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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호 2016년 1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고 박영석 등산가 다큐멘터리 만든 신언훈 동문 인터뷰

“박영석 덕분에 대자연 경험…5년 후 또 찾아갈 겁니다”
고 박영석 등산가 다큐멘터리 만든 신언훈 동문

“박영석 덕분에 대자연 경험…5년 후 또 찾아갈 겁니다”

신언훈 감독이 그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다시 5년이 흘러 실종 10주기가 되는 해에도 ‘히말라야의 별’ 박영석 대장을 찾아나설 겁니다.”
고 박영석 탐험대장이 안나푸르나 남벽 코리아루트 개척에 도전했다가 후배 대원들과 함께 실종된 지 5년이 흘렀다. 실종 직후에 한 번, 그 이듬해에 또 한 번. 박 대장과 대원들의 흔적을 찾아 히말라야 일대를 뒤졌지만 시신은커녕 신발 한 짝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이 맞은 눈사태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사고지역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광활한 얼음산맥 어딘가로 완벽하게 사라진 탐험대. 다신 만나지 못할 사람이건만 신언훈(미학74-78) 감독은 박영석을 잊지 못한다. 2012년 수색에 가담하기도 했던 그는 박 대장과 대원들을 잊지 말자고, 4년 후 실종 5주기 때 또 오자고 동료들과 약속했었다. 지난 10월 방영된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마지막 산’은 그 약속을 지켜낸 결과물인 셈이다.

“추모원정대를 꾸려 등반에 나서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14명 이상의 대원들 일정을 조율해야 하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 기업으로부터 제작비 협찬도 받아야 하죠. 그 와중에 저는 프로그램 연출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할 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니었습니다.”

기업과 방송사를 설득하는 것이 난관이었다. 방송이 전제되지 않으면 기업의 협찬을 받기 어렵고, 기업으로부터 협찬을 받지 못하면 방송사의 방영시간을 따내기 어렵다. 기업도 방송사도 도리질을 쳤다. 이미 두 번의 수색이 실패로 끝난 마당에 또 다시 박 대장을 찾아나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무언가가 부족했다. 궁리 끝에 신 감독은 박영석 대장의 차남 성민 군을 내세웠다.

“2011년 박 대장 실종 당시 16세 학생이었던 성민 군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됐습니다. 어렸을 땐 고소증이 심해 높은 산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지만 한라산 등산·국토순례 등 훈련을 거쳐 이번 추모원정에 참가할 수 있는 몸을 만들었어요. 아버지의 마지막 산행을 뒤쫓는 아들, 그 애끊는 부자간의 정을 기획 의도로 제시하자 도리질 치던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기업과 방송사를 설득한 거죠.”

15년 간 함께하며 다큐 제작 실종 5년만에 추모원정 나서

신 감독은 1997년부터 2011년까지 박 대장의 탐험을 목격하고 기록해왔다.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영석 탐험대장을 대중에게 널리 각인시켰다. SBS ‘히말라야의 사나이’ 시리즈 14편, 박영석 관련 특집 다큐멘터리 12편을 기획·연출했다. 2000년, 신 감독은 히말라야에 첫발을 디뎠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그가 박영석과 동행하는 일은 무척 고됐다.

“당시 소속사인 SBS는 강하게 반대했어요. 안전도 문제였지만 책임프로듀서가 한 달씩이나 자리를 비울 순 없다는 거였죠. 그런데 제가 무조건 가겠다, 출장비 안 줘도 좋다 하고 와 버린 거예요. 무턱대고 와서 첫 등반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15년 세월 생사고락을 함께한 탐험가와 그 기록자는 피를 나누지 않았을 뿐 형제나 다름없었다. 일에 있어 다른 파트너를 두지 않았고, 부득이 타 방송사에 출연하게 됐을 땐 미리 양해를 구했다. 두 사람은 은퇴도 함께하기로 했었다. 2012년 로체 남벽 등반을 끝으로 각자의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기로.

“박영석을 보면 시시포스가 떠올라요. 아무리 힘들게 정상에 올랐다 해도 도로 내려와야 되는 게 산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등반은 시시포스의 형벌과 비슷해요. 박영석은 그 형벌 속에서 어떤 쾌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동반 은퇴 약속도 저버린 채 산으로 떠났고, 그가 생전에 예감했던 운명대로 산에서 최후를 맞았죠.”

말을 맺는 신 감독의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박 대장이 있어 인생에 다시없을 모험과 대자연을 경험했다는 신 감독은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의 이사를 맡아 추모비 건립, 박영석관 개설 등 다양한 사업을 해왔다. 내년 12월엔 상암동 노을공원에 박영석기념관이 완공될 예정이다. 망각의 늪에서 박영석을 건져내기 위해 분투하는 신 감독 또한 시시포스를 닮아있었다. 나경태 기자 

신언훈 감독(왼쪽)과 박영석 탐험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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