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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 2020년 5월] 문화 신간안내

김남조 시인 '사람아, 사람아' 출간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 것

화제의 책



등단 나이 고희 김남조 시인 ‘사람아, 사람아’ 출간

“나는 시인 아니다. 시를 구걸하는 사람이다. 백기 들고 항복 항복이라며 굴복한 일 여러 번이다”
등단 나이 ‘고희(古稀)’를 넘긴 김남조(국어교육47-51) 시인의 소회다. 2020년 올해 만 93세를 맞은 그가 ‘시인’으로 살아온 세월 71년을 되돌아보며 시 52편을 모아 열아홉 번째 시집 ‘사람아, 사람아’(문학수첩)를 냈다. 

시인으로 살아왔을 그의 71년 세월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묵직하다. 그가 건너온 70년의 세월에는 섣불리 넘겨짚을 수 없는 곡진한 사연들이 빽빽이 점철되어 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나긴 생애 동안 펜 끝을 벼려 시를 새겨 온 그에게 ‘시’란, ‘시인’이란 어떤 의미일까. 

90년 넘는 세월을 시에 젖어 살아왔음에도 그는 때때로 “나는 시인 아니다”라고 부르짖는다. 언제 어디서고 두 팔 벌려 안겨드는 시가 아니기에, 어느 날은 시를 구걸해야 하고, 어느 날은 항복이라며 굴복해야만 했던 것이다. 명실공히 원로 시인이 된 지금도 시 앞에서는 패배자로 설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김남조 시인은 한평생 나를 이기기만 하는 시이지만 결코 외면하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70년 시의 길을 걸어왔다.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 것

시인 본인이 ‘나의 끝시집’이라 일컬은 이 책 ‘사람아, 사람아’을 엮기 위해 김남조 동문은 갈마드는 한평생의 기억을 쓰다듬으며 에는 가슴으로 한 줄 한 줄 시를 써 내려갔다. 이 시집에 담긴 52편 시 속에 그의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한데 뒤엉켜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 뒤엉킨 생을 읽는 키워드는 단연 ‘사람’ 그리고 ‘사랑’이다. “열아홉 권의 시집을 내고 다른 것도 썼습니다만 많이 쓴 건 사랑이었습니다”는 시인의 고백대로 과연 이번 시집에도 ‘사랑’이 있다. 

‘사랑 안 되고/ 사랑의 고백 더욱 안 된다면서/ 긴 세월 살고 나서/ 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 이즈음에 이르렀다/ 사막의 밤의 행군처럼/ 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그 이슬 같은 희망이/ 내 가슴 에이는구나// 사랑 된다/ 많이 사랑하고 자주 고백하는 일/ 된다 다 된다’ (‘사랑, 된다’) 

시인은 긴 세월 살고 나서 이제는 ‘사랑 된다’고, 그것도 ‘무한정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람끼리 깊이 사랑합니다. 많이 잘못하면서 서로가 많이 고독하다는 인간의 원리를 깨닫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사람은 서로 간에 ‘아름다운 존재’라는 긍정과 사랑과 관용에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흔 평생 1,000편 가까이 시를 써 온 그가 가장 많이 쓴 게 ‘사랑’일진대, 단연코 시는 ‘사랑법’을 쉽사리 가르쳐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 된다’를 비롯한 52편의 시들은 간단없는 시적 고행 속에서 묻고 또 되물어 얻어 낸 답일 것이다. 

김 동문은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모교를 졸업했다. 시집 ‘목숨’, ‘사랑초서’, ‘바람세례’, ‘귀중한 오늘’ 등 19권과 수필집 12권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역임하고 3·1문화상, 만해대상, 일본지구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