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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2020년 4월] 기고 에세이

세균과 바이러스 혼동하는 전문가

양승영 경북대 명예교수 기고문
동문기고

세균과 바이러스 혼동하는 전문가


양승영
지질57-63
경북대 명예교수

1980년대 교양학부 강의에서 지질시대의 구분, 여러 지역 지층들의 대비와 선후관계의 규명, 지구 나이의 측정 등 지질학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는데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을 한다. 

“며칠 전 대전의 K대학 학생들이 우리 대학 강당에 와서 창조론을 설명하는데 진화론은 모두 거짓이며 46억년의 지구 나이도 믿을 수 없다고 하던데요.”

당시 봄, 가을로 K대학의 학부생들이 창조론 전도사로 대학을 찾아온다고 한다. 과학에 입문도 하기 전 학생들이 어떻게 현대과학을 비판하는지 그 무식한 용기에 말문이 막힌다. 나라도 시간을 쪼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지질학과 진화를 쉽게 설명하는 교양서적을 저술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7년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초청과학자 신분으로 지내게 되었다. 나를 초청한 미국자연사박물관의 N. D. 뉴웰 교수(컬럼비아 대학의 교수 겸직)가 최근 자신의 저서라며 ‘Creation and Evolution’이란 책을 건네준다. 내용은 그가 고생물학자로서 창조론을 비판한 것이다. 1989년 뉴웰 교수의 책을 번역 출판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내가 진화론의 대변자 노릇을 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불려나와 여러 차례 창조론자들과 입씨름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안타까운 일은 창조론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도 아니면서 이공계통의 학위를 갖고 있다고 대중들 앞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이다. 고생물학자 앞에서도 지질학은 물론 부끄러움도 없이 화석 이야기를 꺼낸다.

학부에서 지질학 공부를 했다고 해서 대중들 앞에서 내가 광석광물이나 지진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보다 우수한 해당 분야 전문가가 국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모든 분야가 촘촘히 세분되어 전문가들이 모여 사는 고급사회가 되어있다. 

지질학에서 야외조사는 일종의 시간여행이다. 포항 부근을 찾아가면 1,000만년 이전의 신생대 생물을 만날 수 있고 대구 부근에서는 공룡이 살던 중생대의 생물을 만난다. 강원도 삼척 부근의 산악지대에 가면 삼엽충이 살던 고생대 생물을 만난다. 고생물학은 해당 화석이 어느 화석으로부터 진화했고 다음 어느 시대의 어느 화석으로 진화를 이어가는지 지질학적 선후관계를 고려하여 연구하는 것이 주 업무다. 이로써 여러 지역 암층의 대비에 응용되어 지질학에서 불가결의 기초분야이기도 하다.

진화현상은 일반인이 평소에 체험하기 매우 어렵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진화를 합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분류학에 머물렀던 생물학이 실험과학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만들어 놓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은 아직도 진화가 정말 일어나는가 의심한다. 왜냐하면 진화의 속도에 비하여 우리의 일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기도 하고 진화 이야기가 매우 잘못 전파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독교는 오랫동안 적대 관계에 있었으나 차츰 과학을 이해하고 포용하게 되었지만 진화론만은 아직도 한국과 미국의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이 극력 반대한다. 진화를 믿으면 기독교인 자격이 없는 것처럼.

지질학이나 고생물학은 지난 400~500년간 과학으로 갖추어야 할 논리적 체계가 다듬어진 자연과학이며 아마추어가 비판해서 흔들릴 분야는 결코 아니다. 한동안 지질학 연구는 육상에 한정되어 지표면적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해양저 지질이 밝혀지면 지질학 체계에 변화가 생기지 않겠나 생각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해양지질학 분야가 연구되면서 지질학의 체계는 그 이전보다 훨씬 세밀하게 튼튼해졌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비상인 가운데 예방의학이나 방역사업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이 일선 종사자들을 돕고 있는데 의사 면허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자문단의 판단을 믿을 수 없다고 발언하여 사회를 불안으로 내모는 현상은 잘못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발언자의 전문성을 먼저 확인하고 보도해야 한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혼동하는 이도 전문가라며 언론에 숟가락을 얹는 현실이 한심스럽다. 같은 분야라는 것만으로 이말 저말 보도한다면 오보나 왜곡 보도이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