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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2022년 8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코스 요리 즐기듯 위스키 마시는 법 알려드려요

김준환 을지로 ‘골든 케이지’ 대표

코스 요리 즐기듯 위스키 마시는 법 알려드려요


김준환(동양화06-12)
을지로 ‘골든 케이지’ 대표



감성 넘치는 칵테일·몰트 바
같은 건물서 와인 바 운영도


다시 밖으로 나온 듯 시야가 뻥 뚫렸다. ‘골든 케이지(Golden Cage)’란 이름에 걸맞게 금색으로 칠한 철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였다. 맞은편 고층 빌딩은 멀찍이 물러났고, 머리 위 콘크리트 천장은 순간 사라졌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4층까지 올랐기 때문일까. 달동네 옥상 같은 그 작은 공터에서 청량감마저 느껴졌다. 공터의 끝에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단정한 보라색 벽과 화려한 노란색 빛이 어우러진 실내가 나타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가게 분위기에 눈뜨고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이런 새장이라면 하루 종일 갇혀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7월 26일 을지로3가에 있는 골든 케이지에서 김준환 대표를 만났다.

“제 취향에 맞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를 차리게 됐어요. 모교 재학시절 미대 친구들 모두 술을 좋아해 흔히 마시는 소주, 맥주 외에 새로운 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칵테일이 시작이었죠. 제조된 칵테일을 사다 마시는 것보다 원료가 되는 술을 몇 개 사서 만들어 마시는 게 훨씬 이득이었거든요. 대충 만들어줘도 괜찮다는 친구들의 응원도 한몫을 했죠.”

소주나 맥주와 달리 안주 없이 마셔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시선 또한 한몫을 했다. 안주 사 먹을 돈으로 차라리 더 좋은 술을 마시고 싶었다는 김준환 동문. 취향이 점점 더 고급스러워지면서 골든 케이지의 주력 메뉴이기도 한 싱글몰트 위스키에 빠져들었다. 독한 술이 선사하는 달고 부드러운 향과 빠르게 퍼지되 질척이지 않는 취기에 매혹됐던 것.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놓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골라 마시다 보면, 주류로만 구성된 코스 요리를 먹는 것 같다고 말한다.

“위스키 종류는 모두 개성이 강해 한 가지만 놓고 길게 마시면 곧 질리고 지칩니다. 처음엔 편하고 단맛이 나는 부드러운 술로 시작해요. ‘발베니’나 ‘맥켈란’ 같은 셰리 와인을 숙성했던 셰리 오크통에 맥아를 담아 과일 향이 두드러지는 위스키를 먼저 마십니다. 전채요리처럼요. 그런 다음 바닷가의 짠 내음을 먹고 자라 맥아 자체의 향이 두드러지는 ‘아드백’이나 ‘라프로익’처럼 피트 향이 강한 술로 분위기를 바꿔줘요. 이후부턴 취기나 개인의 주량에 따라 발베니·맥켈란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고 ‘달위니’나 ‘보모어’처럼 섬세한 미각을 자극하는 술로 옮겨갈 수도 있습니다. 메뉴판에도 안 넣고 저 혼자서만 숨겨놓고 마시는 ‘로얄브라클라’도 적당하죠. 반면 ‘아란 마크리무어’는 절정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 후식처럼 마시기 좋습니다.”

김 동문은 맨 정신에 술기운을 설명하자니 좀 어색하다 했지만, 기자의 입엔 이미 침이 고여 있었다. 기분 좋게 취해서 가능한 오래, 리듬을 타며 취기를 즐길 수 있다면, 술 하나만 갖고도 산해진미 코스 요리 못지않을 것이다.

김 동문의 추천 위스키는 라프로익과 보모어. 스코틀랜드 습지인 아일라 지방에서 생산됐으며, 그곳에서 채굴되는 석탄의 한 종류인 이탄으로 오크통을 훈연, 바다 냄새와 스모키한 연기 냄새를 동시에 풍긴다. 위스키가 낯설지 않은 이에게도 특이하다는 평을 받을 만큼 맛과 향이 강렬하다.

“최근엔 독립병입제품이라고 하는, 한정판으로 수입되는 위스키를 점차 늘리고 있습니다. ‘쿨일라’ 13년산, ‘부나하벤’ 10년산, ‘밀튼더프’ 10년산 등 다른 곳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위스키를 입수했죠. 위스키 향을 즐기면서 맥주처럼 편하게 마시고 싶다면 ‘하이볼’을 추천드립니다. 탄산수와 얼음을 섞어 가볍고 상큼하게 즐길 수 있거든요. 2종 이상의 위스키를 조합해 저희만의 시그니처 하이볼을 개발 중이에요. 예를 들어, 버번 위스키에 아일라 위스키를 소량 첨가하면 기존 하이볼과 다른 깔끔하고 절도있는 맛을 느낄 수 있죠.”


골든케이지의 분위기 있는 내부 모습. 


김 동문은 2019년 10월 문을 연 골든 케이지에 앞서 2018년 5월 와인 바 ‘5시 37분’을 먼저 개업했다. 같은 건물 5층에 있어 아래·위층을 오가며 와인과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 VIP 고객을 대상으로 술과 그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 ‘픽앤플레이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와인 바와 병행하는 까닭에 여느 몰트 바와는 달리 스파게티, 갈비찜 같은 식사류 주문도 가능하다. 3층으로 쌓아올린 신선한 비주얼로 SNS에 회자되는 ‘플래터’는 김 동문이 즐겨 먹는 와인 안주 종합세트. 토마토와 치즈, 멜론과 하몽, 햄·견과류·크래커 등을 한 접시씩 담았다.

“저희 가게 건물주가 모교 동문이세요. 임대차 계약서 쓸 때 제가 후배인 걸 아시곤 환히 웃으셨죠. 4~5층엔 보통 사무실이 들어오는데, 술집을 차린다고 하니까 계단에 손잡이를 설치해주셨어요. 화장실도 깨끗하게 수리해주셨고요. 학교 다닐 땐 총동창회 특지 장학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서울대 덕을 보았네요. 많이들 찾아오셔서 술 한잔 드시고, 기회가 닿으면 그림도 감상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영업시간 저녁 7시부터 밤 1시. 단체 18석까지. 인근 저렴한 유료 주차장 다수. 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 

문의 : 0507-1337-3149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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