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호 2024년 10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야채와 한약재 우려낸 특제 채수, 14년 막국수 집의 비결이죠
박준호 박명도봉평메밀막국수 대표
동문맛집
야채와 한약재 우려낸 특제 채수, 14년 막국수 집의 비결이죠
박준호 (AMPFRI 44기)
박명도봉평메밀막국수 대표
박준호 동문과 그의 부친 박명도 창업주
한 달에 1만 명 찾는 용산 맛집
직원 대부분 10년 넘게 ‘한솥밥’
인터뷰를 마치자 뚝딱 한 상이 차려졌다. 대표메뉴를 꼽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직접 맛을 보라며 내온 것. 흔하디흔한 김치찌개부터 익숙한 물 막국수, 생전 처음 보는 들기름 막국수까지. 먹음직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풍성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식당을 운영하는 박준호 대표를 앞에 두고 남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기우였다.
김치찌개의 김치는 부드러우면서도 아삭했고 고기는 씹는 맛이 탱글탱글하면서도 혀에 감겼다. 물 막국수는 시원하고 담백했으며, 들기름 막국수는 고소하고 은은한 향이 침샘을 자극했다. 그날 처음 만난 인터뷰이 앞에서 입가와 콧물을 연신 닦아가며 그릇을 싹 비웠다. 1990년생 아들이 아버지의 고된 가업을 이을 만했다. 9월 25일 서울 용산에 있는 박명도봉평메밀막국수 2호점에서 박준호 동문을 만났다.
“저희 집안은 남자가 김장을 합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어머니나 할머니 대신 혼자 김장을 담그셨죠. 부엌일도 같이 하셨고요. 밑반찬은 어머니가 준비하시지만, 찌개나 탕 같은 메인 메뉴는 아버지가 도맡으셨습니다. 요리하는 걸 무척 좋아하셔서 출판업, 원예업 등 이전에도 여러 사업을 하셨지만, 언젠가 식당을 차릴 거란 말씀을 자주 하셨죠. 2011년 ‘메밀이 생각날 때’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봉평 메밀막국수’를 거쳐 현재의 상호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 달에 약 2만 명이 찾는 나름 유명한 맛집이에요.”
27평 남짓한 작은 식당에 하루 평균 500여 명이 찾아오니 끼니때마다 대기하는 손님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 기다릴 공간마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점점 더 대기 손님들이 많아지는 게 죄송스러워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근처에 매장을 하나 더 내기로 했다. 그렇게 올해 4월 1호점과 도보 3분 거리에 2호점을 열었다. 권리금 한 푼 없는 소위 ‘죽은 상권’이었지만, 맛으로 뛰어넘었다.
“우려했던 매출 분산은 없었습니다. 1호점 매출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2호점 매출이 가세했죠. 신호등 하나, 건널목 하나 차이로 새로운 손님이 유입되더군요. 기다리는 게 부담스러워 발길을 돌리던 손님들도 더해졌고요. 개업 초기부터 아버지 일을 돕다가 2012년 제대하면서 학업과 식당일을 병행했습니다. 아버지한테 배운 그대로 새벽 4시에 장을 봐요. 최고의 재료를 최소 비용으로 조달해야 손님들께 더 큰 만족을 드릴 수 있는 동시에 저희 수입도 늘어난다고 가르치셨죠.”
육류 없이 특제 채수로 맛을 낸 물 막국수
고급 들기름을 넣은 들기름 막국수
좋은 재료와 정성이 맛의 비결이라고 강조하는 박준호 동문. 찌개에 넣고 끓인다고 아무 김치나 넣지 않는다. 계절마다 상온에 보관하는 시간을 조절하고, 요리 전에 찌개에 적합한지 맛을 본다. 조리가 쉬운 대중 음식이지만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하루 15개, 돼지 앞다리로만 조리하는 족발도 마찬가지. 다른 식당에서 1분 핏물 빼는 거 10분 동안 빼고, 서너 가지 넣는 한약재를 15가지 넣는다. 손이 많이 가는 육수통 청소도 매일 해 깨끗하게 삶는다. “우리 식당 족발 드셔본 분들은 다른 식당 건 비려서 못 먹는다”고 박 동문은 덧붙였다.
“들기름 막국수는 강원도산 들깨를 현지에서 구입, 단골 방앗간에서 들기름을 짜옵니다. 같은 양의 들깨면 고온에서 짜는 게 향이 진하고 더 많은 기름이 나오지만, 저희는 늘 저온에서 짜요. 향이 은은해지고 목넘김도 더 부드러워지기 때문이죠. 오메가3 함량도 높아져 건강에 더 좋은 것은 물론이고요. 굳이 설명을 안 드려도 손님들이 맛의 차이를 알아보세요. 사골이나 육류 없이 야채와 한약재로 채수를 우려내는 물 막국수는 평안도에서 월남하신 할머니의 조리법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재료 준비부터 손님상에 오르기까지 며칠을 준비해야 하죠.”
육류 없이 한 상 차리기 쉽지 않은데 막국수엔 고기가 안 들어가고 감자전, 메밀전 같은 사이드메뉴도 갖췄으니 전국에 비건 동호인이 찾아온다. 메밀전·전병·만두·수육·묵무침·감자전·묵사발·막국수 등으로 구성된 코스도 인기. 일행 간 메뉴 통일이 안 되거나 다양한 메뉴를 맛보고 싶을 때 ‘해결사’ 역할을 한다.
박 동문 부친의 뛰어난 친화력도 성공의 비결. 개점 때부터 현재까지 10년 넘게 같이 일하는 직원이 대부분이다. 직원들 대소사를 제 일처럼 챙기는 것은 물론 소외층 어린이나 어르신, 담당 환경미화원이 눈에 띄면 망설임 없이 식사를 대접한다. 부전자전이라고 박 동문도 임산부 손님이 편히 식사할 수 있게 배려했고, 작은 친절이 맘카페를 통해 알려지면서 더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이상하게 이곳 식당 앞엔 담배꽁초도 없고 새벽 눈이 깨끗이 쓸려 있을 때도 자주 있다고.
“하루에 두 끼를 드시고 가는 손님도, 한국 여행 와서 아침마다 저희 식당을 찾아주시는 외국인 손님도 있었습니다. 잘 먹고 간다고 고맙다며 선물을 주실 땐 보람을 느끼죠. 가장 빠르게 가장 진한 감동을 선물할 수 있는 직종이 외식업이라고 생각해요. 맛있는 음식과 함께라면 모르는 사람하고도 금방 친해질 수 있죠. 모교 AMPFRI 과정 덕분에 외식업 트렌드에 눈떴고, 포장김치와 밀키트 판매 등 다양한 사업 확장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아직 배울 것도 많고, 예측할 수 없는 시장 상황도 겪겠지만, 막국수와 김치찌개를 주력으로 건강한 한식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주차 및 배달 불가, 방문 포장 가능.
나경태 기자
문의: 0507-1441-7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