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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2023년 9월] 기고 에세이

유기천 박사, 역대 총장 중 유일하게 재단 설립

최종고 법학66-70 모교 명예교수
동문기고
 
유기천 박사, 역대 총장 중 유일하게 재단 설립
 


최종고
법학66-70
모교 명예교수
 
예일대서 한국인 첫 법학박사 학위
세계지식인백과사전에도 수록


지난 8월 25일 9시 30분~12시 30분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Center for Korean Studies)에서는 고 월송(月松) 유기천(劉基天, 1915-1998) 박사를 추모하는 학술심포지엄 ‘Law and Culture in Korea’가 개최되었다. 

월송은 1960년대 제9대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세계적 법학자로 그의 사후 제자들이 유기천재단(Paul K, Ryu Foundation)을 설립하여 20주년을 맞게 된 것이다. 30여 역대 총장 가운데 재단이 설립된 유일한 사례이다. 이런 뜻깊은 행사가 하와이에서 개최된 데에는 특별한 뜻이 있다. 

유기천은 1958년에 예일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의 법학박사(SJD) 학위를 ‘한국문화와 형사책임’(Korean Culture and Criminal Responsibity)이란 논문으로 획득하였다. 이듬해 하버드 로스쿨에서 같은 형법학을 전공하는 폴란드 출신 유대계 헬렌 실빙(Helen Silving, 1906-1993) 박사와 결혼하였다. 1959년 6월에 하와이대학교에서 주최하는 동서철학자대회(East-West Philosophers conference)에 참가하여 ‘문화이해에서의 장의 이론(Field Theory in the Study of Culture)’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44세의 신진학자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를 대표하여 세계 지성인들로부터 주목을 끌었다. 그리하여 ‘세계지식인백과사전(Encyclopedia of World Intellectuals)’에도 수록되었다. 

그후 서울법대 학장으로 사법대학원을 설립하고 아시아재단(Asia Foundation)의 후원을 받아 한국 최초의 판례집을 발간하는 등 한국법학교육의 기초를 닦고, 한국형법전을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 출간하였다. ‘법을 통한 세계평화(World Peace through Law)’ 등 각종 세계학회에서 발표하여 한국법학의 세계화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수립되고 이른바 개발독재에 대항하여 인권보호를 주장하는 그는 탄압을 받았다. 1972년 하버드의 라이샤워(E, Reischauer)교수가 김종필 총리에게 강력한 탄원서를 써서 간신히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부인과 함께 푸에르토 리코 대학에서 비교형법을 강의하고 만년은 샌디에고에서 살다 재미 26년 만에 그곳에서 서거하였다. 유해는 경기도 고양의 산정현교회 묘지에 부인과 나란히 묻혀있다. 

1998년에 노융희, 유훈, 황적인, 김철수, 오성식, 박영식, 최종고 등 법대 제자들이 유기천기념사업회를 조직하였고, 그것을 기초로 2004년 유기천재단을 발족하여 매년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결과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후학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학술상을 시상하였다.  

이번 하와이 심포지엄은 이러한 혁혁한 학문 활동을 한 유기천 총장의 업적을 세계학문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앞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학계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으려 하였다. 또한 이번 심포지엄에서 유기천 문고 (Paul K. Ryu Collection)와 유기천 장학금이 전달되었다. 이번 심포지엄 발표는 최종고(법대 24회) 이사장, 주광일(법대 19회) 변호사. 이영란(법대 25회) 숙대 명예교수 동문과 백태웅 소장이  하였고, 유 훈(법대 8회), 이상건(법대 19회, 하와이대 경제학교수), 구상진(법대 26회), 성낙인(법대 27회, 26대 총장), 강동범(법대 34회) 동문이 참석하였다. 심포지엄을 마치고 유기천문고(Ryu-Silving Collection)와 장학금 전달식이 있었다.


유기천 박사(오른쪽)와 아내 헬렌 실빙 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