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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2018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예쁘게만 연주하지 않아요, 여장부 스타일 현악 4중주 보여드려요”

‘에스메 콰르텟’ 하유나·김지원·허예은 동문




“예쁘게만 연주하지 않아요, 여장부 스타일 현악 4중주 보여드려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현악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 왼쪽부터 배원희(바이올린) 씨, 허예은(첼로)·김지원(비올라)·하유나(바이올린) 동문. 사진=에스메 콰르텟 홈페이지




英 실내악 최고 콩쿠르 우승

“동양·여성팀 선입견 깰 것”



예쁜 모습으로 나와서 예쁘게만 연주하지 않는’ 콘셉트를 내건 현악4중주단이 있다. 세컨드 바이올린 하유나(기악10-14)·비올라 김지원(기악11-15)·첼로 허예은(기악11-15) 세 동문과 퍼스트 바이올린 배원희(미국 커티스 음악원) 씨로 구성된 ‘에스메(Esme) 콰르텟’. 프랑스 고어로 ‘사랑받는’다는 뜻의 이름이다. 현악4중주는 혼성·남성 팀이 대부분이고 전원 여성인 팀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팀 외형만으로 독보적인데, 지난 4월엔 결성 2년 만에 ‘큰일’을 냈다. 실내악 분야 최고의 콩쿠르로 꼽히는 영국 ‘위그모어홀 국제 현악4중주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것.


1979년 ‘런던 현악4중주 콩쿠르’로 시작해 현재는 영국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 ‘위그모어홀’의 이름으로 열리는 유서 깊은 대회다. 본거지인 독일에서 휴식차 잠시 한국에 와 머문 이들을 지난 10월 10일 관악캠퍼스 본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모교는 ‘에스메 콰르텟’이 싹을 틔운 곳이다. “학부생 때 예은이와 ‘YUL’이라는 이름의 현악4중주팀을 결성했어요. 맛보기로 잠깐 해본 거지만 너무 즐거웠죠.”(김지원) 다시 4중주를 시작한 곳은 졸업 후 두 동문이 유학하던 독일. 쾰른음대에서 실내악 수업을 듣게 된 허예은 동문이 가까이 살던 배원희 씨와 ‘가장 잘 아는 비올리스트’ 김지원 동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배원희 씨는 레슨한 제자 여럿을 서울대에 합격시킨 인연도 있다. 하유나 동문의 합류로 완성된 팀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조짐을 보였다.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자’고 뜻을 모으고 프랑스에서 수학하던 하유나 동문은 독일로 거처까지 옮겼다.


결성 초기에는 동양 여성 연주자를 향한 선입견에 맞닥뜨렸다. “‘너희가 악기는 잘하는데, 그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개개인 기량은 우수해도 앙상블의 높은 경지엔 못 이를 거란 뜻이었죠.”(하유나) “우리도 그들 이상으로 실내악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똘똘 뭉쳤어요.”(배원희)


콩쿠르 결선에서 이례적으로 50분에 달하는 슈베르트의 곡을 택해 ‘여장부 스타일’ 연주를 선보였다. 우승 트로피와 상금 1만파운드, 유수 음악 재단 두 곳이 주는 상도 모자라 독일 팀을 제치고 모차르트, 베토벤을 각각 가장 잘 연주한 팀에게 주는 특별상까지 한아름 안았으니 목표를 이룬 셈이다. ‘페스티벌 연주에선 악장 사이마다 웃으며 서로를 보던데, 콩쿠르에선 곡이 다 끝나서야 웃더라. 좋은 느낌이 왔냐’고 묻자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뿐이었다”는 이들의 답.


멤버 모두 금호영재 출신으로 국내외 콩쿠르를 휩쓴 출중한 솔리스트다. 그럼에도 “현재 음악 커리어에서 가장 우선은 콰르텟 활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각자 솔로 분야에서 학위를 밟으면서 뤼벡 국립음대에 모여 실내악 석사과정을 병행 중이다. 연습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멤버들이 사는 뒤셀도르프와 쾰른을 기차로 오가며 한다.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맛있는 요리를 해 먹으며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에서 오는 곡 해석의 차이도 극복한다. “서로 생각하는 방식은 달라도 느끼는 감성은 같다는 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팀의 강점이다.




에스메 콰르텟의 연주 장면 사진=에스멧 콰르텟 제공



음색이 비슷한 네 대의 악기로 펼치는 예술. 연주하기도, ‘잘 듣는 것’도 어렵다는 실내악의 꽃 현악4중주다. 실내악 불모지인 국내에선 더 그렇다. 재밌는 비유들이 장벽을 낮춰준다. 와인 한 병이 있다면 퍼스트 바이올린은 와인 라벨, 첼로는 와인병, 세컨드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와인 자체라는 식이다. 에스메 콰르텟이 안내하는 현악4중주는 ‘친구들의 수다’에 가깝다.


“네 사람이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사람이 하는 얘기를 저 사람이 받아서 하고, 옆에서 거들기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굉장히 재밌게 들릴 거예요.”(하유나) 그 말처럼 조금씩 말을 더하며 생각을 완성한다. “오케스트라의 색을 네 명이서 표현하잖아요. 첼로 연주에서 관악기 소리를 연상할 수도 있죠. 넷이 서로 변신하는 재미도 있고요.”(허예은), “역할이 항상 바뀌는 게 콰르텟의 매력이죠. 비올라가 솔로로 나올 땐 ‘와인 라벨’이 될 수도 있어요.”(김지원).


콩쿠르 전 우승팀인 하겐 콰르텟, 아르카디아 콰르텟처럼 에스메 콰르텟도 세계 무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데뷔 콘서트를 시작으로 우승 특전인 15차례 영국 투어 연주가 예정됐다. 앞으로 낼 첫 음반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녹음된 적 없는, 깜짝 놀랄 만한 곡이 실릴 것”이라는 귀띔이다. “콩쿠르 이후 요청이 많아 얼마전 한국에서 작게나마 연주회를 열었어요. 내년엔 정식으로 국내 공연도 계획 중입니다.”(하유나)


아직 미혼인데도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여성팀이 유지되겠느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는다는 멤버들은 “3대를 이어 수십년간 활동하는 콰르텟도 있더라”며 눈을 빛냈다. 4중주를 닮은 이날의 대화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로 끝맺었다. 이들의 연주가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에스메 콰르텟’을 검색해서 볼 수 있다.




박수진 기자




▽에스메 콰르텟 홈페이지

http://www.esmequartet.com/


▽에스메 콰르텟의 연주 영상



2018 위그모어홀 콩쿠르 결선 영상-Schubert String Quartet in G majot D887

(에스메 콰르텟 연주는 1:46:11부터)


Trondheim Kammermusikkfestival - Joseph Haydn: String Quartet in D Major, Op. 71 No. 2





제660회 하우스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