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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2019년 6월] 기고 에세이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④ 자서전 쓰기에 필요한 자료와 시간에 대하여

자료를 검토하며 옛 생각에 잠겨보자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④ 자서전 쓰기에 필요한 자료와 시간에 대하여

자료를 검토하며 옛 생각에 잠겨보자

글 정대영 (국어교육98-07) 시니어 자서전 제작 기업 뭉클스토리 공동대표


많은 분들이 자서전은 저자가 자신의 살아온 일생을 남김없이 모두 기록해야 한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념은 ‘내 일생은 내 기억 속에 모두 다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내 기억을 더듬어 진술한 것들은 모두 진실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전제와 믿음으로부터 출발할 때 자서전 쓰기는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일단 기억 그 자체가 희미하기 때문이고, 기억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서술은 나만의 주관적 진실에 그치거나 사실과 다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완벽하지 않아서 20년 전에 일어난 일과 19년 전에 일어난 일의 전후 관계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현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개인적 사건의 선후 관계에 대한 기억이 명확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려는 저자가 ‘내 기억 안에 다 있다’고 확고히 믿기보다는 나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최대한, 충분히 모아 놓고 이들 자료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하면서 나의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 보는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내 삶의 확실한 물증이 되면서 내가 서술하고자 하는 것들의 진실을 보증해 줍니다. 부가적으로는 이러한 자료를 하나씩 정리하고 수집해 나가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게 의미 있던 일들을 추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나와 관련 있는 자료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차적으로는 문서 자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직접 쓴 저작물과 타인이 나에 대하여 쓴 인터뷰나 2차 저작물이 그것입니다. 내가 쓴 일기나 보고서, 공적 기록물, 저서, 논문, 매스컴을 통해 인터뷰한 내용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인생의 반려자와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면 그것도 훌륭한 자료입니다.

꼭 종이로 된 기록물로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손과 눈을 거쳐간 것이라면 모두 자료의 범위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살았던 정든 집이 있으시다면 그것도 자료입니다. 그 집을 매매한 기록인 부동산 서류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리운 고향이 있으시다면 어릴 적 고향에서 찍은 사진도 좋습니다. 보관하고 있는 앨범을 모두 꺼내어 자료 더미에 일단 쌓아두시면 회고를 위한 준비가 된 것입니다.

자료가 충분히 준비되었으면 이제 그것을 검토할 나만의 조용한 공간과 여유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공간이 적절치 않으면 방해를 받거나 흐름이 끊기기 쉽습니다. 마음을 번잡스럽게 하는 일들이 침범하지 않게 여유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필수입니다. 이제 준비한 자료를 하나씩 검토하면서 과거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문장들을 검토해 보십시오. 아마도 기억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준비된 앨범을 열어보고 사진 한 장 한 장을 검토하며 옛 생각에 잠겨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조용한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그동안 축적한 자료들을 훑어보시면서 가슴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들을 느껴보십시오. 바로 그 생각과 감정이 자서전 쓰기의 대상입니다.

자료를 검토하는 데는 적어도 몇 시간에서 많게는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검토하고 얼마나 더 생생하게 그때의 상황에 몰입하는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내가 경험했던 당시의 순간을 가감 없이 직면하고 서술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입니다. 그중에는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아픈 순간도 있을 것이며, 원망과 후회의 감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회고가 마무리되고 자서전 서술이 시작되는 순간은, 이러한 과거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현재의 ‘나’가 돌볼 수 있게 되었을 때입니다. 모든 심적 어려움을 다 극복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쁘고 힘든 감정들을 조금은 담담하게, 어렵지만 한 발자국씩이라도 쓰고, 쉬기를 반복할 준비가 되었다면 그때가 자서전 쓰기를 위한 적기입니다.



*정대영 동문은 시니어 자서전 제작 기업 ‘뭉클스토리‘를 운영하며 일반인의 생애 이야기를 정리해 자서전을 써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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