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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호 2019년 1월] 문화 나의 취미

“고희에 국제무대 등단, 카메라만 들면 못 갈 곳 없지요”

국내 최초 국제사진예술연맹 작가 류신우 토목기술사


“고희에 국제무대 등단, 카메라만 들면 못 갈 곳 없지요”



국내 최초 국제사진예술연맹 작가
류신우 토목기술사


‘사진은 어떡하지.’ 고희연을 갓 마친 어느 봄날, 전립선암을 선고 받은 류신우(농공62-66) 동문은 주마등처럼 스치는 인생 대신 사진부터 떠올렸다. 50대 후반부터 국내외 명소를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었다. 고이 간직한 이미지 파일들이 하루아침에 휴지통으로 가겠구나.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생의 기로에서 취미는 그렇게 삶의 목표로 변했다. 암 수술을 받자마자 묵혀둔 사진들을 각국의 사진공모전에 내기 시작했다. 국내 사진공모전에서 이미 여러 번 수상했지만 국제사진예술연맹(이하 FIAP)의 승인을 받아 실시하는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좋은 성과를 축적하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FIAP 사진작가 자격이 주어진다는 데 주목했다. 결과는 입선부터 가작, 동상, 은상에 금상까지 예상 밖. 마침내 4년 후엔 한국 최초로 FIAP 사진작가가 됐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국내 인지도는 낮지만 FIAP는 유네스코가 유일하게 NGO로 인정한 국제사진단체다. 각국에서 열리는 FIAP 국제사진공모전은 프로에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창구이고 아마추어에겐 국제 무대 등용문이다. 지난 12월 26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며칠 전 불가리아 국제사진공모전에선 금메달 2개를 획득했고, 프랑스 국제사진공모전에선 금메달과 최고 영예인 베스트작가로 선정됐다”는 소식부터 전했다. 금메달 수상작은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 팰루스의 광활한 밀밭을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찍은 작품이다. 포트폴리오를 함께 보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국제사진공모전 금메달 수상작인 'Palouse 13'. 경비행기를 타고 찍었다. 



“2015년 일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60여 개국 300여 곳의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했습니다. 금상 18회, 은상 13회, 동상 11회, 가작 91회 등 130여 회 입상했는데 지금도 계속 기록을 갱신 중이에요. FIAP에 제출한 작품은 예술유산으로 영구 소장되는데 저는 14개 작품이 등재됐습니다. 큰 영광이죠.”

“FIAP 사진작가 인증서는 토목기술사 자격증과 함께 가보”라는 그다. 안동댐, 대청댐, 충주댐 건설에 참여하고 대청댐을 건설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경북대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토목기술사 출제위원을 거쳐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자 FIAP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카메라는 댐 건설 현장과 아이들 성장과정을 담는 용도로만 쓰다가 갑작스런 공기업 퇴직 이후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어 정이 붙었다. 경북대 겸임 교수 시절 개인지도를 통해 사진예술에 눈을 뜨게 해준 김철수(농공62-66) 전 상주대 총장에겐 두고두고 고마운 마음이다.

“사진작가는 때로는 시인도, 소설가도 됩니다. 피사체를 스토리텔링이 있도록 함축하고, 포토샵 작업으로 픽션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촬영의 마력은 또 어떻고요. 막연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산 정상을 다녀오라고 하면 힘이 들어서 못 하지만, 손에 카메라를 들면 대작을 꿈꾸면서 하루 종일 기어서라도 다녀옵니다. 노년 정신 건강에 이보다 더 좋은 취미는 없을 거예요.”

청년 같은 야구모자에 청바지 차림, 생기 도는 얼굴을 보니 과연 사진이 ‘젊음의 묘약’인 듯했다. 국내 각지는 물론 해외로도 1년에 한두 번은 출사를 나간다. 사진을 하면서 배운 포토샵이 수준급이다. FIAP 국제사진공모전의 OPEN(FREE) 테마 분야엔 합성사진도 출품 가능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국내 사진작가 일부는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지적했다. 국내 사진작가들이 합성사진을 도외시하고, 사진공모전 출품보다 개인 전시회에 치중하는 풍조를 가리킨 것이다. “세계 사진예술계에선 이미 합성사진이 창조적 예술로서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또 주변에 ‘사진 좀 한다’ 하면 개인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시할 작품은 국제사진공모전 출품 후 입선작으로 선정할 것을 권합니다. 공모전을 준비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사진 보는 안목이 업그레이드 되더군요.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게 사진이 느는 지름길이에요.”

혼자 돋보일 수 있는데 다른 작가들의 도전도 밀어주는 그다. “공모전 응모 요령 특강이나 신청서류 작성 대행을 무료로 해주고 있어요. 모두 영문이라 처음 준비하려면 힘들거든요. 열심히 뛴 덕분에 지금은 국내에 FIAP 사진작가가 저를 포함해 여덟 명입니다. 우수한 작가들이 해외 사진공모전에 많이 참여해 ‘사진 한류’를 일으켰으면 해요.” 지식 나눔이 체질이다. 블로그에 전립선암 투병기도 꼼꼼하게 적었는데 전립선암 환자들에게 바이블로 꼽힌다.

새해에 찍고 싶은 사진을 묻자 그는 오로라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암 선고를 받은 지 정확히 8년째 되는 3월, 아이슬란드로 출사를 떠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진공모전 출품을 계속하면서 고향 안동 하회마을 같은 한국의 풍광을 세계에 알리고픈 포부도 있다.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오로라나 저녁 노을도 생을 마감할 때는 아름다운 섬광을 일으키죠. 마치 인생 같아서 나이 들수록 좋아져요. 오로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2020년엔 FIAP 사진작가 최고 등급인 MFIAP(Master FIAP)에 도전하려 합니다. 불후의 명작을 담아서 오겠습니다.”

박수진 기자


▽류신우 동문의 블로그. 국제사진공모전 수상작과 전립선암 투병기 등을 볼 수 있다.

https://blog.naver.com/shinwr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