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호 2024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전기차 화재 원인 다양…공포 아닌 합리적 대응 집중할 때
임종우 모교 화학부 교수
전기차 화재 원인 다양…공포 아닌 합리적 대응 집중할 때
임종우
모교 화학부 교수
열폭주 메커니즘 밝혀 학계 주목
중국산 배터리와 격차 벌릴 기회
지난 8월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 충격 후 또는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차량에 불이 나는 건 예전에도 종종 목격됐지만, 이날 화재는 가만히 세워둔 차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곧이어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스프링클러 미작동 등 여러 요인이 겹쳐 피해 규모가 컸던 데다 원인을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전기차 공포증’을 확산시켰다.
공교롭게도 사고 당일, 열 폭주 메커니즘을 밝힌 임종우 모교 교수팀의 논문이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실려 학계는 물론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임종우 교수를 8월 30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전기차 배터리 열 폭주 화재의 원인은 여러 요소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조 때부터 배터리 셀에 결함이 있거나, 하자 있는 충전기를 사용해 셀에 부담을 줬거나, 주행 중 배터리 셀이 탑재된 케이스에 내구력 이상의 물리적 충격이 가해졌거나, 화재 위험을 미리 제한하거나 탐지하는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 기술에 문제가 있거나, 수천 개 배터리 셀이 모여 있는 배터리팩 내부 하나의 셀에서 발생한 화염이 다른 셀로 번지는 걸 못 막았거나 하는 등 여러 요인의 조합으로 발생합니다. 이러한 요소를 잘 이해하고 끊임없이 개발한다면 배터리 안전성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잇따른 전기차 화재와 관련해 지금은 배터리 셀 제조사에 의혹이 쏠리고 있지만, 그 외 요소들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임 교수의 주장. 잘 관리된 충전기를 사용했는지, 충․방전 중 배터리에 무리가 가진 않았는지, 혹 무리가 가해졌다면 BMS가 이를 제대로 감지하고 보고했는지 등 차근차근 분석해 들어가면 지난번 화재도 분명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원인을 밝혀낸다면 예방도 가능해지는 게 당연지사. 열 폭주 메커니즘을 규명했으니 배터리 폭발로 인한 화재도 없어지지 않을까.
“저희 연구팀 성과는 배터리 셀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을 방사광 가속기를 활용해 관찰했다는 점, 음극에서 나온 가연성 에틸렌 기체가 양극으로 이동해 산소 발생을 촉진하고 이 산소가 다시 음극으로 이동해 에틸렌 기체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자가증폭루프’를 밝혀냈다는 점 등입니다. 열 폭주 분석방법론을 세워 후속 연구의 물꼬를 텄죠. 배터리 음극을 산화알루미늄으로 코팅한 건 김원배 포스텍 교수님의 연구 성과예요. 코팅으로 열 폭주 가능성이 낮아진 건 저희가 규명한 원리가 잘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였지, 상용화 추진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임 교수는 열 폭주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기에 그 메커니즘 중 일부를 밝힌 것만으로 열 폭주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국내 전지 3사 또한 상용화 가능한 코팅 기술을 많이 갖고 있기에 이번 연구 발표가 자사의 기술을 검토하는 기회가 될 순 있을 거라고. 6~7년 전에도 전기차 화재가 빈번했는데 현재 많은 부분 개선이 이뤄진 만큼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안전성 측면에서도 완벽해졌을 때 전기차를 도입하는 게 좋지 않았겠냐는 질문엔 “게임의 룰을 바꾼 건 세계의 강대국들”이라고 답했다.
“유럽과 미국, 중국이 탄소 중립을 주창했고 그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우리는 수출을 못 하게 됐습니다. 전 세계가 탄소 저감 방향으로 어마어마한 규제를 가하고 있죠.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선 피할 수 없다고 봐요. 일각에선 유럽과 달리 여전히 화석연료로 생산되는 전기의 비중이 높은 국내 상황에서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죠. 실제로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를 만들 때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요. 그러나 주행거리가 일정 시점을 지나면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기더라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적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교차점이 도래합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가 본격화되고 있어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에너지 전환은 서둘러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배터리를 생산해 돈을 버는 나라는 한국․중국․일본뿐. 임 교수는 일본에 이어 한국이 배터리 산업의 주도권을 쥐었지만, 곧장 중국에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국내 전지 3사의 배터리가 세계 최고라는 점에선 전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지만, 중저가 배터리 시장에선 중국산 경쟁력이 훨씬 높고 프리미엄 시장도 중국의 기술이 점점 더 좋아지면서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배터리 안전성이 중요한 이유다.
“2006년 UC버클리로 교환학생을 나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지금만큼 에너지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게 인식되지 않았던 시기였음에도 인류의 미래와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대안을 찾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제 소임을 다 하려는 친구들이었죠. 저는 당시 그저 화학이 좋았을 뿐 어떤 분야를 연구할진 아직 막연했었는데요. 그때 어울렸던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에너지 연구에 평생을 바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최근 딸이 태어나면서 더욱 미래 세대가 우리 세대를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던 세대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 더 간절해지더군요. 배터리 강국 한국에서 훌륭한 제자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