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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2018년 10월] 뉴스 본회소식

평화 꽃이 핀다, 그림에는 휴전선이 없다

?장학금 마련 미술 전시회 개막

장학금 마련 미술 전시회 개막


지난 9월 14일 서울 마포구 SNU장학빌딩 2층 베리타스홀에서 장학기금 마련 특별전시회 ‘아름다운 동행-평화, 꽃이 피다’ 전이 개막했다. 내외빈과 출품작가들이 이날 행사에 참석해 전시회의 성공을 기원했다. 



평화 꽃이 핀다, 그림에는 휴전선이 없다


“도록을 받아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처럼 미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김환기, 박수근, 백남준, 이대원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수두룩하게 실려 있어서요. 지난해 전시회부턴 서울대 교문을 넘어 타 대학 출신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출품됐는데, 올해는 휴전선을 넘어 북한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됐습니다. 더 좋고 더 넓은 예술세계로 여러분들을 모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신수정 본회 회장의 인사말과 함께 장학기금 마련 특별전시회 ‘아름다운 동행-평화, 꽃이 피다’전이 지난 9월 14일 막을 올렸다. 서울 마포구 SNU장학빌딩 2층 베리타스홀에서 열린 이번 전시회는 1, 2, 3부에 걸쳐 내년 1월 31일까지 진행된다. 대한민국 작가 40여 명의 작품 120여 점, 북한 작가 40여 명의 작품 9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신 회장은 작가로 활동 중인 여동생 신수희(회화62-66) 동문을 통해 맺은 103세 현역작가 김병기 화백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등 미술계 인사들에 대한 친근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낸 김병기 화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전시회에도 세로 1미터가 넘는 대작을 두 점 출품했다. 특히 최근작 ‘성자를 위하여’는 노작가의 열정과 새로운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김병기 ‘성자를 위하여’ 130x97cm, Oil on canvas, 2018 


개막식 이전부터 전시장에 도착해 꼼꼼히 작품들을 둘러본 정근식(사회76-80) 모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의 그림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니 놀랍다”면서 정종여, 정창모, 정현웅, 김상직, 정영화 등 북한 인민·공훈예술가의 이름을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모교 통일평화연구원장을 지낸 정 교수는 “통일은 아직 먼 미래를 보고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지만 평화는 지금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엄청난 주제”라면서 “‘평화, 꽃이 피다’라는 주제에 걸맞게 남한의 임옥상·노숙자, 북한의 문화춘 화백 등 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평화라는 추상어를 남북한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며 “남북한 작가들이 함께 백두산이나 금강산에 올라 집단 스케치를 하고 특별전시회를 열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2003년 모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모교 평의원회 의장,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부원장, 한국사회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작품을 감상하는 정근식 모교 사회학과 교수



남북 대표 작가 작품 한자리에
장학빌딩서 내년 1월까지 전시

문 주(조소79-86) 모교 미대학장은 축사에서 “오늘 전시회는 예술을 통해 남북이 만나는 아름다운 동행의 현장”이라며 “남북한 미술세계를 한 자리에서 조망함으로써 남과 북이 각자 경험한 심상을 돌아보고 함께 걸어갈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춘택 전 공군참모총장 또한 이번 전시회가 “우리 민족은 역시 하나구나, 하는 인식과 평화 통일의 마중물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내는 한편 전시회 취지 중 하나인 장학기금 마련과 관련해서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품에 참여한 여러 화가들을 대표해 전인아(서양화89-93) 작가가 감사장을 받았다. 전 작가는 천마·주작 등 신화 속 상상의 동물들을 즉흥적·중첩적 붓질로 그려 민족의 원형질과 서구 모더니즘을 융합시켰다고 평가 받는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손녀이기도 한 그는 이번 전시에 ‘패총’, ‘홍마’, ‘천마’ 등 세 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신수정 회장이 전인아 작가에게 감사장을 수여하고 있다


개막식이 끝난 후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과 내외빈들은 다과를 즐기며 작품을 감상했다. 연신 휴대폰을 꺼내들며 그림도 찍고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도 했다. 신수정 회장도 정옥란(응용미술62-66) 작가의 손을 잡고 그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계단참에서부터 대가의 작품이 관객을 압도했다. 북한 대표작가 선우영의 ‘금강산 천녀봉’이 벽면에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 가로 2.9 세로1.9미터에 달하는 대작으로 금강산의 비경을 수채화에 담았다. 계단을 오르는 길에 고개를 들어 보도록 전시돼 작품의 위용이 더욱 빛난다. 선우영은 지난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했을 때 “저도 기억이 나는 분”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화가다. 이번 전시회를 주관한 손은신(산업디자인82-91) 케이메세나네트워크 이사장 또한 선우영 화가를 눈여겨봐야 할 작가로 꼽았다. 

손 이사장은 “선우영은 섬세하고 밀도 있는 표현의 세화가로 조선화의 작품성을 한 단계 높인 북한의 대표작가”라고 소개했다. 손 이사장은 또 남북한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 시국을 짚으면서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다가올 통일시대의 문화 한국의 문을 여는 첫걸음이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 걸린 이호련 작가의 그림은 이색적이다. 여성의 하체를 소재로 관음적 시선을 투영시킨 그의 작품은 어쩐지 똑바로 보긴 힘들고 슬쩍슬쩍 곁눈질로 자꾸 보게 되는 묘한 매력을 풍겼다. 여성의 연속된 동작을 중첩시켜 그린 ‘중첩 이미지’와 같은 포즈를 한 다른 여성의 앞뒤 모습을 나란히 그린 ‘꼴라주 이미지’가 출품됐다. 

전시장 안쪽으론 북한작가 김만형의 ‘쇳물 붓는 사람들’이 인기였다. 작품 양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가로 1.63 세로 0.97미터의 크기도 그랬지만, 모락모락 김이 솟는 쇳물을 부으며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땀과 긴장감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남한 작가들의 작품은 전시 주제가 직간접적으로 반영된 그림들이 많았다. 임옥상(회화68-72) 화백의 작품 ‘민들레 홀씨 당신 2018’은 지난 4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깜짝 이벤트의 장면을 담고 있다. 붉은 바탕에 두 사람의 뒷모습을 실루엣으로 그렸다. 정중원 작가의 그림은 이보다 더 직접적이다. 첫 회담 당시 악수하는 두 정상의 웃는 얼굴을 카메라로 찍은 듯 사실적으로 그려내 보는 관객들마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민정기(회화68-72) 화백은 임진리 접경지역을 담은 풍경화를 출품했다. 1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임진리 나루터와 지금은 사라진 임진리 도솔원의 풍경을 가로 2미터 내외 크기의 대작으로 그렸다. 남재현(동양화00-09) 작가의 ‘새로운 길을 가보다(DMZ를 걷다)’는 짙푸른 비무장지대 위를 나는 비행기를 그려 자유롭게 남북한이 왕래하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표현한 듯했다.

북한의 출품작들은 구상이 많았다. 김상직·전 영·류정봉 작가의 작품은 ‘해금강’, ‘청봉의 수리개’, ‘금강산 집선봉의 소나무’, ‘금강산 상팔담의 달밤’에서 보듯 풍경과 나무, 새를 그린 작품이 주를 이뤘다. 전 영 작가의 소나무는 최근 개최된 평양 남북정상회담장의 배경그림으로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김성민·김승희 작가의 작품 ‘흥겨운 무도’, ‘쟁강춤’, ‘봉산탈춤’ 등은 토속 놀이를 즐기는 민중의 모습을 담았다. 김성민 작가는 만수대창작사 부사장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관람을 안내하기도 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