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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호 2016년 7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독일문학의 대가 전영애 동문

정년기념 고별강연 감동 전해


전영애 동문이 정년 기념 고별 강연을 하고 있다.



독일문학의 대가 전영애 동문

"글 배우고 익혔으면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정년기념 고별강연 감동 전해
“괴테는 내 삶 자체, 연구계속”



“대학 시절 독문학을 택했지만 확신이 없었지요. 이제는 좀 더 선명히 보입니다. 전공이라는 큰 일과 나의 관계를 만드는 것은 큰 산 하나를 넘는 어려움과도 같고, 산을 트집잡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6월 15일 모교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독일명작의 이해’ 마지막 강의. 올해 정년퇴임을 앞둔 전영애(독문73졸) 모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겸허하게 지난날을 돌아봤다. 괴테 연구자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의 ‘괴테 금메달’을 동양인 최초로 수상했던 그다.


전 동문의 강의 ‘독일명작의 이해’는 모교 학생들에게 명강의로 통했다. ‘나의 책들, 나의 길들’을 주제로 열린 이날 공개 고별 강의에 150여 명이 모였다. 스무 해에 걸쳐 연을 맺은 제자들이 직접 준비하고 선후배와 동료, 출판사 관계자도 함께했다. 교양 과목이지만 학생들은 매 학기 자신만의 책 한 권을 엮어낼 정도로 성실히 임했다. 그 책들이 강연장 앞에 은사를 배웅하듯 빼곡이 놓여 있었다.


전심으로 가르치고 배워온 20년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자리, 전 동문은 ‘마지막 강의’의 수강생들에게 또 한 권의 책을 선물했다. 그간 냈던 책의 후기들을 묶어 만든 ‘맺음의 말’이었다.


“어두운 삶을 헤쳐가는 방법이 배운 글을 읽고 쓰는 것이었습니다. 뭐든 배워 스스로 깨쳐보고자 읽고, 옮겼지만 한 권의 책이 저절로 나오는 법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죽겠구나 싶은 즈음에야 나왔습니다.”


전 동문은 ‘괴테와 발라데’, ‘서·동 시집 연구’와 같은 연구서와 여러 시집을 펴냈다. 60여 권의 번역서 가운데는 국내 최초로 완역한 ‘괴테 시 전집’과 ‘데미안’, ‘변신’ 등의 독일 명작이 있다. 각 책의 후기는 곧 치열한 삶의 기록이었다. 석사 졸업 후 어려운 형편과 여성 연구자로서 시대적 한계에 부딪혀 막막하던 시절, “누가 손가락 하나만 잡아준다면 어떻게든 살아볼 텐데” 싶던 때 첫 번역인 평전 ‘카프카’가 나왔다.


어렵사리 독일 유학을 떠났을 때는 독일 시인 파울 첼란의 시를 읽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첼란의 순수시에 고국에서 일어난 광주민주화 운동이 겹쳐 보이던 때다. “누구에게나 고문같은 시절이었다”던 전 동문의 목소리는 다소 떨렸지만 “카프카며 첼란 같은 밀도 높은 문학으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음은 큰 행운이었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후 분단국의 독문학도로서 분단문학에 관심을 갖던 중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시대의 변화를 목도하면서 그동안 부끄러움에 쓰지 못했던 시가 쏟아져 나왔다.


괴테 공부에 들어선 것도 독일 시로 연구 방향을 돌리면서였다. ‘서·동 시집' 번역을 시작으로 괴테 독회 모임을 통해 방대한 작품들을 함께 읽었다. 시들을 읽으며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시를 쓸 수 있었는가’ 의문이 생겨 ‘파우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퇴임 후 그는 ‘파우스트’ 원전을 새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전 동문은 스승으로서의 당부 또한 잊지 않았다.



“글 배우고, 글 읽었으면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주변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줄도 알아야 하지요. 의젓이 살아야 합니다. 상처 받았다고 징징거리고, 피해자의 논리 뒤로 숨는 유아적인 태도가 우리 삶의 자세일 수는 없습니다. 요즘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우리가 고쳐 가야죠. 지칠 때는 ‘여백서원’에 와서 숨 한번 돌리십시오.”


여백서원은 그가 2014년 경기 여주에 사재를 털어 만든 후학과 시를 위한 공간이다. 제자들은 물론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 외국인 등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일반 공개하며 파우스트 낭독회도 계획돼 있다.


“독일 속담에 ‘만사에, 모든 것에, 하나의 끝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치겠습니다. 큰 사랑 감사합니다.” 때로는 웃음이 흐르고, 때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던 전 동문의 마지막 수업은 오래도록 쏟아지는 박수 속에 끝을 맺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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