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96호 2019년 7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모교 전기정보공학부 한승용 교수 인터뷰

“직류자기장 세계 최고기록 깼습니다”

모교 전기정보공학부  한승용  교수

“직류자기장 세계 최고기록 깼습니다”

콜럼버스 달걀 같은 아이디어
핵융합장비·MRI 소형화 가능


한승용(전기공학94-98) 모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직류자기장 세계 최고 기록 44.8테슬라를 45.5테슬라로 갱신했다. 기존 고온 초전도 자석에서 의도적으로 절연체를 제거해 1㎟ 면적당 1,260A 전류까지 흐르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절연체가 있는 기존 고온 초전도 자석의 6배가 넘는 전류량으로 향후 자기장을 활용하는 산업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큰 키에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 흡사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한승용 동문을 지난 6월 26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테이프 형태의 초전도선을 감아 자석 코일을 만들 때 전류가 섞이지 않게끔 선과 선 사이에 절연체를 넣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말랑말랑한 절연체 때문에 기계적으로 약해진 자석은 불특정 다수 요인에 의해 초전도 특성이 사라지는 ‘퀜치(Quench)’가 발생, 자석이 타버리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던 2010년 무절연 초전도 실험을 반대했던 제 상사가 연구소를 비운 사이 절연체를 제거한 실험을 강행했습니다. 고전류에도 잘 버텼고 운전 안전성도 훨씬 높았죠. 상사가 돌아와서 보시곤 연구소의 메인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셨어요. 당시로선 어려운 결단이었죠.”

한 동문은 무절연 초전도 기술의 아이디어를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유했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지만 동시에 너무 간단하기도 해서 아무나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 특히 중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안 건드리는 게 없는 지경이라 암 치료 가속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등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밖에 핵융합 발전, 풍력 발전, 에너지 저장장치, 오·폐수 처리, 전기 추진수송 등 고자기장이 쓰이는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폭넓게 적용될 전망이다. 2017년 여름부턴 무절연 초전도 자석이 전기전자학회(IEEE) 기술분류표에 등재될 정도. 

“무절연 고온 초전도 자석을 통해 직류자기장 최고 기록을 갱신하면서 초고자기장 연구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최대 난제였던 운전 안전성 문제는 해결됐지만, 초고자기장의 영향으로 초전도선이 휘어지는 현상을 발견해 새로운 연구과제를 던져주게 됐죠. 이제부턴 이러한 독특한 기계적 변형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극복하느냐가 상용화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미국 국립 고자기장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했지만, 우리나라 정부 부처에서도 한 동문의 연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략기획단이 준비하고 있는 ‘산업연계형 공통기반기술’에 그의 연구가 1순위에 꼽힌 것. 파급력이 큰 원천기술을 통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려는 취지에서 선정하는 만큼 ‘게임 체인저’로서 한 교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실제로 한 동문은 삼성전자에 MRI 장비 시장을 타깃으로 대담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현재 MRI 등 의료 기기는 GE·지멘스·필립스가 독과점하고 있습니다. 7테슬라짜리 MRI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도 3테슬라짜리 장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이후엔 4, 5, 6테슬라 순으로 개발해 이윤을 남길 작정인 거죠. 기술적 담합으로 나눠 먹는 의료 기기 시장에 7테슬라짜리 MRI를 먼저 출시해 치고 나가자, 이후 연구를 통해 8, 9, 10테슬라 수준으로 올려 세계 최고의 MRI 장비 회사로 도약하자고 제안했습니다.”

MRI는 복합적 장비이므로 초전도 자석 기술만 갖고 되는 일은 아니다. 다른 많은 산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동문은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적 기술이라도 주변 기술이나 기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냉정하게 짚었다. 최근 100배 해상도 MRI 기술 개발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국내 학자들의 우수성과 우리나라 R&D 투자의 적극성을 강조하면서 “도전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던 미국 국립 고자기장연구소, MIT뿐 아니라 한국 연구재단,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기연구원, 핵융합연구소 등 국내 연구기관과 삼성 미래기술 육성재단, 주식회사 서남 등 국내 기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외 한국전력, 효성중공업, 철도기술 연구원, 원자력 의학원 등에서도 기술의 확장성에 관심 보여주셔서 요즘 정말 행복하게 연구하고 있어요. 지난 10년 동안 ‘미쳤다’는 소리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만큼 위기가 많았죠. 모교 후배들도 겁먹지 말고 대담하게 도전해줬으면 해요. 이제 대한민국 공학이 그 정도 깜냥은 된다고 확신합니다.” 
나경태 기자


연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