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호 2019년 10월] 문화 신간안내
김지혜 동문, 선량한 차별주의자
누구나 차별주의자일 수 있는 현실 꿰뚫어
화제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창비
김지혜(전산과학91-96) 동문이 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출간 두 달 만에 8쇄(약 2만5,000부)를 찍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월 25일에는 모교 기초교육원 초청으로 재학생과의 만남을 갖기도 했다.
책은 평범한 우리가 모두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차별과 혐오의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특권이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을 말한다.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권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견’인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런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김 동문은 ‘결정장애’란 말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한 혐오 표현 토론회에서 그가 무심코 내뱉은 ‘결정장애’라는 말에 대한 한 참석자의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 ‘왜 결정장애란 말을 썼어요?’ 서둘러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왜 그 말이 문제가 되지?’ 의문이 들어 인권운동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애를 붙이는 것은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동문은 순간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 될 수 있겠구나’ 깨달았다. 그때부터 혐오표현과 모욕적으로 생각되는 표현을 수집했다.
누구나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
“이주민에게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 ‘한국 살기 좋죠’ 등은 호의를 갖고 하는 말이지만 상대방은 ‘한국인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살기 나쁘다는 것인가’ 등의 생각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책은 나도 모르게 차별에 가담하게 되는 현상에 대해 말하며 구조적인 차별 안에서는 차별을 안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차별을 하지 않기가 힘들다고 밝힌다. 김 동문은 “이러한 차별을 보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차별을 안 하기로 결심해야 한다”며 “이것은 기존 세계의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이 프로젝트는 차별당하는 사람과 함께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합니다. 여성의 이슈에는 남성이 함께 움직여줘야 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의 운동에 우리가 모두 긍정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김 동문은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한다.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청소년, 홈리스 등 다양한 소수자 관련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통해 사회에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