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05호 2020년 4월] 기고 에세이

꼰대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박장호 와이젠 글로벌이사회 의장 에세이


박장호
국제경제85-89
모교 치대 산학협력교수 
와이젠 글로벌 이사회 의장

꼰대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어떤 사람에 대한 평을 할때 ‘꼰대’라는 말처럼 확실하게 한방에 보내 버리는 말은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 참으로 강력하고도 정확하게 사람의 특징을 묘사하여 보내 버리는 말인데 이 말은 어원이 어디일까?

여기 저기 찾아봐도 명확한 유래는 알기 어려운데, 여러 가지 지식을 모자이크해 보면 번데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인 ‘꼰데기’가 나이드신 분들의 주름과 닮았다 하여 꼰대가 나왔다는 것이 1설이다. 나이 들어 피부에 콜라겐이 감소하면 쭈글쭈글 주름이 지는 것은 노화의 당연한 과정인데 이를 번데기의 주름과 매치시켰으니 관찰력도 놀랍고, 좋게 보면 문학적 해학이 돋보이고 나쁘게 보면 아주 가학적이다.

2설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수입된 담배를 피우는 곰방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담배가 기호품으로 수입되면서 ‘곰방대’라고 불리는 담뱃대가 제작되었다. 먼저 ‘대통’이라 불리는 조그만 병뚜껑같은 곳에 담배잎을 재어 불을 붙이고 30cm 정도 길이로 담배연기가 통과하는 ‘설대’라는 부분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입으로 흡입하기 위해 ‘물부리’라고 불리는 트럼펫같은 관악기의 리드부분이 있는 구조였다.

재력이나 위세가 있는 사람들은 서민들이 보통 대나무로 만드는 설대 대신 구리나 은, 심지어 금이나 옥으로도 만들어 담배를 피웠으니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담배를 피운다거나 그것도 화려한 곰방대로 피운다는 것은 아주 있어 보이는 일이었다. 이런 분들이 아랫사람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한 번 말을 꺼내면 대화가 아니라 곧 훈계가 되는 것이고 곰방대에 담배를 쟁이면 보통 20~30분 정도는 피우니 유교문화에 따라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아랫것들은 참으로 무릎이 저리고 짜증이 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듣는 태도가 불량하면 곰방대는 하시라도 머리위로 떨어지는 망치가 될 수 있으니 이 곰방대로 향로를 땅땅 때려가면서 말씀 하시는 그런 분들이 꼰대로 진화되었다는 설이다.

3설은 좀 더 글로벌하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고 난후 일본은 회유책으로 조선의 대신들에게 귀족의 작위를 내리고 일본 귀족으로 편입을 시도한다. 서양 귀족체계를 그대로 따랐던 일본은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작위와 은혜로운 돈이라는 은사금을 조선의 지도층에 있는 양반 76명에게 내렸다. 조선 황제는 왕으로 격하하여 봉하고 공작은 해당자가 없고 후작이후 남작까지 내린 작위 중 백작이 일반 민초에게 제일 잘 통칭되었다 한다. 백작은 불어에서 유래한 영어인 ‘comte’로 불렸는데 이 꼼테들이 새로운 가버넌스의 통치체제에 편입된 후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지시를 하였다 한다. 

꼼테 밑의 마름이나 청지기들은 자기들보다 밑의 하층민이나 민초들에게 눈에 힘을 주고 지시하면서, 그 발어사로 “우리 꼼테께서 말씀하시길…” 하면서 소작농들을 부렸다 한다. 마름도 보기 싫은데 꼼테는 얼마나  보기 싫었을까? 그 꼼테가 꼰대가 되었다는 설이다. 무엇이 맞는 학설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확인해 볼 수 없으니 단정할 수도 없고 국어학자께 여쭤 고증할 것까지는 아닐 것 같아 짐작만 하고 만다. 

며칠 전 강남역을 지날 때 어떤 젊은 분이 “아버님 여기에 서명 한번 해 주시고 가시면 안 돼요?”라고 했다. 아직 마음은 22살, 대학교 3학년인데 이 자가 아버님이라니! 분노가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순간이었는데, 이런 일이 두 번째였는지라 표정 관리에는 성공했다.

약 30년 전 20대 홍안의 얼굴로 도처에서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으면서 캠퍼스의 여기저기를 다녔다. 그때의 그 기억과 이미지 중 어떤 것들은 이상하게도 바로 전일처럼 너무나 선명하다. 심지어 그와 그녀가 했던 목소리의 톤까지도 명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메뚜기로 좌석을 잡던 도서관과 400원짜리 학생식당, 고민과 좌절, 생동하는 5월, 중앙도서관 옆 라일락의 향기마저 지금처럼 느낄 수 있는데 바람은 나에게 30년이 흘렀다고 속삭인다. 

항상 어리게만 봤던 90학번 후배가 막걸리잔을 앞에 두고 “형님, 저도 이제 50이 되었어요.”라는 말을 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네가 50이면 나는 얼마지? 어머나! 기성세대는 다 구체제라 정의하고 모든 압박과 간섭을 거부하고 혜택마저도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며 다녔는데 이제 내가 그때 규정지었던 그 구체제에 이미 진입해 있다니! 마냥 녹두거리에서 ‘Killing Fathers Spirit’으로 대학원생만 봐도 세대차이 느껴지는 노땅으로 취급했던, 가슴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던, 그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사회대 건물을 교수 친구와 걸어갈 때 아무도 인사하는 학생들이 안 보였다. “너, 그런데 종신 교수 맞냐? 왜 아무도 인사를 안하지? 선배이자 선생님인데….” 라는 내 말에 그 친구는 요즘 학부생들은 인사를 안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싫다고 했다. 지적질이나 꼰대질로 오인되어 들이닥칠 후폭풍이 싫고,  남의 예를 논하여 내가 혹시 잘못했을 때 잘잘못이 들춰지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꼰대가 업그레이드 되면 ‘멘토’가 된다. 스펙도 되고 콘텐츠도 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인품에 재력도 되어 커피라도 한잔 사 주면서 미래를 점찮게 코칭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만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꼰대가 한번 더 다운그레이드 되면 ‘틀딱’이 된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내용 없는 말을 아무에게나 뿜어내며 커피까지 얻어 마시려 들면 틀니가 딱딱거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이 말은 파괴력이 꼰대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다. 나는 멘토일까? 꼰대일까? 틀딱일까? 시절도 수상한데 머리가 복잡해진다. 중앙도서관 옆 라일락은 언제 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