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호 2023년 10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비싸서 쉽게 못 먹는 민어·홍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곳
함운경 (물리82-91) 군산 ‘네모선장’ 대표
비싸서 쉽게 못 먹는 민어·홍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곳
함운경 (물리82-91) 군산 ‘네모선장’ 대표
손님이 개점 요구해 차린 횟집
수산물 밀키트 온라인 판매도
함운경 동문은 모교 재학 중이던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해 투옥된 적 있는,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의 위원장이자 586운동권의 상징이다. 1988년 석방 후에도 운동권에 남은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두 번 더 옥살이했고, 재야 사회운동에 매진하면서 여러 차례 정계 진출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그가 전북 군산으로 귀향해 횟집을 열었다. 2021년 12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방문하기도 했다.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를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네모선장은 식당 겸 제철수산물 가공 유통업체입니다. 원래는 유통을 전문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자본력이나 고객 확보, 판로 개척 측면에서 기존 상인에 비해 경쟁력이 많이 부족해 가공 쪽으로 눈을 돌렸죠. 여러 시도를 해봤는데, 생선회를 필렛(고기나 생선의 뼈 없는 조각) 형태로 판매하는 방식이 주효했습니다. 입소문이 나니 와서 먹을 수 없냐는 문의가 쏟아졌고, 그러한 요구에 부응해 횟집도 차리게 됐죠.”
2017년 수산업계에 진출, 가공 분야에 주목한 함 대표는 요리 못하는 사람들이 쉽게 생선탕을 끓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 곧장 실행에 들어갔다. 오늘날 대중화된 밀키트를 그때 이미 시작한 것. 대형 유통 플랫폼과 합작해 대량생산했다면 큰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타이밍을 놓쳤다. 밀키트에 흔히 들어가는 액상소스 대신 냉동육수를 고집했기 때문. 사소해 보이지만 유통 방식을 간소화하는 데 장애가 되면서 사업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네모선장의 밀키트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직접 사서 먹어본 소비자의 별점은 모두 5점 만점이다.
“네이버에서 네모선장을 검색하면 저희 가게 스마트스토어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홍어탕·민어탕·아귀탕·복어탕 등 다양한 탕 요리와 민어·홍어의 숙성회, 광어회, 제철수산물로 가을 꽃게와 생물오징어 등을 판매 중이에요. 선물용으로 부세굴비와 박대 세트도 출시했습니다. 박대는 군산의 특산물로, 이곳 출신 탤런트 김수미씨가 방송에서 여러 번 소개한 적 있죠. 살점이 쭉 찢기는 까닭에 가시 바를 필요가 없어 아이 키우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곰국처럼 국물이 우러나는 민어탕은 오래 끓이면 죽처럼 풀어져 환자나 어르신들에게 그만이죠.”
명절 선물세트도 네모선장의 효자 상품. 개업 초창기, 멸치 추석 선물세트는 함 동문에게 초심자의 행운을 안겨줬다. 남들이 잘 안 하는 기획 상품이라 한철에 5000만원어치 매상을 올렸던 것.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른 업자들이 안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수산물 특성상 들어오는 물량이 들쑥날쑥했고, 일일이 박스 포장하는 것 자체가 고된 노동이라 적지 않은 인건비가 들었다. 주문 물량을 맞추기 위해 식구들이 모여 앉아 밤새 포장을 하는 일도 잦았다고.
“일정치 않은 수산물 공급은 밀키트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끼칩니다. 수요를 제때 반영하기 어렵거든요. 취급 어종을 대량으로 쌓아놓고 있어야 가능한데 자본력이 달려 쉽지 않아요. 국산 수산물로는 더 힘들고요. 대형 마트에서 취급하는 밀키트 대부분이 수입 수산물을 쓰는 이유죠. 매출 비중은 온라인 판매가 더 큽니다. 횟집도 열심히 해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려고 노력 중이에요.”
수산물 판매하다 차린 식당을 맛집으로 소개하자니 좀 겸연쩍다는 함운경 대표. 굴곡진 삶을 살아오는 동안 설움도 아쉬움도 컸을 법한데 즉문즉답, 어떤 질문이든 앞뒤 재지 않고 정직하게 답했다. 네모선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스끼다시 많이 나오는 횟집도, 특별한 음식으로 승부를 거는 식당도 아니라고 하면서 다만, 비싸서 쉽게 못 먹는 민어회, 홍어회를 합리적인 가격에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로 인한 고충을 물었을 땐 “이미 12년 전 지금보다 더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바다로 흘러들었지만, 우리 바다의 수산물은 여태 별 지장 없이 잘 먹었다”며 “6개월만 지나면 이런 난리도 곧 부질없는 일이 될 것이니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고 답했다.
“소설 ‘해저 2만리’의 주인공 ‘네모 선장(Captain Nemo)’에서 가게 이름을 따왔습니다. 네모 선장은 잠수함을 타고 다니며 세계 여러 나라의 피압박민을 돕는 인물이죠. 살아오는 동안 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지역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정치해보겠다고 출마하면 시민들이 후원금을 걷어줬습니다. 횟집 한다고 할 땐 이웃들이 주식회사를 만들어 도와줬고요. 받은 은혜 다 돌려주고 죽는 게 제 꿈입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싶어요.” 단체 50명까지. 넓은 주차장 확보. 포장 및 배달 가능. 문의 063-463-8846
함운경 동문이 운영하는 군산 네모선장 외부 전경.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