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95호 2019년 6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산업디자이너에서 요리사로…“숙성회의 감칠맛 디자인했습니다”

민병관 양재 ‘무샤’ 오너셰프


산업디자이너에서 요리사로…“숙성회의 감칠맛 디자인했습니다”

민병관 양재 ‘무샤’ 오너셰프




“여러 물감을 섞어 그림을 그리듯 다양한 식자재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고 맛깔스러운 플레이팅으로 눈과 혀로 맛을 느끼게 하는 조리과정은 디자인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광고디자인 회사를 설립한 민병관(산업디자인86-94) 동문은 부업으로 시작한 일식 주점 운영에 푹 빠졌다. 점심땐 일식 식당으로, 저녁땐 사케 주점으로 하루 꼬박 12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면서도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 풀 다른 취미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틈나는 대로 바다 낚시를 다녀와 싱싱한 생선을 잡고 신선한 회로 떠서 손님들에게 맛보여주고 싶다고. 예전엔 골프도 꽤 쳤었지만 일과 관련 없는 취미는 이제 사치스러워졌다는 민병관 오너셰프를 지난 5월 22일 양재동 ‘무샤’에서 만났다. ‘무샤’는 꿈 몽(夢), 집 사(舍)의 일본식 발음이다. 일명 Dream house.

“기업의 CI를 제작하거나 브랜드개발 업무를 맡으면서 다양한 기업문화를 접했습니다. 본업은 산업디자인이었지만 다른 업계를 두루 살펴볼 수 있었죠. 덕분에 요식업 진출에도 거부감이 없었어요. 무엇보다 술을 좋아하고 맛있는 안주와 함께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한창땐 소주 여러 병을 마실 만큼 술이 세서 자연스럽게 맛있는 안주를 탐닉했던 민 동문은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었지만, 산지에서 직접 잡은 신선한 회를 최고로 꼽았다. 맛있는 회 먹는 즐거움을 손님들에게도 선사하고 싶어 일식을 택했다고. 최근엔 활어회의 맛을 뛰어넘는 숙성회를 연구 중이다. 양재 무샤는 숙성회만 제공한다.

“즉석에서 회를 뜨는 활어회도 좋지만 요즘은 숙성회가 대세입니다. 저희 숙성회는 생선을 기절시킨 후 척수신경을 마비시키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활어회의 스트레스와 사후경직이 적게 일어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쫄깃함을 유지하며 활어회보다 풍부한 감칠맛을 느끼게 해주죠. 신선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면 감칠맛이 더욱 풍부해집니다.”

민 동문은 장시간 숙성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어느 장인처럼 보름 동안 숙성시킬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장시간 숙성된 생선은 겉면에선 묘한 치즈맛이, 속살에선 풍부한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숙성회 기술을 설명하는 민 동문의 눈빛이 진지하게 빛났다.

또한 양재 무샤는 광어나 도미의 경우 3㎏ 이상의 대어만 취급한다. 생선은 무조건 커야 맛있다는 게 민 동문의 지론. 어린 생선은 지방층 형성이 덜 돼 있어 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회가 대표메뉴지만 초밥, 돈가스, 샐러드, 스테이크, 우동, 오뎅탕, 회덮밥 등등 50여 개의 다양한 메뉴가 제공된다.

“양재 무샤는 단순한 주점이 아닌 문화의 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매장에 미대 동문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제 아들이 라이브 기타 공연을 펼치기도 해요. 아들도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그쪽 업계가 워낙 힘들다는 것을 제가 잘 아니까 가게 운영에 힘을 합쳐 보자고 설득했죠. 아직 젊은 나이인데 다행히 잘 따라주고 있어서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주방에서 제 몫을 해내는 것은 물론 가끔 자작곡으로 라이브 공연을 하는데 손님들의 호응도 좋습니다.”

개점 초기엔 인근에 보기 드문 괜찮은 이자카야로 제법 매상이 쏠쏠했던 양재 무샤. 2016년 6월 영업을 시작해 만 3년 동안 휴대폰 번호를 남기고 간 손님이 2,000여 명에 달한다.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의 현대차, 코트라, aT센터 직원들에겐 “차비 하시라고” 특별히 할인해주기도 한다.

기분 좋게 손님이 만족할 때 일의 보람도 커진다는 민병관 동문. 최근 경기불황 탓에 많은 요식업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식문화가 바뀌고 직장인 지갑도 얇아져, 밤 10시면 귀가를 서두르고 조금이라도 더 싼 주점을 찾게 되는 것이 요즘 추세. 이처럼 힘겨울 때 서울대 동문들이 큰 힘이 돼줬다. 마당발 심선보(산업디자인84-92) 동문이 미대 동문들에게 양재 무샤를 널리 알렸고, 김민철(산업미술84-89) 동문이 캘리그라피 작품으로 매장 곳곳을 장식하는 동시에 다방면으로 홍보도 해줬다.

모교 동문들에게도 특별한 할인을 제공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민 동문이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냥 편하게 오시면 되겠습니다.”

문의 02-575-0056


연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