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70호 2017년 5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문경 오미자로 만든 명주, 독립운동 하는 기분입니다”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 인터뷰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

“문경 오미자로 만든 명주, 독립운동 하는 기분입니다”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가 오미자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술로 하는 독립운동, 그게 지금 제 일입니다.”

이종기(농화학75-81) 오미나라 대표는 인생의 절반 넘게 술을 빚어온 양조 장인이다. 인생 1막은 유명 주류회사에서 27년간 국내 유일의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로 명성을 쌓았다. 국내 위스키 시장 1, 2위를 다투는 ‘윈저’, ‘골든블루’를 그의 손으로 만들었고, 퇴직 후 대학에서 양조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술을 알면 알수록 한국을 대표하는 명주가 없다는 것은 그를 속상하게 했다. 인생 2막을 우리 술의 개척자로 살게 된 계기다. 오미자 주산지인 경북 문경에 터를 잡고 2011년 세계 최초의 오미자 와인 ‘오미로제’를 개발했다.

프랑스 샹파뉴에서 탄생한 샴페인처럼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역 특산주를 만들겠다는 꿈. 문경새재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와이너리 ‘오미나라’는 술과 함께 이 동문의 꿈이 익어가는 곳이다. 오미자 나무에 푸릇하게 잎이 돋아난 지난 4월 24일 오미나라를 찾았다.

“오미자에는 자연에서 나는 모든 맛이 있습니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매운맛 중에서도 신맛과 쓴맛이 상당히 좋은 양조적 특성이죠. 어떤 과일로도 내기 힘든 색깔도 큰 매력입니다. 달콤한 과일향과 허브향, 후추나 계피에서 나는 맵싸한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여러 가지 감각을 자극하죠.”

시음장에서 맛본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한 모금에 느껴지는 다채로운 맛이 다양한 음식과의 궁합을 연상시켰고 뒷맛도 차를 마신 듯 개운했다. 은은하고 섬세한 천연 기포는 손이 많이 가는 프랑스 전통 샴페인 제조방식을 쓴 덕이다. 2012년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 세계 물 포럼 등 국제적인 공식행사에서 특별 만찬주로 채택되는 등 국내외에서 호평 받았다.

이 동문은 원료 선정부터 양조 전 과정까지 마스터 블렌더로 단련한 감각과 경험을 오미자 와인에 쏟아부었다. 앞서 온갖 과일과 쌀, 약재를 모두 구해 양조실험을 했지만 국산 과일은 양조용 품종이 분화돼 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러다 발견한 오미자는 재배 역사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양조적인 적성’이 탁월했다. 특유의 천연 방부제 성분 때문에 발효에 1년 반, 숙성에 1년 반이 걸려서 ‘오미로제’는 3년산이 기본이다.

세계최초 오미자와인 ‘오미로제’ 개발
27년간 위스키 마스터블렌더 활동

“전통적으로 술은 예(禮)의 상징이었어요. 성인식인 관례나 계례에선 술을 마시는 절차를 통해 어른 대우를 받고, 혼례에서도 합환주를 마심으로써 비로소 부부가 돼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좋은 원료로, 정성 들여 만든 게 선조들의 술이었는데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기술도, 문화도 초토화됐죠. 저는 운 좋게 30년간 세계적인 양조 기술을 익혔어요. 그걸 국산 원료에 활용해서 우리 술의 정신을 계승하려고 하는 겁니다.”

오미자 와인의 일부는 증류하고 백자와 오크통에서 또다시 3년 숙성시켜 브랜디 ‘고운달’을 만든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발매 첫 해 생산량 2,000병이 거의 다 팔릴 정도로 애주가들에게 인기가 좋다. 술에 조예가 깊은 이경수(약학66-70) 코스맥스 회장이 독특한 달 항아리 모양의 술병을 후원 제작하기도 했다.
문경 사과로 만든 증류주 ‘문경바람’은 과수 농가에 대한 고민 끝에 나왔다. 와인으로는 밋밋했지만 증류주에서는 사과의 풍미가 잘 살았다. 국산 과일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그는 “지역 특산주 양조는 과수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봤다.

“지역 특산주라는 말이 ‘전통주’보다 더 타당하다고 봐요. 한국에서 난 원료를 쓰되 ‘전통적인 방법’만 써야 한다는 말은 모순이죠. 가령 지금의 증류기술은 고려시대 몽고 침입 때 들어온 건데 언제부터 있던 것을 전통이라 해야 할까요. 지역 특산주가 성공하면 농업과 관광 문화를 이끌고 지역 경제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문경새재 관광객이 많아지는 계절을 맞아 오미나라도 분주하다. 와이너리 투어, 증류주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등을 할 수 있어 해마다 3만명이 다녀간다. 직접 방문해서 술을 사가는 비율이 가장 높지만 전화, 홈페이지 주문과 최근 군납까지 시작하면서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 좀더 대중적인 가격에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을 선보일 계획도 있다.

1907년 진천·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충주 감옥에서 옥사한 증조부의 대를 이어 ‘술로 독립운동 한다’는 자부심이 그에게 있지만, 후세에 우리 술을 잘 가르쳐서 대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재정적인 성공이 최우선 목표다. 아직은 적자지만 판매 추이가 좋아서 2년 내로 흑자 전환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이다.

술이 좋아 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할 터. 주량을 묻자 그는 “와인 한 병, 40도짜리 ‘문경바람’ 한 병 정도는 다음날에도 지장없다”고 답했다. 청주에 세계 술 문화 박물관 ‘리쿼리움’을 운영 중인 그는 좋은 술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술 문화로 이어지리라 믿고 있다.

“과음, 폭음하는 술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죠. 전통 술 문화도 아니고 쾌활한 글로벌 스탠다드 술 문화와도 괴리돼 있으니까요. 우리 농산물로 정성 들여 지역 특산주를 만들고, 좋은 술에 담긴 맛과 정성을 즐기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에 제 평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박수진 기자




오미나라 홈페이지 : http://www.omynara.com/

연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