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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호 2017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정권 바뀌어도 엄정한 사실 기록…우리 전통 살려내겠다”

김재순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장 인터뷰
김재순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장

“정권 바뀌어도 엄정한 사실 기록…우리 전통 살려내겠다”


새 정부 출범 후 보수정권 시절 있었던 사건들이 다시 들춰지고 있다. 적폐청산 대 정치보복.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국가기록물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1992년 총무처 기록보존소의 ‘1호 연구원’으로 입사해 1999년 공공기록물관리법 제정, 2004년 전자기록관리체계 설계, 2008년 나라기록관(현 서울기록관) 건립 등 대한민국 기록물 관리의 뼈와 살을 만든 김재순(국사80-84) 서울기록관 관장을 지난 9월 25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나라 기록문화의 전통이 끊어졌습니다. 민간기록도 같이 담아 당대 사건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게 한 실록과 문자뿐 아니라 그림을 더해 국가의 대규모 행사를 시각적으로 담은 의궤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되살리지 못했죠. 1999년 제가 기안한 공공기록물관리법은 이렇듯 100년 가까이 단절돼 있던 기록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김 관장은 기록문화의 전통으로 사초작성, 의궤, 실록, 사관, 엄정한 보존 등을 꼽았다. 그에 따라 국무회의 안건만 기록하던 기존 관행을 깨고 국무위원들의 사소한 발언까지 전부 기록하도록 법제화했으며, 사진·오디오·비디오 등 국가행사에 대한 시청각 기록의 생산을 의무화했다. 또한 사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록과 민간기록까지 망라했으며, 모든 국가기관에 기록관리 전문요원을 배치했다. 기록물의 무단파기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처벌도 강화했다.

“법률 제정과 정책 조정은 중앙부처 국 단위기관에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하위기관 소속이었고요. 법 제정의 타당성은 많은 부분 공감을 얻었지만 ‘네가 뭔데 법을 만드느냐’ 하는 지적과 함께 강한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어찌 보면 하극상이었죠.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권위주의 청산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정부 정책 100대 과제 중 하나로 뽑혔습니다. 상위기관 제치고 법이 제정된 것은 그때가 유일할 겁니다.”


국가기록물관리법제정·디지털화 기여
“서울기록관 건립 동문들 도움 컸다”


김 관장은 그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서울기록관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부지확보, 예산편성, 설계공모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기록물 보존 및 열람 공간과 방문객을 위한 전시 및 체험 공간을 복합적으로 갖추면서도 그 모든 동선이 간결하게 설계됐다. 신전(神殿)에 착안한 외형의 위엄과 내부 공간 활용의 효율성을 겸비한 것이다.

“서울기록관은 제가 서울대 출신이었기 때문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건립 추진 당시 많은 동문들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기획재정부 담당 서무관, 한국개발연구원의 전문가, 서울시립대 교수님 등 각계각층에 포진한 동문들이 국가적 중요사업이라는 것을 인정해주시고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과 충고를 해주셨어요. 덕분에 499억원 잡혀있던 예산을 1,421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따냈습니다. 모교 동문들의 저력을 확인한 소중한 경험이었죠.”

국사학을 전공하고 25년째 ‘기록보존맨’으로 살아온 김재순 관장. 얼핏 아날로그적 성격을 띨 것 같지만 첨단 IT기술에 대한 안목도 상당하다. 2004년부터 7년 동안 국가기록의 전자적 관리체계를 설계한 것. 공무수행 및 의사결정 과정을 시스템적으로 기록·관리해 업무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한번 시스템에 등록되면 삭제가 불가능하고 삭제하더라도 추적이 가능해 공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도록 견제한다. 항일운동, 경제개발 등 기록물을 온라인으로 제공해 역사의 교훈을 되살리는 데도 한몫을 한다. 김 관장은 한발 더 나아가 전자정부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전자기록의 유형분류·보존정보 등을 먼저 구축해 외국에 진출, 기록물 관리와 관련한 IT기술을 수출하겠다는 미래 비전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기록관의 부지를 확장해 기록문화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인근에 위치한 세종연구소 뒤편으로 기록물 보존기술센터를 건립할 계획입니다. 역사의 소중함과 기록의 중요성을 대중에 널리 알리는 한편 미래 한국의 청사진을 기획하는 메카로 발돋움시키려는 것이죠. 또한 국가기록원을 청 단위 독립기관으로 격상시켜 정권이 바뀌어도 자유롭고 엄정하게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보존하여 후대에 전하는 책무를 다할 것입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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