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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호 2018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연구실에서 보이지 않던 세상, 현장에 나오니 보여요”

모교 사회봉사상 수상 조동준 교수 인터뷰


“연구실에서 보이지 않던 세상, 현장에 나오니 보여요”

모교 사회봉사상 수상 조동준 정치외교학부 교수



“봉사는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조용하게 한 일이 알려져서 부끄럽습니다.”

지난 7월 모교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조동준(외교87-91) 모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모교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국제기구와 통일, 북한 연구를 해왔다. 글로벌 동영상강의 사이트 edX에서 전 세계 학생에게 한반도 국제정치를 가르쳤다. 그런 그가 신림 지역 소외계층 청소년과 탈북 청소년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캄보디아 이주민 노동자 가족을 돕는 활동과 대인지뢰 피해자 구호 활동까지 펼친 것이 수상을 통해 알려졌다. 연구 분야와 무관해 보이지 않지만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계기로 한 일”이라며 인터뷰 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설득 끝에 8월 13일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조 동문을 만났다.

시작은 2004년 신림 10동(현 삼성동)의 공부방 문을 두드리면서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5년간 찾아가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쳤다. “초등학교 1학년 딸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은 딱 한 마디를 말했더군요. 버스 기사님께 건넨 ‘안녕하세요’였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신림10동 아이들이 떠올랐어요.”

관악에서 오래 공부한 그에게 신림10동은 친숙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리운 딸아이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 가르치는 일이 마음에 큰 위안이 됐다. ‘서울대 교수가 왜 여기에 왔을까’ 주변의 의문스런 시선도 잠시, 어느새 그는 그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 있었다.

“즐거웠어요. 저도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도 저를 좋아해줬거든요. 공부방 아이들 대부분이 조손가정이어서 아버지를 보기 힘들거나 무척 어려워해요. 저같은 아빠 나이대의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공부보다는 상호작용하는 법을 더 가르쳐주려 했어요. 자원봉사자들이 선한 마음에 무조건 잘 해주면 아이들이 사회에서 소통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른 봉사자들과 얘기하면서 방향성을 잡는 일도 했죠.”

복지 사각지대인 신림동 공부방에선 연구실에서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보였다. “공부한 사람들은 한국 사회를 잘 모른다”는 일종의 자기 고백이다. “시야가 좁아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보완하기 위해선 아주 구체적인 현상에 가 있어야 합니다. 당시 무상 급식 논쟁이 한창이었는데 거대 복지 담론은 논하면서 실제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에 대해 미시적인 고민은 하지 않는 게 안타까웠어요. 학생들에게도 ‘지도자를 꿈꾼다면 현장에 가보라’고 말합니다.”

자택에 탈북민 공부방 열고
대인지뢰 피해 구호 활동도

그의 집이 그 현장이 되기도 했다. 자택에 탈북청소년을 위한 공부방을 차린 일이다. 종교적인 결심 끝에 뜻이 맞는 이들과 세운 개척 교회에 탈북민 아이 세 명이 찾아왔다. 퍼뜩 든 생각은 ‘통계적으로 이 아이들 중 한 명은 탈선할 가능성이 높다’. 앎이 곧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영어 공부”라고 답한 아이들을 아내가 먼저 집으로 불러들였다.

“존경스러운 건 아내가 영어를 가르치면서 따뜻한 밥도 지어 먹였어요. 저는 사회과목을 맡고 수학 강사도 모셔왔죠.” 그 정성 덕에 공부를 시작한 그해와 다음 해에 모두 대학에 들어갔다. 뭘 믿고 따라왔는지 묻자 아이들은 말했다. “집으로 불러주고,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는, 그런 대접은 처음 받아봤다”고.

“사회에 기여하기보다 지원 받으면서 살아가는 처지가 된다면 아이들 본인에게도 슬프지만 우리에게도 슬픈 일 아닐까요. 나를 위한 봉사란 그 뜻이죠. 만약 다른 아이들이 찾아오면 또 그렇게 할 겁니다.”

대인지뢰 피해자의 인도적 구호와 관련 법률 제정을 위해 뛰면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고향을 찾아 그 가족을 도우면서 책 바깥의 현실을 꾸준히 읽어왔다. 역시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한 활동이다. 간혹 봉사를 하며 느끼는 어려움을 토로했던 옆 연구실의 박종희 교수가 추천해 이번 상을 받았지만 “현장엔 더 치열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 과분하기만 하다”는 그다. 봉사를 지속하기 위해선 ‘불나방’같은 자세를 강조했다. “불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고, 멀리 있으면 목표가 사라집니다. 모교 동문이라면 NGO 활동에서 현실적으로 기여할 부분이 많을 겁니다.”

연구실 한편에 그의 딸이 어릴 때 쓰던 흔들목마가 있었다. 봉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딸은 모교 식품영양학과에 재학 중이다. “딸아이가 학업을 마친 후에 신림동 아이들에게로 다시 가겠다는 약속을 했었어요. 같이 갈 계획도 있죠.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즐겁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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