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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2019년 11월] 기고 에세이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 ⑨ 심리와 해석의 문제

나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고 서술할까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 ⑨ 자서전 서술 방법

글 정대영 (국어교육98-07) 뭉클스토리 공동대표



지난 글에서 인물에 대한 서술은 세 가지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인생의 핵심을 관계라고 본다면 인물을 서술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나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고 서술할 것인지의 문제를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심리와 해석의 문제라고도 부릅니다.

자서전을 이야기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나’ 자신을 대상화하는 일도 가능해집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마주하기 싫거나 괴로운 기억을 다른 일로 덮어버리거나 얼버무려 넘어가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부각하여 설명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심리적 회피라 부를 수 있고, 문제의 핵심과 본질에 직면하지 않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서전을 쓰려고 하시는 분들을 만나고 상담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심리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거나 서술 자체를 어려워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상처나고 괴로운 기억은 시간이 치유해 준다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치유보다 침잠하는 것 같습니다. 그 가라앉은 감정들이란 배신감, 좌절, 실망 등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면의 심리를 어떻게 마주하고 서술할 것인가가 자서전의 깊이와 맛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내면의 심리를 어떻게 서술하면 좋을까요. 저는 경험적으로 내면의 심리를 서술할 때에는 인식, 표현, 해석, 갈무리의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합니다.

인식 단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아마도 이 단계가 제일 고통스러운 관문일지도 모릅니다. 방법은 쉽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내 인생에서 마음에 걸림이 있는 부분을 천천히 탐색해 보십시오. 누군가에 대한 원망일수도, 좌절된 기회에 대한 회한일 수도 있습니다.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할 수 있고 때로는 이 과정이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직면하기와 솔직하기입니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면 그 다음은 표현 단계입니다. 이전 단계에서 겪었던 경험을 몇 가지 언어로 구체화 해보는 것입니다. 감정이나 느낌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너무 섣부른 규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다음은 해석 단계입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자서전의 문장이 시작됩니다. 이 단계에서 문장을 어떤 순서로 써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것은 없습니다. 무슨 말부터 써야 할지는 전적으로 자서전 작가의 마음입니다.

다만 앞의 과정들을 거치며 느꼈던 생각과 떠올렸던 언어들을 되도록 쉽고 자세하게 가상의 독자에게 들려주겠다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문장이 하나씩 완성되어 갈수록 조금씩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나 상담을 하시는 분들은 이러한 효과를 치유의 과정이라고도 부릅니다.

끝으로 갈무리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이전의 해석 단계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해석이 끝나고 갈무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석을 하면서 동시에 갈무리가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해석이란 언어로 규정하는 일이고 그 언어가 새롭게 형성하는 생각의 틀이 되기에 갈 곳이 없었던 감정들이 그 언어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선배님들께 심리와 해석에 대해서 말씀드림이 송구스럽습니다. 다만 자서전이란 결국 마음을 담는 문제이므로 이 마음의 문제를 한 번쯤 다루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 마음이야말로 어쩌면 자서전 쓰기의 진정한 원동력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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