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77호 2017년 12월] 기고 에세이

프랑스 장기 기증

칼럼니스트 장동만 동문 기고
프랑스 장기 기증

동문 기고


장동만
철학55-61
칼럼니스트

프랑스에선 2017년부터 아주 파격적인 법이 시행됐다. 사람이 죽을 때 “장기 기증을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한, 모든 사망자를 장기 기증자로 간주하게 된다. 이를 좀 더 설명하면 이렇다. 한국이나 미국에선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을 해야만, 죽은 후 일정 조건 하에서 그 사체에서 장기를 적출, 필요한 사람에게 이식, 또는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프랑스에서 시행된 법은 그 반대로, “죽은 후 장기 기증을 거부한다”고 생전에 그 의사를 확실히 밝히지 않는 한, 유가족의 반대가 있을지라도 장기 기증·적출에 동의한 것으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프랑스 의사들은 사망자가 장기 기증 여부를 확실히 하지 않았다면 가족과 이를 상담해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 이 의무가 없어진 것이다.
죽으면 한 줌의 흙과 재가 될 몸뚱아리,무위로 돌아가기 전에 기왕이면 “사회 공익을 위해 쓰자”는 그 취지에는 공감이 가면서도 뭔가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이 법은 곧 국가가 개인의 주검을 관리, 임의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법 기저에는 장기 적출·이식도 그렇지만, 사체는 생명과는 무관한 한낱 물체로 간주하는 물질주의(materialism) 철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비정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죽은 후, 내 몸은 국가 소유? 여기서 또 인간의 죽음, 주검과 자연의 순리, 조물주의 섭리를 생각케 된다. 죽으면 육체는 무(無)가 된다. 그렇다고 그 과정에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가 자의로 개입,아무렇게나 이를 다뤄도 좋을 것인가?
더욱이나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의 생명, 그 생명의 사후를 국가가 이렇게 멋대로 처리해도 좋을 것인가? “살아도 인간, 죽어도 인간”이라면 이는 국가권력이 개인 생명에게 가하는 월권적인 횡포가 아닐까?
프랑스에선 죽은 사람의 유가족 3분의1 가량이 장기 기증을 거부한다고 한다. 한편, 연초까지 ‘장기 기증 거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약 15만명에 달한다. 네덜란드에선 이와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EU 회원국과 노르웨이, 터키에서 환자 8만6,000명이 장기 기증을 기다리고 있고, 매일 16명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우리 교포들은 장기 기증을 서약한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불감훼상 효지시야(不敢毁傷 孝之始也)라 했다. 자신의 골격, 터럭, 피부, 장기는 모두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이를 감히 훼손하거나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라는 가르침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했다. 살아서는 얼굴을 마구 뜯어 고치고-그래서 죽은 후 천당 문앞에서 문지기에게 ID 확인이 안 돼 쫓겨난다는 우스개까지 생겼다-죽어선 내 몸을 국가가 임의로 가져다 쓰겠다 하고… 도대체 “뭣이 뭔지?” 종잡을 수 없는 참으로 ‘혼돈의 시대’다. 장동만 블로그(dmj36.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