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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호 2018년 2월] 문화 신간안내

화제의 책: 박영배 국민대 명예교수 '켈트인, 그 종족과 문화'

아일랜드 문학에 숨어있는 켈트인의 정신


아일랜드 문학에 숨어있는 켈트인의 정신

켈트인, 그 종족과 문화
박영배 국민대 명예교수
지식산업사 25,000원


‘켈트인, 그 종족과 문화’는 영미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호기심을 가질 법한 켈트인과 언어 및 그들의 문화를 한국 최초로 본격적으로 조명한 연구서다. 영어사와 역사영어학이라는 학문을 반세기 가까이 천착해 온 학자 박영배(영어교육65-72) 동문은 방대한 사료와 고고학 연구 성과를 총망라해 켈트인의 총체를 한 권에 집약시켰다.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와 언어’(2001)에서 초기 영국문화의 기원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유럽문화의 또 하나의 뿌리에 접근하는 시도다.

그리스인들이 켈트인들을 일컬었던 켈토이(Keltoi)의 유래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은 ‘숨어 있는’이란 뜻의 어근 kel-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제1장). 캘트인들은 한때 유럽을 제패하기도 하면서 소금·철의 교역으로 부를 누렸으나 앵글로색슨족의 침입으로 정복됐다. 이들의 베일이 유럽에서도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벗겨지기 시작했으므로, 원래 이름처럼 우리들에게도 ‘감추어진’ 종족이었던 것이다.

켈트인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로마나 그리스의 고전 사가들이 켈트인들을 폄하하여 서술했기 때문. 줄리어스 시저도 ‘갈리아 전기’에서 켈트인을 포함하는 갈리아인들을 미개하고 호전적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저자는 잔인했던 로마인들에 견주어 켈트인의 사나움은 오히려 온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로마 사가들이 형편없는 것으로 묘사한 켈트인의 철제 투구와 방패 등이나 기병, 기술은 도리어 에트루리아인들과 로마인들의 ‘우수한’ 군사 제도 형성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제7장). 이 밖에도 여성뿐만 아니라 노약자, 지적장애자들까지 보호한 법률이나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지위 등에서도(제7장) 수준 높은 켈트사회가 입증된다.

저자는 제10장에서 켈트어와 켈트영어(켈트어의 기층이 스며들어간 언어)를 나누어 이들 언어의 현 상황과 위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영어의 초기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켈트어는 드루이드교의 영향으로 당시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던 바, 여러 방언으로 갈라져 현재 사멸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켈트인이 사용한 지명은 앵글로색슨족이 받아들였고, 켈트인들이 내세를 표현한 여러 완곡한 어구가 고대 및 중세 아일랜드어에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내세와 영혼불멸을 믿었으며 선(善)을 지고의 원리로 삼았던 켈트인들의 믿음(제5장)이 아일랜드 문학에 준 영감은 매우 크다. 박 동문은 “초기 아일랜드 문학이나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등 거장의 문학에 켈트 문학 특유의 유현(幽玄)함이 발견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박 동문은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오스트레일리아정부 장학생, 영국 런던대 SOAS의 방문학자, 캐나다 토론토대 중세연구소 연구기금교수 시절을 거치면서 30년 넘게 고대 및 중세영어 통사 변화, 영어 어휘의 역사적 변천, 룬문자의 기원과 고대영어 비문 해석에 관한 논문들을 국내외에 발표해왔다. 한국영어사학회, 한국중세영문학회 및 한국영어영문학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일본영어학회 편집자문위원을 지냈다. 저서로 ‘영어사’,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와 언어’, ‘고대 영어문법’ 등과 역서로 ‘언어학 입문’, ‘영어사 서설’등 다수가 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