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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2019년 11월] 뉴스 기획

“요즘 학생들에게 엘리트, 미래의 리더라고 하면 부담스러워 해”

‘서울대인의 역할’ 4인 좌담회




“요즘 학생들에게 엘리트, 미래의 리더라고 하면 부담스러워 해”


‘서울대인의 역할’ 4인 좌담회

호기심 남다르고 자존심 세
남과 협업하는데 불편해 해
지역대학과 자원 공유 필요

서울대와 서울대인을 향한 자성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좋지 않은 뉴스의 주인공이 서울대인인 경우가 많았고, 사교육 문제와 맞물려 그 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도 끊이질 않는다. 서울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정부 예산 확보와 기부금 유치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총동창신문 지령 500호를 맞아 ‘서울대와 서울대인의 역할’을 주제로 지난 10월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네 명의 동문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대가 개교한 지 73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이라면.

안규리 : 대한민국의 산업화, 민주화에 이바지했다.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수많은 서울대인이 땀을 흘렸다. 경쟁 사회를 유도하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홍기현 : 대학의 핵심 역할은 인재 배출과 연구다. 결국 서울대의 긍정적 영향이라면 전문성을 갖춘 인재 배출과 학문적 연구를 통한 지식제공, 연구개발의 원천적 기여라고 할 수 있다. 부정적 영향이라면 서울대 출신 중 소수이지만 도덕성 결여, 공공심의 부족과 독점적 인재 확보로 인해 국가 전체의 경쟁력 향상에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상기 : 서울대 존재가 우리 사회에 도전하려는 꿈을 심어준 것은 긍정적인 효과라 본다. 안규리 동문 말씀대로 사회와 더불어 가야 한다는 정신은 부족했다.

-각자가 느끼는 서울대인은.

홍지수 : 학부생이든 대학원생이든 학생들은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 일부 대학원생들은 옆 방 연구실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치열하게 산다.
이상기 : 내가 만난 서울대인들은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르다. 서울대 출신으로 자존심도 세지만 자존감과 책임감을 갖고 사는 것 같다.

홍기현 : 뛰어난 친구들이 많다 보니 젊은 시절엔 상대적으로 위축되곤 했다. 서로가 그렇다 보니 조용히 나서지 않으려는 성향도 있는 것 같다. 지금은 퇴직해서 스스럼없이 만난다. 요즘 내 또래 친구들은 사회에 어떻게 하면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 국제 행사나 단체에서 자원봉사 하는 친구들도 꽤 된다.

안규리 : 서울대 출신은 분석적이고 차갑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회공헌교수협의회를 운영하면서 ‘천사 같은 서울대인이 많구나’ 종종 느낀다. 소리없이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분석적이면서, 그 분석을 기반으로 현명하게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분들이 아닌가 싶다. 매우 큰 성장능력, 나이가 들면서 포용력이 커지는 사람들이다.

-2000년대 초반 ‘서울대 폐지론’이 나온 이후 꾸준히 국공립대 공동학위제가 논의되고 있다. 그 배경은 뭐라고 보는지.

홍기현 : 서열화로 인한 입시 과열, 사교육비 증가, 주요한 직책이나 일자리 독점의 문제로 노무현 정권 초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동안 서울대에 많이 투자해서 기여한 바가 많기 때문에 실제 그렇게 실현되지 않은 것 같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이공계의 카이스트, 포스텍과 같은 경쟁대학이 출현하고 의약계 선호 현상 등으로 서울대 인재 독점은 완화됐다. 또 기초학문의 전반적 퇴조로 그나마 서울대에서 기초학문과 첨단기술 분야를 담당하지 않으면 장기적 연구력이 저하된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안규리 : 지금 서울대가 누리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들을 전국에서 나누자, 그런 바람이 있는 것 같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들이 역량을 키워나가는 상황에서 우리도 같이하자는 목소리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포항공대나 카이스트 등이 바이오사이언스 연구할 때 서울대 의대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지금 나오는 말은 폐지론보다는 서울대에서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확대해 달라는 말로 들린다. 관악산에서 벗어나 핵심 가치가 흔들리며 점점 경쟁사회로 빠져가는 이 혼돈상황을 서울대가 분석하고 가능한 해결방안을 마련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폐지론에 담겨 있다고 본다.

홍지수 : 서울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서울대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 그런데 서울대가 없어진다고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까? 제2, 제3의 서울대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서울대는 학교이기에 교육과 연구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다보면, 그 결과들이 사회에 환원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상기 : 서울대 폐지론은 외부 요인이 크다. 당시 정치권에서 서울대를 폐지하면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계산한 것 같다. 지금 이 정부에서는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는 것 같은데, 육사 등 사관학교를 홀대하는 것을 보면 언제 또 나올지 모른다.
어느 사회나 리딩그룹이 있다. 현재 역량과 그동안 경험이 축적된 자원이다. 만약 정치세력이 서울대를 포퓰리즘 관점에서 폐지한다 했을 때 국민이 막아주지 않고 서울대가 방어하지 못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는 위기를 내부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오세정 총장 취임 이후 거점 국공립대와 자원을 공유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홍기현 : 당위성은 있는데 실제로 잘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충분한 재정과 인력이 뒷받침 돼야 협업이 가능하다. 현재 이공계 교수 보수나 연구비가 카이스트, 포항공대보다 적다. 리더가 돼서 뭔가를 전수하려면 뭐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정부 역시 각 거점대학에 직접 지원 해주고 있기 때문에 돈 없는 우리가 나서서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좌담회는 지난 10월 2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상기·홍지수·홍기현·안규리 동문.


-서울대 교수 중 연구나 봉사로 사회에 기여하는 분들이 많다. 좋은 소식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홍기현 : 새 총장님 오시고 홍보 기능을 많이 강화했다. 민간에서 홍보 전문가도 영입했다. 카드뉴스인 ‘스누새’에 대한 호응이 높다. 다만 언론환경이 메이저 신문과 공중파 중심에서 유튜브, SNS, 인터넷 매체 등 다변화하면서 일일이 대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안규리 : 부정적인 뉴스를 잘 관리하는 게 우선 필요하다. 나쁜 뉴스가 나오고 의견이 분분할 때 해당 교수나 단체에만 맡기지 말고 서울대 본부가 신속하게 나서서 입장을 표명하면 좋겠다. 황우석 교수 사태 때 사람마다 입장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서울대 본부의 의견은 이런 것을 존중하고 이런 것은 아니다 등 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기 : 요즘은 입소문이 오히려 오래가고 가치 있는 것 같다. 학교는 동문들 소식을 좀 더 챙겨주고, 동창회는 학교 소식을 좀 더 비중을 뒀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창업 활성화에 동력이 되고자 모교는 AI에 기반한 첨단 산업 단지를 낙성대 주변에 계획하고 있다. 홍기현 부총장께서 이와 관련해 서울대의 비전을 말해 달라.

홍기현 : 2012년 법인화 이후 학교의 비전을 ‘인류의 미래를 선도하는 창의적 지식공동체’로 정했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교육과 연구를 통한 사회적 기여가 핵심 가치다. 다만 교육, 연구, 산학협력을 넘어 지역과 융합되는 대학, 소위 ‘University 4.0’ 시대를 맞아 산학협력을 단순히 학문 분야와 기업 차원을 넘어서서 지역 전체로 확산시키려고 한다.
후문에서 낙성대역 사이의 ‘AI 벤처밸리’가 그것이다. 기존 창업지원센터에 제한된 학교 공간에서 창업을 육성하던 데서 1.5km 되는 거리 주변을 모두 창업단지로 바꾸려는 계획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고 토지용도 변경 등 자치단체와 협의할 사항이 많다. 10년 정도를 내다보고 하는 장기 사업이다. AI 분야에서는 교육 면에서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 연구로는 AI연구원 개관, 산학협력은 AI밸리가 이뤄지면 3박자가 완성된다.

-서울대 역할을 말할 때 리더 양성이 자주 언급된다. 지금도 유효한가.

안규리 : 지식기반의 권위적 리더십에서 21세기를 리딩하는 후배들을 키우는 데 공감을 한다. 실력과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사회에 필요한 자질을 갖춘 인재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성과 사회성 갖춘 리더들의 산실이 서울대 였으면 좋겠다.

홍지수 : 최근 4~5년 전보다 본부에서 학생사회를 존중해주고 대화를 많이 하려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과정들에서 학생들은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홍기현 : 요즘 학생들에게 엘리트, 미래의 리더라고 하면 부담스러워 한다. 과거처럼 어느 조직의 리더가 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일단 되고 나서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거 은사님이 ‘여러분은 에스컬레이터에서 거꾸로 걸어가도 결국은 위로 올라갑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그냥 떨어진다. 그런 상황이라 입학 때부터 자기 일에 충실하라는 정도의 요청만 한다. 어느 조직에서 과제를 풀어나갈 때 서울대 출신이 판단한 게 맞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절충하는 게 팀의 성과를 높인다. 이러한 훈련을 쌓도록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가 사회에 기여를 더욱 많이 하기 위해선 재정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 지원금은 한계가 있고 동문 기부가 많아져야 하는데.

홍지수 : 스탠퍼드나 하버드대를 보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동문이 많다고 들었다. 내가 받은 혜택을 후배들에게 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는 의미라고 한다. 일부겠지만, 졸업하는 순간 학교쪽으로는 쳐다도 안 본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학교에 있는 동안 제대로 교육받고 보호받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 같다. 학교가 좀 더 마음을 써줄 부분이 있다. 작년에 치러진 총장 선거에서 동문들이 총장추천위에 참여했다. 이렇게 학교에서는 동문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문들도 학내에 관심을 갖고 많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상기 : 기부받은 장학금을 제대로 써야 한다. 성적순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후배들에게 우선 지급돼야 한다. 또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졸업 후에 장학 기부 대열에 동참하겠다는 서약서를 반드시 받았으면 한다. 연변과기대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

안규리 : 재학생 때부터 소수의 금액이라도 기부하는 정신을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천원으로 시작해 졸업 후에는 만원, 3만원, 10만원으로…. 그러려면 소액 장학금 기부를 쉽게 할 수 있는 창구를 개발해야 한다.
홍기현 : 학교 다닐 때 교육 만족도가 높고 동기 선후배와 좋은 추억이 많으면 홈커밍데이 등의 행사 때 기부를 많이 한다. 우리는 그런 전통이 약하다. 교육 만족도를 높이는 데 노력을 많이 기울이지 못했다. 그런 것 없이 동기와의 끈끈한 링크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미국 대학사회와 달리 학교와 동창회로 기부 창구가 이분화돼 있어 모금에 어려움이 있다.

-서울대 변화를 위해 총장을 비롯해 산학협력단장, 발전기금 상임이사 등의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안규리 : 공감한다. 외부 인사도 들어와야 다양성이 충족될 수 있다.

홍기현 : 산학협력단 산하 지주회사 CEO는 외부에서 온 박동원 대표가 맡고 있다. 발전기금 자금관리도 외부 자문을 받고 있다. 총장직은 현재 외부 인사도 후보 등록할 수 있다. 학내외 사정에 밝은 인물이면 가능할 것 같다.

이상기 : 총장의 경우 외부에서 온다면 협조가 안 돼 일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산학협력이나 발전기금의 경우는 서울대도 법인화됐으니까 유연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총장 연임에 대해서는.

이상기 : 4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본인이 못하면 후임이 하면 되지 않나. 정당처럼 리딩그룹이 바뀌는 게 아닌데 4년이면 적당하다고 본다. 서울대 교수 중에 총장 할 분들이 많다. 총장은 권력이 아니고 서비스 하는 자리 아닌가.

안규리 : 연임에 찬성한다. 4년은 무슨 일을 하는 데 너무 짧지 않나. 일관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홍지수 : 연임 연부를 떠나 총장으로서 어떠한 일을 결정할 때, 10년이 지나도 그 책임을 느낄 수 있게 신중하게 결정을 하셨으면 좋겠다.

홍기현 : ‘결정한 사람이 책임져라’는 민간기업이 돈과 관련된 부분을 평가할 때 가능한데 공직시스템에선 어렵다. 미니멈은 내 임기 중에 하는 일은 내가 처리한다 정도다. 전임자가 결정했기 때문에 내가 안 한다가 더 나쁘다. 내가 결정한 것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연임제의 경우 모든 사람들이 저 분이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무도 도전 안 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지금 총장님도 연임하려면 3년차부터 선거운동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6개월 일 못하고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사회 및 정리=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