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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호 2022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사회 곳곳에 73억여 원 기부 “크루즈 여행보다 좋더라”


사회 곳곳에 73억여 원 기부 “크루즈 여행보다 좋더라”


권준하 (경제63-68)
신익산화물터미널 대표



펀드투자로 큰 자산 일궈
본회에 펀드 10억원 쾌척


10월 16일 관악캠퍼스 버들골에서 열린 본회 홈커밍데이 행사 때 단정한 정장 차림의 노신사가 부인과 함께 단상에 올랐다. 최근 본회에 펀드 운용금액 10억원을 기부한 권준하 동문과 부인 조강순 여사가 감사패를 받은 것. 연평균 8~10%의 운용 수익이 본회에 분배되며 유언대용신탁으로 사후엔 10억원이 기부된다. 살아있는 것이면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고 꺼리기 마련. 생전에, 사후의 일까지 헤아리는 그의 마음을 좇아, 10월 24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권 동문의 자택을 찾았다.

“부모님께서 고향 익산에 있는 부동산과 사업체를 물려 주셨습니다. 더 소중한 유산은 근검절약과 이웃사랑의 태도였지요. 재벌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상당한 자산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사치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해외로 크루즈 여행을 몇 번 다녀오긴 했습니다. 밤엔 항해하고 낮엔 관광하고, 맛있는 음식에 흥겨운 볼거리에 대접받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요. 기부하는 기쁨엔 못 미치더이다. 모교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그 보람과 기쁨을 많은 동문들이 함께 누렸으면 좋겠어요. 소액 기부라도 미루지 말고 시작해 보시길 권유 드립니다.”

권 동문의 첫 기부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부인 이름으로 각각 1억원씩 ‘사랑의 열매’에 기부한 것. 9년이 흘러 올해 4월 펀드 운용금액 30억원과 6월 부동산 6억원을 다시 사랑의 열매에 기부했다. 상대동창회 향상장학재단에 펀드 운용금액 5억원, 부인 조강순 여사의 출신대학인 숙명여대에 20억원을 포함해 누적 기부금액은 약 73억원에 달한다. 첫 기부 때부터 나눔은 한 번으로 끝낼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천해야겠다 마음먹었다고.

“기부하려고 찾아간 공익 기관, 장학재단 등을 들여다보니 몇백 억, 몇천 억원을 은행에 넣어놓고만 있더군요. 최근엔 금리가 많이 오르긴 했습니다만, 은행 이자 갖곤 인건비·유지비도 안 될 것 같았어요.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게 펀드 기부입니다. 이미 수십 년 동안 투자해왔던 펀드를 그대로 기부하면 꾸준히 수익금이 기부될 테니까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재원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국내에서 처음으로 펀드 기부를 고안했지만, 선뜻 받아주는 기관이 없었습니다. 펀드 형태의 기부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데, 혹여 마이너스가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아요. 기부할 데를 찾아 원금 보장까지 해줄 테니 제발 받아달라고 통사정했죠. ‘엄마 찾아 삼만리’가 따로 없었어요. 기부 관련 제도가 많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진작부터 기부를 결심했지만, 펀드 기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데 8년이 걸렸다. 권 동문은 모교 졸업 후 삼성그룹에서 근무하다 독립해 자동차공업사, 운수회사 등 자동차 관련 사업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양조장 사업을 병행했다. 1992년부터 전국 제1호 기아 이리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1998년부턴 신익산화물터미널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시절 펀드 투자에 눈떠 IT 버블붕괴, 리먼 사태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이 폭락했던 위기 때 오히려 더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 좋은 성과를 일궜다. 주식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요즘 더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조심스럽지만 제 소견으론 절호의 기회가 온 겁니다. 현재 주식시장의 PBR(Price Book value Ratio 주가와 1주당 순자산을 비교한 비율)이 0.8이에요. 주가가 기업의 청산가치보다 20% 싸다는 뜻입니다. 바겐세일 중이라 할 수 있죠. 저는 주요 증권사, 주요 펀드 상품을 거의 다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마이너스가 나기도 하지만, 다른 펀드에서 거둔 수익으로 상쇄하고도 남죠. 제 삶과 투자경력이 주식시장의 장기적 우상향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직접 투자보단 간접 투자를, 단기 투자보단 장기 투자를 권하고 싶어요. 개인 투자자들 보면 안타깝습니다. 저도 1~2년 해봤지만, 스트레스가 심하거든요. 수수료가 들긴 해도 전문가들이 대신 운용해주면 떨어질 땐 덜 떨어지고 오를 땐 더 올라요. 주식 같이 좋은 재테크 방법이 없습니다.”

권 동문은 지금도 역삼동 강남파이낸스타워에 입주한 거의 모든 증권사와 거래하며, 일과의 대부분을 각종 상품 제안서를 검토하고 PB(Private Banker) 및 자산 운용사와 면담, 세미나하는 데 할애한다. 매일 주식 및 펀드 시장을 스크린하고 리밸런싱 하는 것. 권 동문은 “서울대 나온 괜찮은 IQ로 수십 년 펀드 투자를 해와 웬만한 PB는 명함도 못 내밀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의 통찰에 영감을 받아 증권사에서 출시한 금융 상품도 있을 정도다. 권 동문은 자신의 투자 경험을 살려 동문들에게 펀드 컨설팅을 제공할 생각도 있다고.

“북한에서 핵 실험한 날같이 악재가 쏟아져 주식이 폭락할 때 저는 더 사들였습니다. 주식으로 성공하려면 남이 안 가는 길, 반대되는 길을 가야 해요. 뒤안길에 꽃길이 있는 셈이죠. 주식 투자를 통해 제 자녀와 손주들에게도 큰 재산을 물려줬습니다. IMF 때 발행된 무기명 채권을 활용해 절세 효과도 누렸고요. 상속이 완료됐기에 부담 없이 기부 활동에 나선 것입니다. 동문 여러분도 사전 증여를 통해 자손들에게 펀드 투자를 해주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불원간 고향 익산에서 주식 및 펀드 관련 세미나를 열 생각이에요. 지방소멸시대라 불릴 정도로 힘들지 않습니까. 우선 자본이 축적돼야 지역이 발전할 테니 그런 측면에서 기여하고 싶어요. 동창회 장학재단이나 공익법인도 은행에 예금만 들지 말고, 주식을 사서 은행 이자보다 높은 배당금도 받고 주가가 오르면 차익도 챙기는 일종의 기관투자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펀드 기부가 그런 전환점이 되면 더욱 좋겠고요.”

변호사 출신인 사위 김규식(공법88-92) 동문도 권 동문의 영향을 받아 투자업계에 진출, 한국거버넌스포럼 대표로서 소액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