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호 2024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한국인 첫 세계은행 부총재…“세계인 90% 인터넷 가능하도록 하겠다”
김상부 (경영92-97) 세계은행 디지털전환 부총재
한국인 첫 세계은행 부총재…“세계인 90% 인터넷 가능하도록 하겠다”
김상부 (경영92-97)
세계은행 디지털전환 부총재
정통부·구글 등 민관 경험
세계 30% 인터넷 사용 안 돼
최근 김상부 동문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은행(WB) 최고위급인 디지털전환 부총재에 선임됐다. 올해 신설된 디지털전환 부총재는 저개발 국가의 인터넷망 구축과 디지털 개발을 통해 국가 간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일을 맡는다. 김 동문은 행정고시 40회 출신으로 옛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대통령실 등에서 근무 후 구글·LG유플러스 등 국내외 디지털 기업을 아우르며 전문성을 쌓아왔다.
9월 3일 부임을 앞두고 미 워싱턴 근교에 자리를 잡은 김 동문을 8월 29일 온라인 화상으로 만났다. 취임 소감을 묻자 “정부에서 시작해 민간, 해외 기업까지 거쳐 다시 공공기관으로 돌아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게 돼 기쁘기도 하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터넷망 구축 등 디지털화는 저개발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수단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개발 국가들이 발전하는 데 이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어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도 많겠지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1년 전 세계은행 총재로 부임한 아제이 방가(Ajay Banga)는 경제 개발에 디지털화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세계은행의 디지털 관련 부서가 미약하다고 판단해 디지털전환 부총재직을 신설했다. 이후 풍부한 디지털 개발의 역사와 경험을 가진 한국 등을 방문해 적임자를 물색했고 민관 양쪽에서 경험이 풍부한 김 동문을 낙점한 것이다.
김 동문이 사무관 시절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맡은 업무가 ‘국가 정보화 사업’ 이었다. 우리나라 전역에 인터넷망을 도입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보화 교육을 추진했다. 정부에서 정보화 기획 업무를 마무리한 후, 민간의 역할이 커지는 것을 보고 2013년 LG 경제연구원, 2019년 LG유플러스로 자리를 옮겨 신산업 개발, 국내외 파트너들과의 사업 제휴 등 전략 업무를 담당했다. 2019년에는 구글로 이직해 컨슈머 공공정책 총괄로 경험을 쌓았다.
공공 영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초대 디지털전환 부총재로서 크게 3가지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 첫 번째가 인터넷 인프라 구축이다. 김 동문은 “전 세계 3분의 1인 27억명 정도가 여전히 인터넷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환경에 있다”며 “인터넷망을 넓히는 일을 1차적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는 인터넷 활용도를 높이는 교육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부터 문자 등 언어에 대한 교육이 따라줘야 한다. 세 번째는 인터넷 활용도가 높아지면 따라오는 보안, 프라이버시 문제 등을 해결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진정한 디지털 개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보가 힘이고, 정보를 모르면 경제 활동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잖아요. 임기 동안 최소 90% 세계인이 원할 때는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생각입니다.”
세계은행의 디지털전환 사업은 한국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동문은 “한국은 풍부한 디지털 개발의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고 우리 정부와 기업이 구축해온 전자정부, 디지털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개발 등의 노하우는 이제 세계적으로도 필요한 자산”이라며 “세계은행의 본 사업이 한국 기업에 기회 내지는 최소 상담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질 것 같다”고 했다.
김 동문은 지금의 자리에 앉기까지 이동기, 정운찬 교수의 가르침이 큰 지침이 됐다고 밝혔다. 행정고시 합격 후 연수 들어가기 전까지 이동기 교수의 연구실 조교를 맡았다. 국제경영학을 강의했던 이동기 교수로부터 전략을 짜는 일과 해외 사업을 펼치는 것에 대해 배웠다. 정운찬 교수는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님은 개인의 안녕이 아니라 사회에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지를 늘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가르침이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에게 서울대는 어떤 의미일까. “제 인생의 첫 성공 사례죠. 서울대 입학은 어린 시절 가장 큰 성취감을 줬던 사건입니다. 그게 밑바탕이 돼 여러 가지 일들을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12시 취침, 6시 기상을 어겨본 적이 없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한 조언에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 가두지 말고 큰 꿈을 갖길 바란다”고 했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다 보면 개인 행복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고요.”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