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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2024년 6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빵은 내 운명…평생 직업도 천생연분도 제과 제빵에서 찾았어요”

 
동문 맛집
“빵은 내 운명…평생 직업도 천생연분도 제과 제빵에서 찾았어요”
 
 
송영광 (FNP 15기)
일산 베이커리 카페 ‘명장10’ 대표



국내 16명뿐인 제과 명장이 운영
420평 규모 200여 가지 빵 선봬


#1. 1988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에 불과했던 소년이 혹독한 가난에 못 이겨 고향을 떠나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역에서 이태원까지 무작정 걸으며 일자리를 찾았고, 숙식이 제공된다는 한 마디에 급여는 묻지도 않고 취업했다. 그곳이 제빵사만 15명이 일했던 대형 베이커리 ‘파리제과’. 제과제빵과의 첫 만남이었다. 

#2. 2005년 연말 실력을 이미 검증받은 기능장으로선 드물게 프랑스국립제 과제빵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경비를 아끼느라 영양실조에 걸렸고 그로 인해 안면 마비까지 왔다. 그런 그의 집념과 노력을 눈여겨본 같은 학교에 유학 중인 여학우가 있었다. 집안도 기울었고 나이 차이도 컸지만, 그 여학우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송영광 ‘명장10’ 대표에게 빵은 가히 운명이었다. 평생 직업도 천생연분도 제과제빵에서 찾았기 때문. 2002년 최연소 한국제과 기능장을 취득한 그는 2014년 다시 최연소이자 국내 10번째 제과 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5월 28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 명장10에서 송영광 동문을 만났다.

“명장10은 정확히 2019년 12월 오픈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죠. 월 5000만원씩 적자가 나 직원들 급여 주기도 빠듯했어요. 그러나 ‘희망이 있는 적자’였습니다. 빵을 맛본 손님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거든요. SNS에 호평이 빗발치면서 입소문도 탔고요. 방역 조치 때문에 테이블 영업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타격이 컸지만, 전염병만 물러가면 매출이 급신장할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직원들 내보내는 대신 함께 머리를 맞대 제품 개발에 집중하면서 히트 상품을 여럿 개발했죠.”

그 히트 상품 중 하나가 ‘소금빵’이다. 주말 기준 하루 1500개씩 팔리는 최고 효자 상품으로 프리미엄 버터를 통째로 돌돌 말아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또 다른 대표메뉴 ‘몽블랑 데니쉬’는 버터 풍미가 가득한 페이스트리를 말아 올려 구운 뒤 사이사이에 달콤한 살구 시럽을 골고루 발랐고, ‘크림치즈 쪽파 베이글’은 두툼한 베이글에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잘게 썬 쪽파를 넣어 채소의 싱그러움을 더했다. 명장10은 그밖에 200여 가지 빵을 선보이는데 그중 6종을 CU와 제휴, 편의점 유통망을 통해 전국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다. 제과 명장으로서 송 동문은 후학 양성에도 헌신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제빵사들과 제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어머니의 마음을 강조합니다.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는 온갖 정성을 기울이지 않습니까. 빵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음가짐만큼 청결 또한 강조합니다. 빵을 만들 땐 깨끗한 옷을 입고 주방을 말끔히 정리정돈 하라고 가르쳐요. 사장이자 선배로서 솔선수범하는 건 물론이고요. 명장과 같이 일한다면 뭔가 배울 수 있겠다, 하는 기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야죠.”




송 동문은 명장10 이전에 2011년 ‘후앙 과자점’을 창업, 이듬해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으며 2015년 ‘후앙 베이커리’로 프랜차이즈화 했다. 직원 규모가 130명이 넘을 만큼 몸집이 커졌지만, 빵을 만드는 것과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엄연히 달라, 제과제빵에선 최고 기술자인 송 동문도 경영인으로선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아깝지만 애써 일군 브랜드를 매각하고 새롭게 도전해 명장10을 오픈했다. 

“지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서 재투자 자금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대출받아 투자금을 충당하면서 발생하는 금융비용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 흔히 사람부터 줄이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사업이 궤도에 올랐을 때 내보낸 직원 다시 데려오려면 돈도 돈이지만 그 직원이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거든요. 외려 리스크를 키우는 꼴이 되죠. 명장10 오픈하는 데도 대출을 꽤 받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직원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버는 족족 빚 갚는 데 먼저 썼어요. 외출 자제하고 휴대폰도 제일 싼 거 쓰고. 금융비용 줄이는 게 급선무라는 걸 배웠죠.”

검소한 생활을 밑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한 송영광 동문. 그러나 배움에 쓰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 타 대학 특별과정보다 몇 배 비쌌지만, 모교 특별과정을 선택했다. 서울대 교수를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고, 수업 땐 항상 맨 앞에 앉았다고. 교수들에게는 물론 사업하면서 자신보다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낸 여러 동문들과 교류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오너셰프로서 제 안에는 제빵사와 사업가가 갈등을 일으킵니다. 사업가는 이익을 늘리는 쪽으로, 제빵사는 맛있는 빵을 더 많은 고객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을 잡아당기죠. 제 장인어른께서 적은 돈이 많이 들어와야 사업이 잘 된다,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씀 따라 제 인건비 좀 덜 받는다 생각하고 가능한 부담 없는 가격으로 빵값을 책정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데 소금빵은 보통 3000원인데 저희는 2200원 받아요. 싸니까 잘 팔린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품질의 빵을 비싸게 팔지 않는다는 신뢰 때문에 많이 팔리는 거죠. 자부심을 가지되 자만하지 않는, 신뢰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명장이 되겠습니다.”
송 동문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지역 소외계층에 월 1000만원 상당의 빵을 기부하고 있다.
 
문의: 031-921-0909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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