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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2017년 5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여검사 첫 북한법 박사 장소영 동문 인터뷰

광고 제작자에서 검사, 검사에서 북한법 전문가로 거듭
화제의 여성 장소영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어제는 광고 제작자, 이제는 북한법 전문가 

女검사 첫 북한법 박사학위 취득
통일법제 DB 구축…총리 표창도

“개성공단은 북한의 영토지만 그곳에서 우리 국민이 저지른 형사사건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관할했습니다. 일부지만 남한의 법이 북한에 적용된다는 게 놀라웠어요.”

장소영(언어87-91) 동문은 올해 2월 여성 검사 최초로 북한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사 졸업 후 20여 년이 지난 2014년 모교 로스쿨로 돌아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검사라는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고생스럽게 늦은 공부를 감행한 이유는 뭘까. 부산지방검찰청 장 동문의 사무실에서 특별한 계기와 포부에 대해 들었다.

“2006년 고양지청 재직 당시 북한 문화재를 밀반출하려다 발각된 남한 주민의 신병과 조사 자료를 인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건 처리를 위해 법무부 훈령, 남북합의서 등을 찾아 읽으면서 북한에도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 후로 북한법의 체계는 어떤지, 사법처리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등 궁금증을 풀다 보니 박사가 됐습니다.”

장 동문의 논문 주제는 ‘북한의 경제개발구법에 관한 연구’다. 개성공단 재가동은 물론 앞으로 다시 열릴 남북한 경제협력을 위해 어떠한 규범들이 준비돼 있으며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 자세히 다뤘다. 법무부 통일법무과에서 3년, 통일부 법률자문관으로 2년. 현장에서 일했던 실무경험을 10년 동안 공부한 지식에 융합해 북한을 좀더 과감한 개방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장소영 부산지검 검사가 인터뷰 중 포즈를 취했다.



“저는 남북한 경제협력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실업, 인사적체, 인구절벽 등 남한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통일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외국 자본을 받아들여 주민들이 굶어죽지 않게 해야 하고요. 또한 남쪽엔 없는 지하자원이 북쪽엔 풍부하고, 북쪽엔 없는 막강한 기술력을 남쪽은 갖고 있죠. 서로 힘을 합치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겁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지금은 단절된 상태지만 그러한 필요 때문에라도 다시 협력하게 될 거예요.”

장 동문은 “논문에 담긴 연구가 현실화 돼서 남북경협이 보다 활발해지면 통일을 앞당기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다는 점에서 엄청난 보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의 위기가 공공연히 회자되는 요즘 경제협력을 넘어 통일을 꿈꾸는 그의 모습은 선구자적이었다. 그는 또한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스마트폰 검색만으로 북한 법령·서적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한 공로로 2014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검찰 내 북한전문가로 자리 잡았지만, 장 동문은 언어학을 전공했다. 제일기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로 유명한 히트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일 자체는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그러나 광고업계는 직원 ‘수명’이 짧아요. 선배들이 서른 중반에 하나둘 퇴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업을 생각하게 됐죠. 남편과 상의 끝에 자격시험 외에는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1998년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4년 만인 2001년 최종 합격했죠.”

말로는 쉽게 요약되는 수험생활이지만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첫해에 임신해 1년 동안은 제대로 준비할 수 없었고,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심한 터라 낙방에 대한 불안은 공포에 가까웠다. 같은 중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동기가 이미 판사가 돼서 신문에 나왔을 땐 스스로 먼지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아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그때마다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남편 조희천(정치88-92) 동문이었다.

 “남편은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늦게 자고도 일찍 일어나 신림동 고시촌까지 태워다 줬어요. 너무 힘들어서 울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애꿎은 화풀이를 할 때도 많았죠. 그런 저를 남편은 꾹 참고 위로해줬어요. 저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데 ‘넌 분명히 합격할 거야’ 하며 저를 믿어줬죠.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남편과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낳은 아들이 올해 모교 경제학부에 입학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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