이 동창회에 보내준 간식 선물.


“과천시 한의사 회장을 역임했고 대한여한의사회 대외협력이사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복지관, 보건소, 자원봉사센터 등 지역사회 어느 곳이든 찾아뵙는 게 도리였죠. 예전부터 안면은 있었지만, 뭘 해야 좋을지 잘 몰랐었는데 코로나가 결정적이었어요. 모두가 힘든 재난 상황에서도 더 힘든 분들, 그런 분들을 돕고자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시는 분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게 됐거든요. 약촌대보탕에 간식을 여럿 곁들여 편지와 함께 놓고 오는 거였죠. 시청 같은 정부 기관에선 혹 오해를 사게 될까 봐 처음엔 보내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감염병 비상이 걸리니까 ‘좋은 데 쓸게요’ 하고 받아주셨고 필요한 분들께 나누어주셨죠.”

고 동문은 확진자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확진자를 돌보는 의료인들 또한 누군가 보살펴야 한다는 취지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초대받은 동문은 물론 준비하는 직원까지 챙기는 마음 씀씀이 그대로였다. 지치지 마시라는 응원이 담긴 약촌대보탕을 2021년 한 해에만 2000여 팩을 달여 지역사회 곳곳에 기부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듯, 지난 연말엔 보건소 종무식 때 직원들의 초대를 받아 피자 파티를 함께 했다고.

혹여 실례일지 몰라 조심스럽게 어떻게 한의사가 됐는지 물었다. 모교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는데 공부한 게 아깝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고 동문은 “가천대 한의학과에서 공부했고 뜻밖에 서울대 동문이 많아 외롭지 않았다”고 답했다. 

“모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께서 편찮으셨어요. 어머니께서도 가족 중에 의료인이 있었으면 하셨고요. 은사이신 모수미(대학원75졸) 교수님께서 의료 분야로 가보라고 조언하신 것도 큰 영향을 끼쳤죠. 저뿐 아니라 87학번 동기들에게 다양한 직군으로 진출하라고 독려하셨어요. 그래서 기자, 회계사, 변리사, 한의사 등 전공과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동기들이 많죠. 작년에 졸업 30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모교에서 다시 만났는데, 서로 협력할 일이 정말 많을 것 같더군요. 한의원을 사랑방으로 꾸미면 어떨까 구상 중입니다.”
위로 오빠만 넷 있는 고 동문 5남매는, 둘째 오빠가 육군사관학교로 진로를 바꿨지만, 모두 서울대에 합격한 서울대 가족이다. 조카 중 2명이 모교를 졸업했고, 올해 고 동문의 막내딸이 생활과학대학에 입학했다. 딸과 함께 동창회에 나갈 생각을 하니 설렌다고. 

“저의 봉사활동을 ‘백-백-백 운동’이라고 이름 붙여봤어요. 저처럼 작은 봉사활동도 백지장 한 장씩 나누어 들 듯 여럿이 함께하면 큰일을 할 수 있고,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니 향후 산학 연계처럼 대학과 연계해 지역 사회 안에서 장학사업으로 확장하면 이 역시 멋진 협력이 될 거 같아요. 또한 나누고 소통하며 백세 시대를 보람 있게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지어봤습니다(웃음). 평범한 동네 아줌마인 저를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