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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호 2023년 8월] 문화 신간안내

화제의 책: 고향 합천까지 500km 걸으며 돌아본 70년

철이 덜 든 철학자 정인조(금속공학71-75) 동문
화제의 책 <철이 덜 든 철학자>
 
고향 합천까지 500km 걸으며 돌아본 70년
 

정인조
(금속공학71-75) 
부천희망재단 이사장
이분의일

 
자서전을 준비하는 동문이라면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책이 나왔다. 정인조 동문의 ‘철이 덜 든 철학자-공학도에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길을 걷기까지’. 정 동문은 일반적인 연대기식 자서전의 틀을 벗고, 걸어서 고향까지 500km를 순례한 18일의 여정을 중간중간 삽입해 18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첫날 여정 소개와 함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18일간 걸으면서 70년 인생을 정리한 느낌이다.    

정 동문은 2020년 칠순을 맞으면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버킷리스트 두 가지를 실행에 옮겼다. 하나는 파주 임진각에서 고향 합천까지 걷기고, 두 번째는 자서전을 출간하는 일이었다. 고향 순례는 2021년 8월 19일~9월 5일 이뤘고, 자서전은 지난 7월 11일 발간했다. 

정 동문은 걷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왜 걷는가’ 4년 전부터 걷기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지난 70년의 생애를 되돌아보니, 고향을 떠나 살아온 50여 년 동안 맺은 수많은 인연이 떠올랐다. 인연들을 떠올리다 보니 그들과 함께 살아온 우리나라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고향과 분단된 조국의 평화를 염원하며 걷기로 결심했다.” 

하루 약 4만5000보 30여 ㎞를 걷는 18일의 강행군 동안 그의 머릿 속에는 오롯이 ‘고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먹이며 꼴 베던 어린 시절부터, 가난 속에서도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워주신 부모님, 그리고 인심 좋은 고향 사람들…. 

책에는 중공업과 정유업체 근무를 거쳐 2001년부터 정유·석유화학·발전 등 기간 산업의 공장 신설과 설비의 품질과 안전성을 점검하는 검사·감리업체인 ‘글로벌21’을 창업 운영해온 과정, 일반 시민으로서 공동체 삶에 관심을 갖고 시민 사회 운동에 참여하게 된 배경 등을 담백한 어투로 담아내고 있다. 

13일차에서 15일차 장에는 부천희망재단 설립 이야기, 모금가의 실망과 희망 등 모금 전문가로서 실질적인 조언이 담겨 있어 재단에서 모금 활동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정 동문은 희망제작소에서 주관하는 ‘모금전문가과정’을 9기로 수료했고, 국제모금전문가(CFRE) 자격 시험에도 6번 도전했다. 그가 모금전문가 분야를 공부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기부자들의 기부 동기의 80%가 누군가에게 요청받았기 때문이라면, 기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부하지 않은 이유의 80%는 요청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그의 기부 기록이다. 그가 보관하고 있는 연말 기부금 영수증을 토대로, 지난 1983년부터 2022년까지 합산 기부금액이 얼추 21억원에 이른다. 43살 때 작성했다는 그의 ‘비전’에서 ‘총수입의 12%는 기부하고, 재산의 50% 이하를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한다’고 약속했다. 2017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기도 했다.

책 제목이 철이 덜 든 철학자로 정한 까닭에 대해 “공학도로서 평생 철을 만났지만, 아직 철이 덜 든 철학자로서 앞으로 철이 가득 든 철학자를 기대하는 마음에 그렇게 정했다”고 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