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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호 2020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서울대 사회봉사상 수상 이진학 모교 의대 명예교수

“고맙단 인사 기대 말아야 더 오래 봉사할 수 있어”

“고맙단 인사 기대 말아야 더 오래 봉사할 수 있어”

서울대 사회봉사상 수상
이진학 모교 의대 명예교수




40년 넘게 무료 백내장 수술

99년 서울형인공각막 개발도


이진학(의학65-72) 세종여주병원 안과의사 겸 모교 의대 명예교수가 최근 제10회 서울대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40여 년 동안 국내 의료취약 지역과 해외 개발도상국을 오가며 무료로 백내장 수술을 해준 그는 고령으로 해외 체류가 힘들어지자 후배들의 의료봉사를 지원했고, 현지 안과 의사를 모교 병원 연수 의사로 초청, 선진 의술을 전수했다. 받기는커녕 돈을 내고 인술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저 좋은 일하는 분들을 쫓아다니며 거들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진학 동문을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1975년 전공의 시절 ‘남산라이온스클럽’에 입회하면서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남산라이온스클럽은 세계 최대 봉사단체인 ‘국제라이온스클럽’의 일원으로, 1964년 창립돼 실명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 개안수술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죠. 국내외 실명 환자 5,316명에게 빛을 되찾아줬어요. 1980년대까진 우리나라도 돈이 없어서 백내장 수술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료취약 지역에선 더 흔했죠. 외딴섬에 사는 노부부가 기억에 남아요. 부부가 모두 양안 백내장에 걸려, 가져다주는 밥도 옆에서 누가 먹여주지 않으면 못 먹었습니다. 나중엔 영양실조까지 왔죠. 개안수술 후 밥과 반찬 그릇이 보여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및 경제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2000년대 들어 무료 백내장 수술은 지역 의사들의 ‘밥그릇 뺏는 일’로 오해받을 만큼 평가절하된다. 그러나 백내장 때문에 앞을 못 보는 사람은 전 세계 약 2억8,500만명. 이 동문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95년 중국 연변을 시작으로 2002년엔 박재형(의학66-72) 당시 모교 의대 교수와 함께 인도로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떠났다. 무료 개안수술에 대한 오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콜카타 공항에서 내려 차를 타고 2시간을 더 가서 캐닝에 도착했습니다. 인도 정부의 ‘클린 콜카타 프로젝트’에 따라 콜카타 거리에서 거적을 깔고 살던 불가촉천민들을 집단 이주시켜 놓은 곳이죠. 현지 의료법상 개안수술을 하려면 인도인 의사와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자국에선 병균 취급받는 천민을 무료로 수술해준다고 하니, 우리가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그러는 줄 알고 1인당 20달러 이상의 돈을 요구했습니다. 어찌보면 유료 봉사활동이었죠(웃음).”

의료환경도 열악했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 장비 소독에만 3시간이 걸렸다. 수술할 때마다 장비를 새로 소독하는 것이 원칙이나, 궁여지책으로 전날 소독해 오전 수술에 쓰고 점심시간에 다시 소독해 오후 수술에 썼다. 인도에서도 부자들은 초음파·인공수정체 등 최신 기술로 백내장 수술을 받는다. 이 동문을 비롯한 의료봉사팀은 천민들도 동일한 수준의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이듬해부턴 소독용 키트를 미리 준비했고, 수술 현미경과 세극등(細隙燈)을 구입해 현지에 두고 사용했다. 서울대병원 교회 이대건 목사의 도움이 컸다.

“이대건 목사님이 헌금을 거둬 최신 의료 장비를 지원해줬습니다. 장로로서 제가 진료 기구를 사다 보탰고요. 의료봉사엔 기독교의 영향도 컸습니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죠. 2002년엔 ‘기독안과선교회’가 조직돼 제가 초대 회장을, 김동해 명동성모안과 원장이 총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김 원장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백내장 수술 봉사단체 ‘비전케어서비스’를 출범시켰고요. 중국·몽골·케냐·파키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마다가스카르 등 현지 안과 의사를 모교 병원 연수 의사로 초청할 땐 각국 선교사들이 좋은 인재를 뽑아 보내줬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이 동문은 연수 의사로 온 현지 안과 의사들이 서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보살폈다. 혜화동 서울대병원에 재직할 땐 대학원 기숙사에,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을 땐 미금역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 숙박비 걱정 없이 머물게 했다. 의학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것은 물론 전철 타는 법부터 차근차근 타향살이를 가르쳤다. 보통은 1년, 길게는 2년 동안 훈련받은 현지 의사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 의료계 거목이 됐다. 울란바토르 최고 번화가인 칭기즈칸호텔 건너편에 모교 이름을 딴 ‘서울아이센터’를 개업했고, 케냐에서 손꼽히는 대형 종합병원의 원장이 됐다.

후배들에게 꼭 한번 해보라고 의료봉사활동을 권하는 이진학 동문. 그러나 “고맙다는 인사는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가 못살 때 외국의 원조가 마냥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현지 사람들도 자존심을 다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어떨 땐 원망도 듣고, 세관에서 장비를 빼앗기기도 했어요. 요샌 실력 없는 의사들이 온다고 생각해서 이 사람이 그 교수가 맞나, 꼼꼼히 대조하기도 해요. ‘싫은 소리 안 들으면 다행이다’ 이런 각오로 해야지 ‘우리가 베푼다’ 이런 생각 갖고 가면 잘못하면 싸움 납니다. 받는 입장에서 헤아려야 오래 봉사할 수 있어요.”

이 동문은 십수 년간의 연구 끝에 1999년 ‘서울형 인공각막’을 개발하기도 했다. 난치성 표면각막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그의 인공각막은 전 세계 안과 임상 진료 지침을 정하는 미국 교과서 ‘Keratoprostheses and Artificial Corneas’에 한 챕터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는 국내 최초의 성과로 서울형 인공각막이 난치성 표면각막질환의 표준치료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눈물이 전혀 안 나오는 환자 9명에게 시술해 약 32개월 동안 시력을 보존시켰으며, 김미금(의학90-94) 모교 의대 교수가 이어받아 더 오래 볼 수 있는 이종 생체이식을 연구 중이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