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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2019년 8월] 기고 에세이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 ⑥ 시대상황은 선택의 이유가 된다

자서전의 예상 독자들은 '야간통행금지' 모를 수도 있다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 ⑥ 자서전 서술 방법
시대상황은 선택의 이유가 된다

글 정대영 (국어교육98-07) 뭉클스토리 공동대표



내가 살아온 시대 천천히 고민하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서술해야


자서전에서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서술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관습, 당시의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서전을 쓰면서 내가 살아온 시대를 천천히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시에는 타당했던 행동이 현재의 가치 기준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던 것을 대부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대중교통수단은 밤 12시가 되기 전에 집에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자정 이후 길에서 적발이 되면 거동수상자로 몰려 파출소에서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982년에 해제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야간통행금지는 밤문화의 중요한 독립변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의식하고 자신의 행동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개인은 결국 제도라는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개인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틀을 깨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서전의 예상 독자들이 야간통행금지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자서전의 독자가 될 자녀 세대, 그 이후의 세대로까지 내려가면 ‘내가 당연하게 알고 체험해 왔던 사회적 배경’들이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를 것이 됩니다. 내가 당연히 알고 체험한 것에 대하여 왜 그랬는지, 이후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서술해 주어야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고, 내가 서술한 행동들이 의미를 갖고 후대에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의미 있던 행동이 후대 독자에게는 의미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80년대에 어느 회사원이 전체 임직원 회식 자리에서 양해를 구하겠다며 말을 합니다. 오늘 저녁에 가족들과 모임이 있어서 일찍 들어가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좌중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아마 그 당시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유냐고 하면서 야유와 면박을 받거나 팔불출이라는 조롱을 받기 십상입니다. ‘남자의 직장생활’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받던 시절이기 때문에 ‘가족사랑’이라는 가치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30년 정도 지난 현재, 동일한 이유를 댄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현재라면 누구도 쉽게 그의 선택을 비난하기 어려울 것이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우세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 30년 동안에 ‘가족’이라는 가치가 ‘직장’만큼이나 상당한 수준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위와 비슷한 사례를 서술하려고 한다면 당시의 분위기, 직장 내 문화를 어느 정도 함께 서술해 주어야 후대의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읽힐 수 있는 자서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월급으로 받았던 노란 월급봉투,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여러 개의 가명 통장들,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주고받았던 어음들과 가계수표들, 지금은 옛 추억이 되어버린 비둘기호와 통일호 기차들, 연말이면 아버지께서 받아오시던 달력들, 집집마다 나누어주던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기억나시는지요. 시대적, 사회적 환경은 개인이 살아가는 무대이자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막상 그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몸담고 있는 사회가 명쾌하게 정의되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만큼의 거리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시간의 거리를 확보한 뒤에는 기억이 선명하지 않고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더더욱 자서전에서는 내가 서술하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의식을 놓지 말아야 하고 독자에게 친절하게 서술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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