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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호 2024년 5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전쟁 통해 다져진 ‘십팔기’엔 민족 존엄 있지요”

박금수 (전기공학93-03) 박금수무예교실 대표


전쟁 통해 다져진 십팔기엔 민족 존엄 있지요

박금수 (전기공학93-03)
박금수무예교실 대표



한국 전통무예 연구로 박사학위
무예교실 열고 직접 가르쳐


봄날씨가 화창했던 54일 경복궁. 조선 전기 직업군인 갑사를 뽑는 갑사 취재 체험이 열렸다. 곤봉과 창을 휘두르며 신이 난 외국인과 아이들 사이 박금수 동문이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문무겸비그 자체인 이력이다. 조선 후기 정립된 전통무예 십팔기(十八技)1993년부터 30여 년간 수련 중이고, 십팔기를 집대성한 정조시대 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해 모교 체육교육과에서 조선후기 진법과 무예 훈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단법인 한국무예문화보존회 대표, 박금수 무예교실 대표로 전통무예 알리기에 온몸을 바친다.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많은 사람이 전통무예를 즐겨서 기분 좋다는 박 동문을 만났다.

시작은 문을 잘못 열어서였다. 어릴 적 여느 아이들처럼 태권도를 했다. 시범단까지 했지만 태권도는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게 답답해 다른 무예에 관심이 갔다. 공대 신입생 시절 택견 동아리로 착각해 찾아간 방이 전통무예연구회’. 선배들을 따라 버들골에서 목검과 곤봉을 휘두르며 무협영화 주인공처럼 보내던 어느날, 해범 김광석 선생을 찾아갔다.

해범 선생은 전통 군영 해체 이후 명맥을 이어온 창술, 곤봉술 등의 십팔기를 전승하고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과 함께 처음으로 무예도보통지의 모든 동작을 복원해 실기 해제를 펴냈다. 그 문하에서 십팔기의 역사와 의미를 알아가며 안타까움이 커졌다. “생계가 어려워지면 순수한 무예인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스승의 만류에도 십팔기를 학문으로 접근하려 체육교육과 대학원에 들어갔다. 공대생에겐 어려운 한자 무예용어를 더듬더듬 짚어가며 십팔기의 원전인 무예도보통지를 파고들자 묵은 의문이 시원하게 풀렸다.

내심 십팔기가 중국 무예를 받아들인 것 아닐까 의심 한 가닥이 있었어요. ‘18반 무예란 말이 중국에서 처음 나타나긴 하거든요. 그런데 중국의 18반은 공식 규정된 게 아니라 수호지’, ‘삼재도회등 민간문학에서 무기를 나열한 데 지나지 않고 종류도 일정치 않았어요. 우린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란을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다양한 무예가 필요함을 깨닫고 국가가 주도해 정리하기 시작했죠. 임진왜란 후 무예제보를 시작으로 광해군 때 무예제보번역속집’, 사도세자가 편찬한 무예신보’, 정조 때 무예도보통지까지,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국가가 무예서를 만들어 보급했고 역사적 경험이 층층이 쌓여 무예의 체계가 섰어요. 이렇게 정리된 십팔기는 아예 무예를 대체하는 말이 됐죠.”

무예도보통지는 찌르고, 베고, 치는 18가지 무예 동작과 관련 무기를 글과 그림(도보·圖譜)으로 설명한다. 전쟁을 통해 들어온 일본·중국 무예 중에서도 쓸 만하다 싶으면 우리 것으로 포용했다. 무에 대한 웅숭깊은 경외도 엿보인다. “대나무 가지에 철심을 붙인 무기 낭선’, 삼지창 모양 당파는 임진왜란 이후 거의 쓰이지 않았지만 정조 때까지 군인 한두 명씩 배우고 시험도 봤어요. 무예를 시험하는 시예(試藝)가 군사훈련 목적도 있지만 의례의 성격도 있었거든요. 선대의 노력이 담긴 무예를 하나의 레거시(legacy)로 소중히 여긴 거죠. ”

그래서 현대 한국인의 전통 무예에 대한 인식이 태권도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쉽다. 혹독한 시련을 통해 정련해온 십팔기와 달리 다른 무예엔 민족의 생존과 존엄이 걸렸던 싸움의 기억이 없다는 것. 게다가 검도나 유도 같은 타국 무예를 우리 것보다 더 즐기는 현실을 한탄했다. “알고 보면 몸으로 하는 무가 머리로 하는 문보다 더 무서워요. 육화하고, 체화되며 무의식 깊이 침투하니까요. 같은 동작을 여러 명이 할 때 근육 유대감이란 게 생깁니다. 그래서 서양에선 근대국가를 만들며 체조를 시작했고, 검도와 유도는 일본의 근대 국가 수립과 제국주의의 신체적 바탕이 됐죠. 제 스승도 전통무예를 하려면 다양한 무술을 익혀두라 하셨지만 검도만큼은 영 손이 안 가더군요.”



조선 무예 체험에서 무예 동작을 시연하는 십팔기보존회 회원들. 박 동문은 십팔기보존회에 몸담으며 시민들을 위한 무예체험을 열고 있다. 


카약, 산악스키, 수영 등 여러 운동을 했지만 할수록 깊은 맛이 나는 건 전통무예라고 했다. 십팔기 중 좋아하는 종목은 창과 쌍검. “창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한 무기예요. 점수화가 쉬워 대련하기 좋죠. 쌍검은 좌우 균형이 맞아 편해요. 왼손잡이라 검을 오른손으로 배우고 혼자선 왼손을 쓰거든요. 검법에도 보기 예쁜 동작 속에 가장 날카로운 힘이 들어가는 걸 아세요? 생각대로 움직임이 들어갔을 때 짜릿한 황홀감과 자기 효능감, 만족감은 수련한 사람만 아는 즐거움이죠. 10년쯤 되니 제 동작을 스스로 봐서 부끄럽지 않을 정도가 되더군요. 앞으로 더 발전해야죠.”

박 동문 따라 전통무예의 길을 걷게 된 모교 후배도 여럿. 조경학과로 입학한 한 후배는 그의 권유로 국사학과를 복수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조선 군사사의 학맥을 잇고 있다. 또 다른 후배는 물리천문학과를 나와 국방대학원에서 연구 중이다. “같이 다니면 여기 학벌 왜 이래요’, ‘서울대 아니면 못 들어오나요?’ 묻더라며 웃었다. 십팔기를 알릴 수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이들은 오는 10월 경복궁에서 조선시대 왕의 호위군을 사열하는 군사의식 첩종을 시연한다.

서울 목동의 박금수 무예교실에서 박 동문에게 십팔기를 배울 수 있다. 20년 가까이 모교에서 맡았던 전통무예와 국궁 강의도 접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검법, 창술 등 빽빽한 시간표를 소화한다. 1, 8 1 단체 수업의 경우 한 종목에 5만원이니 요가나 헬스클럽과 비교해도 부담없는 편. 군인과 경찰, 배우,외국인까지 다양한 사람을 가르쳐봤는데, 요즘 여성 회원이 부쩍 늘어 신기하다고 했다.

우리 거니까 알아달라고만 할 게 아니라, ‘해보니까 재밌네할 수 있게 가르치려 해요. 처음엔 곤봉부터 시작합니다. 운동 효과도 금방 나오고 공간을 활용하려면 인지능력도 필요한 융복합 운동이죠. 스트레칭 효과가 있어 오십견 예방도 되고요. 서울대생을 가르쳐 보니 무예도 머리가 좋으면 더 잘합니다. 다치지 않게 잘 알려 드릴게요. 동문님들, 무예 배우러 오세요.”



무예교실에서 수강생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박 동문. 

문의: 02-736-1871 
무예교실 안내: https://blog.naver.com/geumsooya/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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