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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2018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입 다물고 ‘좋게 좋게’ 지내는 동안 누군가는 서운할 수밖에 없어요”

수신지 일러스트레이터·웹툰 ‘며느라기’ 작가
수신지 일러스트레이터·웹툰 ‘며느라기’ 작가

“입 다물고 ‘좋게 좋게’ 지내는 동안 누군가는 서운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 
단행본 2만부 판매, 모교 전시도   




명절 아침 식사 풍경을 담은 그림 두 장.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씁쓸함을 느끼는 장면이다.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거나 ‘뭔가 이상하긴 한데’라고 생각했다면, 이 작품을 권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수신지(필명·서양화99-04) 동문의 화제작 ‘며느라기’다.  

‘며느라기’는 수신지 작가가 1년 반 동안 SNS를 통해 연재한 웹툰이다. 계정을 팔로우한 독자가 60만명. 독특한 연재방식과 평범한 며느리의 일상을 표현한 ‘극사실주의’로 입소문을 탔다. 올해 초 완결이 난 후에도 화제성은 여전하다. 연재분을 엮은 단행본은 2만부가 팔렸고, 이번 추석에도 각종 매체에서 앞다퉈 그의 작품을 인용했다. 2017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한 ‘며느라기’의 힘은 기존에 많이 다룬 극단적인 고부갈등에서 벗어나 며느리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애환을 섬세하게 짚어냈다는 데 있다. 추석 연휴 다음날인 9월 27일 연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포함한 많은 며느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전부터 고부관계 소재에 관심이 있었지만 구체화하진 못했어요. 결혼을 하고 나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일도 ‘며느리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제 자신과 다른 여성들이 문득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이 어쩔 수 없는 마음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 걸까’, 또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수신지 작가가 찾은 답은 작품의 제목인 ‘며느라기(期)’.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로도 치환되는 이 말은 며느리가 시댁에 예쁨 받고 싶은 시기를 뜻한다. 며느리들이 시댁만 가면 좌불안석인 것도, 주인공 ‘민사린’이 명절날 여자들만 따로 둘러앉은 작은 밥상에서 묵묵히 밥을 먹다 누구보다 먼저 부엌일을 하려 나서는 것도 ‘며느라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매 화마다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댓글창은 분노와 토론의 장이 됐다. 그럼에도 작품은 결말까지 일정 온도를 유지했다. ‘이 만화엔 가치 판단도, 권선징악도 없다. 그대로 보여줄 뿐’이라는 어느 독자의 평. ‘며느라기’의 성공 후에도 수신지 작가는 본명이나 사진 같은 작가 본인의 노출을 꺼리고 작품의 리얼리티를 유지하고자 했다. 

“불합리하다고 느껴도 
‘며느리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과 여성들이 
문득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이 어쩔 수 없는 마음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 걸까’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독자가 마치 내 집 같다고 느낄 수 있는, ‘보통 가정’의 모습을 만들고 싶었어요. 갈등이 과하면 감정이입이 힘들어지니까요. 제 시어머니께서도 같이 보시면서 며느리에게 공감을 많이 하셨어요. 요즘엔 ‘남편한테 책을 선물했다’는 후기가 많아요.”

‘며느라기’는 그의 세 번째 완결작이다. 7년 전 단편만화로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난소암 투병기를 담은 ‘3그램’과 자전적인 성격이 짙은 ‘스트리트 페인터’ 등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려 왔다. “대학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션부터 시작해 계속 뭔가를 만들었지만 일방적인 느낌이었죠. ‘며느라기’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통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 기분 좋으면서도 다음 작업엔 어떤 반응이 올지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 ‘며느라기’가 정말 ‘소재발’이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올해는 강연과 북토크 등을 통해 ‘며느라기’를 알리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인터뷰 당일도 ‘며느라기’ 추석 특집편을 그려 올렸다. “지난 설에 연재를 마칠 땐 ‘세상이 변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추석이 되도록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아서”다. 모교 관정도서관에서 10월 31일까지 전시도 연다. “연재할 때 의외로 미혼인 20대 초반 대학생들의 호응이 많아 힘이 됐어요. 한편으론 지금의 20대 여성도 제가 그맘때 했던 걱정을 똑같이 한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죠. SNS 세대가 아니라도 책을 통해 ‘며느라기’를 접해 보셨으면 해요.” 그는 “창작자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잘 봤다’ 하고 책을 덮기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갖길 바란다”. 연재를 마치며 쓴 작가 후기의 일부다. ‘며느라기’가 이야기의 끝이 아닌 시작점이 되길 바라고 있다.

“강연에 시어머니 나이대 분들도 많이 오세요. ‘만화에 공감하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아는데, 그래도’라고 말씀하시죠. ‘급하게 하면 탈난다, 트러블 없이 천천히 바꾸자’고요. 하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변화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좋게 좋게’ 지내는 동안 누군가는 서운할 수밖에 없고, 심하면 관계가 단절되기도 하잖아요. 작품에 대한 여러 반응을 존중하지만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에 그치는 반응은 왠지 슬프기도 해요. 때로는 답답하고, 밉기도 한 ‘며느라기’의 인물들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삶을 바꾸는 계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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