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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호 2021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연봉 적어 떠나는 교수 없었으면” 200억원 쾌척한 업비트 운영진 

송치형 두나무 의장, 김형년 동문과 함께 기금 출연
 
“연봉 적어 떠나는 교수 없었으면” 200억원 쾌척한 업비트 운영진 


송치형 두나무 의장



김형년 동문과 함께 기금 출연
“해외석학 초빙 교수진 강화를”
 


“학부 2, 3학년 때 들었던 강의가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런데 해당 교수님이 다른 대학으로 옮기셨다는 얘기를 들었죠. 후배들이 더 이상 그 강의를 들을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하니 무척 아쉬웠습니다. 재학 시절 경제학 수업을 듣다 보면 ‘교수님이 미국에서 받던 연봉보다 훨씬 적게 받고 들어왔다,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강의한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어요. 훌륭한 교수님들이 서울대에 더 오래 남아 후학을 가르치는 데 쓰였으면 합니다.”

‘두나무’ 송치형(컴퓨터공학98-08) 의장과 김형년(농경제사회95-02) 부사장이 최근 모교에 200억원을 기부했다. 40대 초중반의 젊은 사업가들이 거액을 내놓은 점도 인상적이었지만, 급여 문제로 교수님 떠나지 않게 해달라는 호소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세계적 석학의 초빙은 교수진의 강화는 물론 학문적 평판도와 논문 피인용 수 측면에서 모교의 세계대학 랭킹을 끌어올리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역량에 상응하는 처우와 이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 두나무의 기부는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송치형 동문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모교에서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김형년 동문은 농경제사회학부 출신이고요. 애초엔 컴퓨터공학부에 50억원, 경제학부에 50억원, 농경제학부에 50억원을 지원하려 했으나 이상승(경제82-86) 모교 경제학부장님을 여러 번 뵙고 말씀 나누면서 해외 유수의 교수진을 경제학부로 모셔오는 데 좀 더 힘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IT 분야는 50억원 규모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데 비해 경제학부에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나무에서 돕는다고 했을 때 세계적인 학과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기준으로 판단했어요. 경제학부에 100억원, 농경제학부에 50억원, 유망 핀테크 스타트업 발굴 및 육성에 50억원이 사용될 계획입니다. 컴퓨터공학부엔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세계 수준의 연구환경 조성과 젊은 인재들의 성공적인 창업 지원에 기부금이 쓰였으면 좋겠다고 밝힌 송치형 동문. 이번 기부는 창업 초기 모교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도 띤다. 이상구(계산통계81-85) 모교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학내 컴퓨터연구소의 사무실을 굉장히 저렴하게 쓸 수 있게 해줬던 것. 송 동문은 회사가 서울대학교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라는 공간이 주는 ‘비어있음’ 또한 마음껏 누렸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머리가 복잡할 때 버들골이나 그 위쪽 계곡을 산책하며 많은 생각을 정리했어요. 동아리 사람들과 둘러앉아 삼겹살도 구워 먹고, 치킨과 맥주를 시켜 먹었던 학창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죠. 직접적인 지원뿐 아니라 모교에서 배운 것들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사업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요즘처럼 다양한 창업 프로그램과 창업 자금이 지원되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학교의 지원에 아쉬움은 없어요. 공간을 제공해주신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송 동문은 창업 당시를 떠올리며,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분위기가 학내에 막 형성될 때였다며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모교의 창업 지원과 관련해선 “세부적인 지원도 좋지만, 학생들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을 키워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2012년 송 동문이 창업한 두나무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일군 기업으로 꼽힌다. 금융과 기술, 두 개의 큰 나무가 합쳐진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블록체인 및 핀테크 전문 기업으로서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와 소셜 트레이딩 기반 주식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 주식 통합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 등을 서비스 중이다.
2019년 3월에는 사내 블록체인 연구소 ‘람다(Lambda)256’이 독립 법인으로 분사를 단행, 세계 최초 컨소시엄 기반 블록체인 서비스 플랫폼 ‘루니버스’를 정식 런칭하며 블록체인 생태계 확장에 앞장서고 있다.

“졸업하면 MBA나 로스쿨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병역특례로 IT 업계에서 일하면서 서비스 개발하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마음껏 만들어 보고 싶어서 창업을 하게 됐어요. 밤낮없이 일했지만, 이것을 고생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고,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다행히 큰 굴곡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학벌을 보고 영입한 건 아닌데(웃음),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찾다 보니 모교 동문들이 회사 안팎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

이번에 함께 기부한 김형년 부사장 외에 이석우(동양사84-88) 전 카카오 대표가 두나무 대표를 맡고 있고, 강준열(경제93-02) 전 카카오 CSO가 두나무 사외이사로 함께 일했었다. 카카오택시를 만든 정주환(기계항공97-01) 동문이 세운 회사도 학내에 있었는데, 카카오로 인수·합병되면서 의자 등 사무집기를 넘겨준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주변의 카이스트 졸업생들은 학교에 기부를 많이 합니다. 그에 비하면 서울대 출신은 모교 사랑에 좀 인색한 것 같아요. 기부를 결심한 데는 카이스트 출신들한테 자극을 받은 측면도 있죠. 교수님 연봉 제한을 비롯해 서울대학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을 겁니다. 동문 여러분들이 학교나 출신 학과에 십시일반 도움을 주시면 좋겠어요.”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