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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2020년 6월] 문화 신간안내

아내 글 모아 ‘부부의 사계절’ 펴낸 손병두 동문

“부부는 콩깍지 사랑 아닌 노~오력하는 사랑”
저자와의 만남

“부부는 콩깍지 사랑 아닌 노~오력하는 사랑”
 
아내 글 모아 ‘부부의 사계절’ 펴낸 손병두 동문


손병두(경제60-64) 삼성경제연구원 상임고문이 아내 박경자 씨가 SNS 등에 남긴 슬기로운 결혼 생활을 엮어 ‘부부의 사계절(행복에너지 간)’이란 책으로 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공감하는 젊은(혹은 중년) 부부들에게 80대 노부부가 들려주는 결혼 생활 잠언서로 읽힌다. 

태산 같은 걱정을 안고 병원 가는 아침, 밥 차려 놓고 병원 가라는 남편(손병두)의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부터 남편에게 좋아 보이지 않는 국민(초등)학교 여자 동창에 대한 참견까지 52년 부부의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애환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놨다. 그 속에 진한 부부애와 참된 결혼의 의미가 전해진다. 저자는 결국 결혼 생활은 “신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노~오력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력도 아니고 노~오력이다.

지난 5월 26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만난 손병두 동문은 “2018년 결혼 50주년을 맞아 아내 글을 엮어 책 선물을 하면 좋을 것 같아 물어봤더니 무슨 소리 하냐며 극구 반대해 오랜 설득을 거쳐 이제야 책을 펴내게 됐다”고 말했다.

“도곡동 성당에 ME(Marriage Encounter 부부일치운동) 교육을 받은 분들의 단체 카카오톡 방이 있어요. 그곳에 매일 부부생활과 관련된 질문이 올라오면 서로의 생각을 올려요. 아내의 글에 호응하는 분들이 많았고, 저에 대한 흉도 있지만 오히려 반성하게 되고 새롭더라고요. 우리 부부 삶의 사계절,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글이어서 제목을 ‘부부의 사계절’로 했지요. 처음에는 가족, 성당 사람들과 나눌 정도로만 인쇄할 생각이었는데, 출판사에서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좀 더 많은 부부에게 전하면 좋겠다고 해서 서점에도 깔리게 됐죠. 출간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었습니다.”
 
“ME 교육받고 삶이 달라졌다”
손 동문 부부의 만남은 한편의 드라마다. 성모님을 닮은 배우자를 찾던 그는 1968년 출장 중 기차에서 아내를 만나고, 그녀의 친절에 감동, 처음 만난 그날 그녀 집을 찾아가 장인어른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력서를 한 통 내밀고 한 달 뒤 다시 찾아가 승낙을 받았다.
 
낭만적인 결혼이었지만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 생활은 전쟁이었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 오기 일쑤, 연년생으로 네 명의 아이를 둔 아내는 얼굴에 기미가 새까맣게 꼈다. 로맨스는 시들해지고 생활은 무미건조해졌다.      

손 동문은 “부부싸움도 잦아지고, 신앙생활도 땅 위를 구르는 낙엽처럼 메말라 갔을 때 ME를 알게 됐다”고 했다.

“결혼 9년차 됐을 겁니다. 1977년 3월에 한국에 ME 운동이 들어왔어요.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님이 시작한 부부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2박 3일 44시간 일정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우연히 참석을 했어요. 제 인생관이 180도 변하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일어났지요.”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나는 누구고, 부부란 무엇인지 재정립하는 시간이 됐다. 일 중심 가치관에서 관계 중심 가치관으로 바뀌었다. 

이후, 대기업의 젊은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다 한순간 잘리는 신세가 되면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느꼈고, 40대에 미국 유학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아내 홀로 빵집을 하며 네 아이를 키워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아내가 폐암 투병으로 고통스런 나날도 보냈다. 이런 고난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ME로 회복된 서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여러 단체, 기관의 장을 하며 바쁜 생활 속에서도 40년간 ME 운동에 헌신하며 한국ME대표부부, 아시아ME대표부부로 봉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손병두 동문

부부는 죽을 때까지 같은 방 써야
손 동문은 “결혼 전에 결혼에 대해 배웠냐”고 물었다. “지금은 여러 종교 단체에서 결혼 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청춘이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을 합니다. 갈등할 때 해소하는 방법을 몰라요. 옛날에는 그래도 층층시하에서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혼인의 신성함이랄까 그런 게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문제가 있다면 결혼 후라도 배울 생각을 해야죠. 헤어지는 게 능사는 아니잖아요. ME 등 부부생활 교육 프로그램 참여를 강력하게 권유하는 이유입니다.”

현재 ME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부부는 9만쌍에 이른다. 손 동문의 두 아들과 며느리, 두 딸과 사위도 교육을 받았다.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다만 부부생활의 어려움을 절감하게 되는 결혼 5년차 이상 부부만 받는다. ME 운동에서 말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은 ‘대성기공’. 대화, 성생활, 기도, 공동체 의식의 준말이다. 이 가운데 특히 손 동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화다.

“부부관계에서 소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화로 풀지 못할 게 없습니다. 그전에 신뢰도 쌓아야죠. 그러려면 정직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작은 것 하나 숨기지 말아야 해요. 있는 그대로 정직하면 신뢰가 쌓이고, 신뢰가 쌓이면 소통되고 그러면 화해도 협력도 됩니다. 선순환이죠. 상상으로만, 자기만 옳다 생각 말고 상대방 처지도 생각하면서요. 순간을 참으면 많은 보상이 있는데, 그걸 못해 안타까운 부부들이 많죠.” 

작은 아이 때문에 각방을 쓰고 있다는 기자에게 “오늘 당장 합방하라. 그렇지 않으면 간격이 계속 넓어진다. 부부는 죽을 때까지 같은 방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병두 동문은 대학 2학년 때 천주교에서 세례(세례명 돈보스코)를 받고 상대 가톨릭학생회 회장을 지냈다. 2015년 서울 세계시각장애인 경기대회 조직위원장, 코피온 총재,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 호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가톨릭과 관련해 천주교 전국 평신도협의회 회장, 서강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장애인 복지시설인 성분도 복지관 운영위원장을 20년 넘게 맡았다. 현재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운영위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아내와 새벽미사, 성경 나눔을 통해 매일매일을 부부의 날로 지내고 있다.
김남주 기자
ME 만남의 집 문의 02-511-9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