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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2019년 11월] 뉴스 본회소식

1969년 총동창회 첫발…40만 동문의 든든한 울타리

50주년 총동창회 어제와 오늘




1969년 총동창회 첫발…40만 동문의 든든한 울타리


박두병 동문이 초대 회장
1987년 마포 동창회관 건립
장학빌딩 재건축하며 ‘비상’
장학생 13명에서 1300명으로
역사연구기록관 2020년 착공

1969년 창립한 서울대학교총동창회가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10만명에 미달하던 회원 수가 40만명으로 네 배가 됐고, 장학생 십수 명 규모로 미약하게 시작한 장학사업은 연간 1,300여 명에게 35억원을 지원하는 규모로 확대됐다. 서울대 50년사와 동창신문의 기록 등을 통해 동창회 반세기를 반추해봤다.
한때 ‘서울대 졸업생’보다 각 단과대학 졸업생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던 시기가 있었다. 본회 창립 이전까지 동문들의 친교는 단과대학의 울타리 내에서 이뤄졌다. 통합개교 초기 모교가 연립대학 성격이 강했던 것의 영향이 컸다.

모교가 종합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를 서포트하기 위해 단과대학 동창회는 통합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68년 12월 각 단대 동창회 대표들이 모여 서울대학교총동창회 발기인 총회를 개최했다. “각 단과대학 유대를 강화하고, 모교 발전에 전체로서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이어 1969년 2월 12일 열린 창립총회에서 상대 동창회장인 박두병(경성고등상업32졸) 당시 두산그룹 회장을 초대 회장에 선임했다. 주요 기구에 이사회와 상임이사회, 사무처를 두는 것을 골자로 한 회칙도 통과됐다.

박두병 초대 회장이 제4대까지 연임 후 제5~7대 민복기(경성제대법문37졸) 전 대법원장이 재임한 1974년부터 1980년에는 현재 총동창회 활동의 원형이 되는 여러 사업이 시작됐다. 종래 단과대학의 연합체 개념을 탈피하고자 명칭에서 ‘총’자를 떼기도 했다.


1998년 농생대 안양수목원에서 열린 가을 홈커밍데이 행사에서 고 김재순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1970년부터 모교 재학생 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1974년에는 관악캠퍼스 조경사업을 위해 2개월 만에 60여 만원의 헌수금을 접수하는 등 모교를 위해 동문들의 성원을 모으는 일이 자연스럽게 전개됐다. 사업 진행과 홍보를 위해 필수인 동창회보를 1976년 격월간지로 창간했다.

1977년에는 동창회 지표인 ‘참여·협력·영광’을 제정하고, 1978년 동문들의 숙원사업이던 동창회관 건립안을 이사회에서 채택했다.

1980년 재단법인 관악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장학사업이 시작됐다. 첫 장학생 수는 불과 13명이었지만 훗날 장학생 1,000여 명 시대를 위한 소중한 첫걸음이었다. 관악회 전담으로 동창회관 건립 준비도 착착 진행됐다. 제8대 원용석(경성고등공업29졸) 회장 시절 3억원의 동창회관 건립기금을 모으고, 제9대 김준성(경성고등상업42졸) 회장은 지금의 장학빌딩이 있는 마포구 도화동에 회관대지를 매입했다. 제10대 최주호(수원고농39졸) 회장 때 첫 삽을 떠 1987년 지하 1층 지상 5층, 연건평 1,133평의 번듯한 동창회관을 준공하기에 이른다.

1994년 제15~18대 김재순 회장이 선임된 이후 제19~24대 임광수 회장, 제25~26대 서정화 회장을 거치며 본회는 다양한 성장을 이룬다. 김재순(경제47-52) 회장은 1946년 통합 개교 이후 학번의 첫 총동창회장이었다. 장기 계획을 통해 조직 활성화, 재정 확충, 모교 지원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미주동창회를 비롯한 해외지부와 국내 지방지부 네트워크가 확립됐다. 김재순 회장은 회원 발굴과 참여에도 주력해 젊은 동문을 위한 총동창회 홈페이지를 만들고, 총동창회 카드 사업을 실시해 재원을 확충하기도 했다. 1976년 개정한 ‘서울대학교동창회’라는 명칭은 1994년 다시 ‘서울대학교총동창회’로 개정됐다.



2007년 6월 마포 공덕동 장학빌딩 부지에서 임광수 회장 등 임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2002년 제19대 회장으로 취임한 임광수(기계공학48-52) 동문은 “임기 중 서울대 총동창회관 신관을 건립하고 특지장학회 기금을 확충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지켰다. 국내외 동문들에게 장학빌딩 건립기금 모금 활동을 벌인 끝에 애초 목표였던 3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400억원이 모인 것. 임 회장이 먼저 52억원을 쾌척하자 10억원 이상 기부자들이 줄을 이었다. 동문들의 성원을 모아 2011년 마포에 지하 6층, 지상 18층의 장학빌딩으로 재건축함으로써 모교 재학생과 교수들의 장학금과 연구지원비를 지원하는 든든한 원천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2003년 대두된 ‘서울대 폐지론’에 대응해 같은 해 창립한 모교 출신 언론인 모임 ‘관악언론인회’를 통해 일간지와 총동창회보 등을 통해서 강하게 반박했다. 모교 역사 찾기를 통해 구한말 법관양성소, 한성사범학교부터 시작된 모교의 뿌리를 찾아낸 끝에 2010년 모교 평의원회에서 ‘개학 1895년, 종합대학으로서의 통합개교 1946년’이라는 의결도 이끌어냈다. 이 시기 정기총회 인원은 기존의 4배 수준으로, 홈커밍데이 참석자는 3,000여 명 선으로 느는 등 동창회 참여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본회도 바둑대회와 골프대회를 신설해 동문들의 참여의 장을 더욱 늘렸다.

2014년 취임한 제25~26대 서정화(법학51-55) 회장에 이르러 동창회는 회원 40만, 연 장학금 30억원 시대를 열었다. 소액으로 기부하는 ‘풀뿌리 장학금’ 모금 운동과 서화 전시회, 동문 상조 서비스를 활용한 신 기부문화를 정착시킨 것이 배경이 됐다. 이 시기 동창회는 비용을 줄이는 소극적인 활동에 주력하기보다 수익 창출 사업을 수행하는 창의적인 프로핏 센터(Profit center)로 대전환을 시도해 와인 사업, 동문여행, 건강검진 할인서비스 등이 동문들의 좋은 호응을 얻었다. 매년 회비 납부 회원수 증가수도 종전 600여 명에서 1,300여 명으로 배가했다. 동창회보 제호를 ‘총동창신문’, 판형을 중앙일보와 같은 베를리너판으로 바꿔 일간지 못지 않은 품격을 갖추도록 한 것도 서 회장의 업적이다.

2014년 6월 4일 일본 도쿄에서 서정회 회장이 일본 윤인호 일본동창회장에게 동창회기를 전달하고 있다.


제도 정비에도 신경쓴 서 회장은 회장 임기를 2년 단임으로 하고 회장추대위원회(회추위) 제도를 신설해 더 많은 동문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 또 동문들의 명예와 역사를 보존하는 역사연구기록관 건립 사업을 추진해 관악회가 50억원, 한화를 통해 50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정하고 현재 75동 대학신문 건물을 재건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8년 3월 선출된 제27대 신수정(기악59-63) 회장은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오랫동안 남성 중심으로 운영돼 온 본회가 처음으로 여성 회장을 선출한 것이 신선한 파격이라는 반응이었다. 신 회장은 동문 대상 건강검진서비스 병원 수를 확대하고, 장학금 기부를 독려하기 위해 고액 기부자에게 세무·금융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동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꼼꼼히 헤아렸다. 뿐만 아니라 남북 평화 구축 물결에 걸맞은 미술 전시회 등을 개최하고, 창립 50주년 기념음악회를 성황리에 개최하면서 예술인 회장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박수진 기자

2018년 1학기 장학금 수여식에서 신수정 회장이 장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