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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2017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과학·공학하는 여성들의 생태계 만듭니다”

'로봇 하는 여자들의 네트워크' 표방 사회적 기업
화제의 여성

이공계 여성 네트워크 만든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과학·공학하는 여성들의 생태계 만듭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로봇 하는 여자들의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사회적 기업이 눈길을 끈다. 2015년 설립한 ‘걸스로봇’이다. ‘로봇’은 사실 이공계 전반을 뜻한다. 걸스로봇은 남성 위주의 이공계에서 소수자로 머물러 있는 여성들의 진출과 생존을 돕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진주(국어교육97-01) 걸스로봇 대표는 로봇 마니아다. ‘문과’ 출신이지만 과학고에 가려다 주위의 편견에 좌절하고, 공대에 진학해 배운 경험도 있다. 고등학교 과학반에서 곁고 틀던 남자 동기가 만든 로봇 ‘휴보’는 갓 주부가 된 그에게 일종의 각성을 안겨줬다. 로봇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자신 같은 ‘여성’들의 문제가 보였다. 지난 2월 24일 강남의 한 스타트업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비저너리(Visionary 선견자)’로 소개했다.

“제가 당장 기계공학과 코딩을 배워 로봇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에요. 대신 여성 공학자들의 삶을 지지하고 훌륭한 멘토를 발굴해 세상에 알리는 일, 교육자, 기업가, 행정가, 부모들을 설득해서 더 많은 여성들이 이공계 분야에 진출해 잘 살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는 강한 소명의식을 느낍니다.”

생태계를 만드는 걸스로봇의 활동은 이공계 여성들을 종과 횡으로 엮는다. 로봇 외에 다양한 과학과 공학 분야 연구자들을 한데 모으고 고등학생 소녀부터 박사급 연구자들까지 아우른다. 학회로, 대학으로, 이 동문은 흩어져 고군분투하는 여성 공학인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걸스로봇을 통해 처음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동안 어디서도 못했던 ‘버텨왔고, 버티고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외 대표 로봇 연구자들의 강연을 주선하고 로봇학회에서 여성 세션을 열었다. 카이스트와 포항공대 등 지역거점 이공계 대학의 여학생들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꾸리기도 했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미국의 한 로봇대회에서 발레 튀튀를 입고 로봇을 조종하던 소녀를 봤어요. 그 소녀 같은 친구들이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2, 3세대 여성 공학자들은 공부나 연구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가꾸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에 더욱 적극적입니다. 여성 연구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큰 폭발력을 가질 겁니다.”

걸스로봇은 지난 1년간의 실험을 모은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홈페이지를 열고, 오프라인에서는 여대생을 위한 ‘테크노 페미니즘’ 스터디와 소녀들을 위한 ‘핑크랩’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이 동문은 한때 ‘경단녀(경력단절여성)’였다. 대학을 전체수석으로 졸업하고 대기업을 거쳐 메이저 일간지 기자로 일했던 경력을, 두 아들의 엄마가 되면서 내려놔야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동굴에 들어가 있던 시간”. 자신에게 실망하고 워킹맘과 경단녀에게 너그럽지 않은 사회에 화도 났지만 “그 절망의 힘이 세상에 없던 일을 시작하게 했다”고 돌아본다. ‘걸스로봇’이 발견한 인재들에게 사재를 털어 장학금을 지원하는 그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고 한창기 선생의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데는 돈을 낙엽처럼 태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되새긴다.

“스스로 떳떳해지고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지금, 비로소 제 자신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을 잊을 때 매섭게 일깨워 주시고, 더러는 웃어 주세요. 그 힘으로 저는 계속해 보겠습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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