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호 2021년 6월] 문화 나의 취미
등 대고 바닥에 누웠다, 새 세상이 열렸다
‘알렉산더 테크닉’ 수련하는 최진영 모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등 대고 바닥에 누웠다, 새 세상이 열렸다
‘알렉산더 테크닉’ 수련하는
최진영 (제어계측공학78-82) 모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유아인 등 유명 배우 훈련법
자세 교정·마음수련에도 효과
“이게 ‘취미’는 아닌데….”
5월 24일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최진영(제어계측공학78-82) 모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기사 코너명을 듣고 다소 난감한 얼굴을 했다.
몸과 마음의 올바른 사용법을 익힌다는 ‘알렉산더 테크닉’. 최근 ‘배우 유아인 운동법’으로 유명해졌지만 10여 년 전부터 시작해 커다란 삶의 변화를 겪었다는 그다. 그 얘기를 듣고 찾아간 자리는 오해를 푸는 것부터 시작했다.
“운동 아닌가요?” “알렉산더 테크닉은 운동도 아니고, 치료법도 아닙니다. 몸과 마음을 바로 잡아주는 훈련 과정이자 교육이죠. 생활에서 스스로 꾸준히 실천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배우와 악기 연주자, 무용가 등 세밀하게 몸을 쓰는 직업군에겐 잘 알려진 훈련법이다. 창시자 프레드릭 알렉산더 또한 배우 출신. 공연 중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을 전전하던 그는 9년간 거울 앞에서 자신의 신체를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병을 고쳤고, 동료 배우들에게 비법을 전수해 1950년대부터 유명세를 탔다. 해외 예술학교에선 커리큘럼의 일부다.
배우 아닌 공대 교수가 어떻게 배우게 됐냐는 질문에 그는 13년 전 찾아온 인생의 고비를 꺼냈다. “49세에 폐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전부터 병치레가 잦았어요. 30대 후반엔 허리 디스크가 와서 구부리지도, 펴지도 못했죠. 몸이 아파도 완벽주의 성향 탓에 뭐든 열심히 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삶을 돌아봤더니 ‘열심히는 살았는데, 참 힘들게 살았구나’ 싶더군요.”
수술을 마친 그에게 절친한 고상근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소개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에 찾아간 첫 레슨은 의문 투성이였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가르치지 않고 터치만 하는 거예요. 바닥에 누우면 ‘지금 여기가 긴장해 있다’고 ‘톡’ 건드리는 식이었죠. 1시간 하고 나오니 ‘이게 뭐지’ 싶어요. 얼떨결에 계속 레슨을 받았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편해지더군요.”
몇 년간 레슨을 받으며 그는 “긴장하는 줄도 모르고 긴장하며 살던 내가 몸을 의식하고, 긴장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는 게 알렉산더 테크닉의 모토. 레슨에서 이뤄지는 가벼운 터치와 ‘지시어’는 살면서 심신에 밴 나쁜 습관을 떨치게끔 하는 방편이다.
“‘내 목이 자유롭다’, ‘내 머리가 앞과 위로 향한다’, ‘내 척추가 길어지고 넓어진다’, ‘내 다리와 척추가 서로 분리된다’, ‘내 어깨가 중심으로부터 넓어진다’. 이 5가지 지시어를 순차적으로 상상하면 몸이 알아서 반응하고, 태어날 때의 심신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겁니다. 앉거나 걸을 때, 물건을 들 때, 일상생활에서 이 지시어를 틈틈이 떠올립니다.”
합기도, 태극권 등 다양한 운동을 접하고 명상에 참선도 해봤지만 이만한 훈련법이 없었다. “스스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타인이 힘을 가해 바로 잡아주는 자세 교정과 다르고, 의식뿐만 아니라 몸을 함께 본다는 점에서 명상과도 다르다”는 설명. 열심히 운동하고 돌아와 책상에선 구부정하게 앉기 일쑤였는데 알렉산더 테크닉을 일상에 적용하면서 “거북목에 허리 디스크, 팔자걸음이 나아졌고 환절기 감기와 꽃가루 알러지도 사라졌다”고 했다.
알렉산더 테크닉의 세미수파인 자세. 바닥과 닿은 몸과 호흡을 의식하면서 척추를 쉬게 한다. (최진영 동문 제공)
시나브로 마음에도 변화가 왔다. 느긋한 말씨에 ‘원래 성격이 급했다’는 말을 믿기 힘들었다. “예전엔 정신이 늘 다른 데 팔려 있었던 것 같아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 뛰어난 학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깨달음도 알렉산더 테크닉에서 얻었죠. 강의하다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기 일쑤였고, 전화벨만 울리면 빨리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화들짝 놀랐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순간순간 몸과 마음에 집중하면서 ‘현재’에 살게 된 것은 덤. 에리히 프롬이 현대인은 좀처럼 이루기 어렵다고 한 정신 집중의 경지다.
로봇 등에 응용되는 인지 지능을 연구해온 그는 제자들 기르는 재미에 푹 빠졌고, 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연구를 꿈꾸고 있다. 취미인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골프를 칠 때도 알렉산더 테크닉 덕을 톡톡히 본다.
“자전거를 탈 때 목을 뒤로 젖혀서 어깨가 긴장되고 종종 두통이 와요. 무릎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요. 그럴 때 알렉산더 테크닉의 지시어를 생각하면 머리 위치는 편한 상태가 되고, 몸과 다리가 분리되어 고관절도 잘 움직이고 지치지 않습니다. 한쪽 폐가 없어도 젊은 교수들에 뒤처지지 않고 잘 타는 비결입니다.”
인터뷰 내내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꼿꼿이 허리를 세운 자세에 힘을 주고 있는 건지 묻자 “최근 줌으로 비대면 수련을 받던 중 터득했다”며 매우 편하다고 했다. 노년층에게도 좋지만 강력 추천하는 대상은 아직 몸에 나쁜 습관이 덜 밴 청소년들이다. 공부하랴 자세가 나빠진 연구실 제자들도 그의 권유로 맛보기 수련을 했다.
독학보다는 레슨, 개인레슨보다 10~20명 단위 그룹레슨부터 시작해 보라고 조언했다. 알렉산더 테크닉 협회(www.alexandertech.co.kr)에 문의하면 된다.
“초기엔 힘들 수 있습니다. 타력으로 빨리 교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몸의 자각을 통해 습관을 점진적으로 바꿔야 하니까요. 알렉산더 테크닉에선 몸이 스스로 바른 자세로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나쁜 습관이 단박에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수련하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짐을 느낄 겁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