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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2021년 2월] 뉴스 본회소식

기부자와 장학생의 만남-김찬숙 고문과 치대원생들

장학금 릴레이 다짐하는 후배들 보며 뭉클
기부자와 장학생의 만남 - 김찬숙 고문과 치대원생들

김찬숙 청아한치과의원 이사장과 치의학대학원 장학생들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홍현승 동문, 김 이사장, 재학생 신정인·김정수 씨.


장학금 릴레이 다짐하는 후배들 보며 뭉클

올해는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다. 소띠생은 끈질기게 노력하고 성실하게 전진한다. 뚝심이 세어 추진력이 강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간적 매력 또한 넘친다. 1937년생 김찬숙(치의학56-60·본회 고문) 청아한치과의원 이사장은 그러한 측면에서 전형적인 소띠생이다.

1960년 모교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 귀국 후 1971년 ‘김찬숙치과의원’을 설립한 그는 1990년 ‘청아치과병원’으로 개칭·발전시켜 국내 첫 개인수련 치과병원으로 지정받는 쾌거를 달성했고, 83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현장에서 진료를 맡았던 김 이사장은 2022년 서울치대 개학 100주년을 앞두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 명예회장으로 위촉돼 모교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후배들에 대한 애정도 깊어 이번 인터뷰 때도 시종 온화한 미소로 장학생들이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주도했다.

김 이사장은 본회 장학빌딩 건립 기금으로 10억원을 출연하여 현재까지 총 120여 명의 재학생 후배들에게 누적 장학금 약 5억1,000여 만원을 지급했다. 김 이사장과 모교 치과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홍현승(치대원16-20) 동문, 올해 2월 졸업 예정인 신정인(치대원14입) 씨, 본과 3학년에 진학하는 김정수(치대원16입) 씨를 1월 29일 서울 도곡동 김 이사장의 자택에서 만났다.


“책값·기자재값 부담되는 치대
장학금 덕분에 마음 편히 공부”

“유명인이나 돈 잘 버는 사람보다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 됐으면…”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만 2년째 장학금 수여식이 열리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은 없는지.
(김찬숙) “많이 아쉽습니다. 재학생 후배들을 직접 보고 장학증서를 전달하면서 정을 많이 나눴는데, 지금은 새로 뽑힌 장학생들과는 일면식조차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이전엔 장학금 수여식 마치고 차 한 잔 같이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히니까 연말이나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종종 인사하러 오기도 했죠. 어떨 땐 제가 사양을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감염병 발생 상황이 위중하니 아쉬워도 방역지침을 따라야죠.”

(신정인) “장학금 수여식 처음 갔을 때 강당 통로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을 만큼 장학생들이 많다는 데 놀랐어요. 정말 많은 선배님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시는구나, 대단하고 감사하다,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돈과 관련된 화제이다 보니 동기나 선후배들에게 장학금을 받는지, 받으면 어떤 장학금인지, 물어보기가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장학금 수여식 때가 아니면 같은 장학금을 받아도 서로 잘 모를 수밖에 없죠. 2학기엔 코로나 사태가 많이 진정돼서 수여식이 개최됐으면 좋겠습니다.”

-장학생 여러분도 서로 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군요.
(홍현승) “네. 신정인씨는 연건캠퍼스에서 간혹 얼굴 본 기억이 있는데, 같은 장학금을 받고 있는진 몰랐고요. 김정수씨는 오늘 처음 봐요(웃음).”

-그럼 오늘 인터뷰는 어떻게 알고 참석하신 건지.
(홍현승) “이사장님의 요청을 받아 제가 다른 장학생 2명을 섭외했습니다. 학과별·학년별 단체카톡방이 있는데, 각 방마다 친분이 있는 후배에게 공지글을 올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저는 스탠퍼드대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본과 1학년부터 모교 치의학대학원에 다녔는데, 스탠퍼드대 재학시절 이사장님의 외손주 분과 같이 공부한 인연으로 사석에서 인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김 이사장님은 치대 출신이신데, 장학생 중엔 생활대 재학생도 있습니다.
(김찬숙) “옛날엔 가정대학이었죠. 제 둘째 딸 오경화(의류81-85) 동문이 모교 가정대학을 나왔어요. 석사 마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요. 타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어서 모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싶어도 몸담고 있는 학교에 눈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부담스럽대요. 딸의 뜻을 대신해 생활대 재학생들한테도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정감과 책임감을 갖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번 선정된 장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어요. 받다가 끊기면 허탈하고 괜히 자책하고 그럴 수 있으니까요.”


김찬숙 이사장과 장학생들이 만나 식사를 함께 했다.

-오세정 총장님 취임 후 성적보다 가정형편에 무게를 두고 장학생을 선발한다고 들었습니다. 재학생으로서 변화를 실감하는지.
(신정인) “학교에서 가정형편을 위주로 보겠다고 공지하고, 신청할 때 관련 사유를 좀 자세히 적어서 제출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장학금이 아니더라도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 꼭 얘기해달라고 말씀하시고 개인적으로 찾아오거나 카톡을 통해서라도 일단 알려주면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지속적으로 공지하고 있어요. 이사장님의 장학금을 받게 된 이유는 교수님의 추천이 아닐까 짐작됩니다만, 선발의 공정성 때문에 저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뽑혔는지 알 수 없어요.”

(김찬숙) “치대에서 몇 명, 생활대에서 몇 명, 이 정도 지침만 줄 뿐 구체적인 장학생 선정 과정은 학교에 일임하고 있어서 어떻게 뽑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웃음).”

(김정수) “어쩌면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웃음), 저는 성적관리를 잘해서 뽑힌 것 같아요. 예과 때는 학업을 좀 소홀히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는 일찍부터 신경 써서 학점을 관리했거든요. 그렇다고 점수 잘 나오는 수업만 골라 들은 건 아니고요. 서울대학교의 우수한 교육 인프라를 십분 활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전공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많으니까요. 저는 손으로 뭔가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공예품을 만드는 수업, 피아노를 연주하는 수업도 들었습니다. 미학, 철학 등 교양 수업도 수강하고요.”

(김찬숙) “치의학도들이 손재주가 많아요. 관현악단, 클래식 기타반, 락밴드에 피아노 동아리까지 결성될 만큼 악기 다루는 재능도 뛰어나죠. 운동신경도 좋아서 총동창회 골프대회에 출전해 매년 끊이지 않고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어요.”

-장학생 입장에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홍현승) “이사장님께서 워낙 편하게 대해주셔서 부담감은 별로 없습니다(웃음). 빈손으로 찾아 봬도 항상 반겨주시고 연건캠퍼스까지 오셔서 밥도 사주세요. 감사한 마음에 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인턴 근무도 더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이사장님처럼 멋진 선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어떤 포부도 갖게 되고요. 장학금은 저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신정인) “저도 부담을 느끼진 않았고요. 선뜻 장학금을 지원해주셔서 오늘 인터뷰에 참석해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석에선 처음 뵙는 거라 어떤 말씀을 해주실지 무척 기대가 돼요.”

(김정수) “치대 들어오면 사실 돈 쓸 데가 굉장히 많습니다. 등록금과 책값이 비싼 것은 물론 관련 기자재와 의료도구도 사야 하죠. 부모님께 손 벌리기엔 죄송스러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는데, 김 이사장님께서 주신 장학금 덕분에 진짜 마음 놓고 학교 다닐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까 고민하던 중 이사장님 댁 주소를 알려준다는 안내를 받고 편지를 써서 보내드렸습니다. 여름이었는데, 실습 중에 이사장님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나요. 그저 감사의 편지 한 통 보내드렸을 뿐인데 외려 고맙다고 말씀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김 이사장님은 출연자로서 장학생들에게 바라는 것 없으세요?
(김찬숙) “치과의사로서 자기 소임에 충실하고 건실한 국민의 한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소원이죠. 유명한 사람, 성공한 사람, 돈 많이 버는 사람 되기를 바라진 않아요. 선배들한테서 장학금을 받았으니 다시 후배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으면 좋죠. 그러나 우리 딸만 봐도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여건이란 게 다 똑같은 게 아니잖아요. 장학금 수여식 때 선순환을 다짐하는 후배들의 모습은 정말 자랑스럽고 가슴 뭉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부를 재촉하는 건 또 다른 마음의 짐을 지우는 일 같아요. 우리 딸은 정년 퇴임하면 기부하겠다고 합디다(웃음). 저마다 때가 있는 거죠.”

(홍현승) “이제 막 월급 받기 시작한 터라 제가 언제쯤 장학금 선순환에 동참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장학금을 받았을 때의 기쁨과 소중함 그리고 받는 사람에겐 그게 분명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언젠가 기회가 되고 여건이 되면 기꺼이 장학사업에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2018년 1학기 장학금 수여식에서 장학증서를 수여하는 김 이사장.

-모교 치과병원 인턴 근무는 어떤가요.

(홍현승) “응급실 업무도 병행하고 있어 평일엔 친구들과 약속 잡기 힘들어요. 밤늦게 이가 깨져 갖고 오는 사람, 입술 찢어져서 오는 사람 등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서울대 치과병원엔 소아 환자가 많이 와요. 앞니 가운데 숨어 있는 이가 하나 더 있어서 제거 수술을 받은 5~7살 환아가 기억에 남습니다. 열심히 놀아줬더니 퇴원할 때 장난감이랑 편지를 써서 남겨줬어요. 인턴이라 제 이름은 모르고 ‘선생님’이라고만 적었는데 진료 차트를 통해 저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죠.”
말을 마치자 목이 메었는지 홍 동문은 물을 들이켰다.

-치대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혹은 치대 자랑 한 말씀.
(김찬숙) “지금은 치대가 예과 3년, 본과 4년, 총 7년 교육과정이 됐지만, 저 때만 해도 4년제 과정이었어요. 당시 의대는 6년 과정이었는데 ‘6년을 공부하면 언제 시집을 가나’ 하는 심산에 치대를 선택했죠(웃음). 의사들은 위급 상황도 많고 그래서 자기 시간을 못 가질 때가 잦은데, 치과의사는 환자와 진료시간을 협의할 수도 있고 체력이 받쳐주는 한 오래 일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김정수) “처음엔 통증을 연구하고 싶었어요. 모교 치대가 통증 및 마취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치대에 들어왔고 예과 땐 관련 연구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는데,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서 ‘아,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아직 여러 과를 경험해 보지 못했고 공부만 하는 단계라 진로는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신정인) “모교 치과병원 인턴에 지원해서 다음 주에 면접이 예정돼 있습니다. 치의학에도 여러 과가 있는데 그중에서 보존과를 희망하고 있어요. 실습 때 많이 했던 분야인데 재미있었고, 신경치료 할 때 딱 맞아들어갔을 때의 그 느낌이 참 매력 있더라고요.”

(홍현승) “저도 잊고 있었는데 어렸을 적 제 꿈이 치과의사였나봐요. SNS를 통해 제 소식을 접한 유년 시절 친구가 ‘네 꿈을 이뤘구나,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줬거든요. 조금은 운명적으로 치의학을 선택한 것 같아요.”
저녁 7시에 시작한 이날 인터뷰는 밤 9시쯤 끝났지만, 기자가 떠난 뒤에도 네 사람은 모임을 이어갔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