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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2018년 7월] 뉴스 본회소식

15회 동문 바둑대회 최강조 우승 이상규 동문 / 바둑계 활약 동문들

지방까지 원정출전…경남도민대회 3회 우승했어요
인터뷰

제15회 동문바둑대회 최강조 우승
이상규(불어교육75-82) 동문


지방까지 원정출전…경남도민대회 3회 우승했어요

올해 최강조 우승자인 이상규(불어교육75-82 전 종로학원 제2외국어 강사) 동문은 초등학교 4, 5학년 때 서울로 바둑 유학을 왔었던 것을 기억할 뿐 언제 처음 바둑을 시작했는지 모를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바둑을 배우고 즐겨왔다. 대학 입시와 군복무 때문에 10년 가까이 바둑돌을 놓았던 때도 있었지만 동문 바둑대회는 물론 지방에서 개최되는 바둑대회까지 빠짐없이 출전할 정도로 바둑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우승 소감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첫 대국이 거의 지는 판이었는데 상대가 조금 느슨해지는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바둑이란 게 워낙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조금 실력이 모자라도 상대의 실수를 잘 활용하면 금세 판세가 뒤바뀔 수 있다. 겸손이라고 하기보단 바둑의 특징이고 그러한 특징을 잘 살려 뒀다고 본다.”

-다른 대회 우승경험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최하는 바둑대회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경상남도 도민바둑대회에서 세 번 우승했으며, 그 외 지자체 대회에서도 수차례 입상했다.”

-바둑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됐는지.
“일보단 사교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많이 됐다. 주변의 바둑 애호가들한테서 실력을 인정받으니까 대우를 잘 해주더라.”

-좋아하는 프로 바둑기사는.
“이창호 9단을 좋아한다. 그의 바둑을 보면 상대가 누구든 개의치 않고 판세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 바둑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감정 컨트롤을 잘 하는 것 같다.”

-동문 바둑대회에 한 말씀.
“개인전뿐 아니라 사범대 대표로 단체전 출전도 꾸준히 해왔다. 자주 못 보는 동문들 얼굴을 대회에 와서 많이 만나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경태 기자



남치형·오주성…바둑계 활약 동문들


바둑계를 누비는 모교 동문들이 많다. 프로 기사, 교수, 바둑 해설가와 전문기자 등 역할도 다양하다. 고 강철민(경제57입) 8단, 홍종현(법학64-68) 9단은 초창기 바둑계를 이끈 원로 바둑인이다. 강철민 동문은 60~70년대를 풍미한 한국풍 우주류의 원조로 꼽힌다. 모교 입학 후 뒤늦게 바둑에 입문해 두 차례 최고위전에서 우승했다. 홍종현 동문은 모교 진학 후 학업을 위해 프로기사직을 사퇴했으나 다시 입단해 2011년 은퇴 전까지 40여 년간 프로로 활동했다. 내제자 제도를 도입하고 많은 유망주를 키웠다.

남치형(영문94-98) 초단, 오주성(물리천문07-11) 2단은 이들의 뒤를 잇는 청년 프로기사다.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을 시작한 남치형 동문은 15세에 프로에 입문했다. 입단 제도를 통해 프로에 입문한 최초의 여자 기사다. 국내 첫 여성 바둑 교수로 명지대 바둑학과에 임용돼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오주성 2단은 2002년 14세의 나이에 입단했다. 현역 기사이면서도 물리학 공부를 병행해 지난해 모교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반외(盤外)에는 바둑언론계의 대부로 불리는 동문들이 있다. 박치문(국문68-79 아마 7단) 전 한국기원 부총재는 1975년 조선일보에서 시작해 주요 일간지에서 바둑전문기자로 활동하며 40여 년간 바둑해설을 썼다. 대학 때 한·일 대학생 바둑대회에 참가하면서 신문에 관전기를 낸 것이 인연이 됐다.


신병식(미학73-78 아마7단) 전 SBS 논설위원은 대학 시절부터 서울대 대표로 전국구에 실력이 알려졌다. 한국대학바둑연맹 초대 회장도 맡아 대학 바둑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안성문(정치83-87 아마6단) 전 대한바둑협회 전무는 1992년부터 관전기와 바둑 평론을 쓰며 바둑 전문기자로 활동해왔다. KB바둑리그 전문기자, 바둑 TV 편성제작국장, 넷바둑 대표를 지냈다. 


박수진 기자




▽동문 바둑대회 기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