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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2019년 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무엇보다 소중한 역사유산”

시니어 자서전 만드는 정대영 뭉클스토리 공동대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무엇보다 소중한 역사유산”

정대영 뭉클스토리 공동대표




시니어 자서전 만드는 기업
저비용·소량출판으로 장벽 낮춰


‘모든 인류는 한 명의 저자이자 한 권의 책이다’. 영국 시인 존 던의 이 말을 떠올리면, 요즘의 자서전 쓰기 열풍은 새삼스럽지 않다. 내로라하는 저명인사든 필부필부든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인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그저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낼 용기가 필요할 뿐.

사회적 기업 ‘뭉클스토리’는 그 용기를 북돋우는 곳이다. 공동대표 정대영(국어교육98-02) 동문과 이민섭 씨, 두 청년을 필두로 2, 30대 소속 작가들이 부모 세대의 자서전을 집필부터 출판까지 맡아 대신 만든다. 수천만원이 들던 기존 대필 자서전의 10분의 1 가격에, 꼭 읽을 사람에게 나눠줄 만큼만 찍을 수 있게 해 장벽을 낮췄다. ‘1가구 1자서전’이 기업 목표. 1월 28일 정 동문을 만난 목동 뭉클스토리 사무실 책장에는 마치 내 가족 같고 이웃 같은 이들의 자서전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는 분들의 자서전을 주로 만들어 왔습니다. 가족, 친척, 지인 등 가정 독자를 위한 책이에요. 생일이나 회갑 기념으로 자녀나 본인이 의뢰하시는 경우가 많고 빠르면 3, 4개월, 길게는 1~2년에 걸쳐 만듭니다.”

뭉클스토리의 발단은 ‘아버지의 자서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정 동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생각이 들었다. 모교에서 현대소설교육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던 그는 자신처럼 후회하는 이가 없도록 자녀의 신청을 받아 부모의 자서전을 펴내는 재능기부 동아리를 만들었다. 몇 년 후 마케팅 전공자인 이민섭 씨가 병상에 있는 아버지의 자서전을 내고 싶다며 찾아왔고,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파독 근로자 세 명의 자서전을 시작으로 2016년부터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퇴직 공무원과 가정주부 등 다양한 이들의 자서전 90여 권을 출간했다.

자서전 내용은 작가들이 3~5회 인터뷰를 해서 정리한다. 가족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첫 인터뷰엔 남에게 말할 수 있는, “단단한 갑옷 같고 잘 닦은 유리잔 같은” 이야기만 내놓아도 대화를 거듭하면 밑바닥에 가라앉은 기억과 감정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대외적으로 많은 걸 이룬 분이셨는데 자랑거리만 계속 말씀하셨어요. 책은 만들어야 하는데,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고민하다 따님 얘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할 말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따님이 ‘그 얘기도 해보자’며 개입해 아버님께 서운했던 순간들을 얘기하면서 대화가 풀렸어요. 사실은 아버님이 바깥일에만 신경 썼던 게 딸에게 미안하셨던 거예요. 눈물도 보이셨죠. 자서전을 쓰면서 부녀 사이가 더 좋아지셨어요.”

그는 “누군가의 자서전을 쓰는 동안 그 사람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그가 뭘 느꼈고, 왜 그렇게 했는지 생각하는 데 골몰한다. “그 사람의 중요한 단어, 문장을 찾으려 해요. 사람의 정신을 언어로 구조화했을 때 생기는 매듭이랄까요. 특별하지 않다며 건너뛴 시간, 반복된 일상에 특히 주목합니다. 찾아보면 반드시 숨은 이야기와 의미가 나오거든요. 좋은 질문과 리마인드 기법으로 최대한 기억이 살아나도록 돕는 게 저희 역할이죠.”

동아리 시절까지 합하면 100여 권의 자서전을 만들었다. 모두들 살면서 무엇을 후회했고, 언제 행복했을까. “세대와 개인차는 있지만 ‘가난해서 더 많이 공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말을 할 땐 모두 목이 메고 눈물을 흘리세요. 일하느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성공했지만 외길만 걸었던 것도 아쉬워 하셨어요.”

60대 여성 의뢰자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미혼 시절 짧지만 자유롭게 사회생활 했던 때를 꼽은 것은 의외다.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라 해도 자서전이 아니면 알지 못했을 속내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자서전 작업은 개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단체와 기관의 의뢰를 받아 집단의 기록물도 만든다. 최근엔 안산시의 요청으로 안산 재개발 지역 주민의 구술 작업을 마쳤다. 의뢰자가 원하면 규모를 키워 전집 형태의 자서전도 낼 수 있고 영상 자서전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의뢰를 받으면 인물과 규모에 상관없이 오로지 ‘진정성’만을 본다.

“지난 선거철에 정치인들의 자서전 출간 제의가 많았습니다. 회사에는 좋은 기회였지만 내부 회의 끝에 받지 않기로 결정했죠. 순수하게 생애사를 쓰고 싶은 게 아닌 다른 목적의 자서전에 동원되진 말자고요.”

내 삶을 통해 얻은 것을 후세에 전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할 때 뭉클스토리의 조력도 빛을 발한다는 설명이다. ‘나도 자서전을 써볼까’ 싶은 동문들에게 조언을 부탁했을 때도 같은 맥락의 답이 돌아왔다.

“‘나도 써볼까’만으로는 자서전을 쓰기 어렵습니다.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 결과가 될 기록물에서 출발하셔야 해요. ‘내 삶을 쓰려면 책 몇 권도 모자란다’ 말씀하시는 분들도 막상 물으면 무엇이 파란만장했는지 짚어내지 못하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메시지를 남길지, 내 삶의 어떤 사건들이 그에 해당하는지. 그걸 몇 줄의 문장으로 먼저 정리해 보시길 권해요. 어렵고 막힐 땐 저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박수진 기자

문의: 010-3544-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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