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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호 2016년 3월] 문화 신간안내

저자와의 만남 : '김광석과 철학하기' 펴낸 모교 기초교육원 김광식 교수

김광식 교수, 김광석 노래에서 행복의 철학을 탐구하다


김광식 교수, 김광석 노래에서 행복의 철학을 탐구하다



김광석과 철학하기
김광식 기초교육원 교수 <김영사·1만3천8백원>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2009년 서울대 교양과목 ‘철학개론’ 강의 첫날. 강의실에 들어온 모교 기초교육원 김광식(철학83-87·아래 사진) 교수는 말없이 노래 한 곡을 틀었다. 김광석의 ‘거리에서’였다. 노래가 끝난 후 그는 학생들에게 ‘이 가수를 아느냐’고 질문했다. 의외로, 20대인 학생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김 교수는 ‘거리에서’의 가사 중 ‘꿈결’이라는 단어를 짚었다. 꿈과 현실의 넘나듦, 덧없음을 지닌 ‘꿈결’을 통해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경계에서 균형을 잡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철학’을 설명했다. 뜨거운 감성의 노래와 차가운 이성의 철학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김 교수가 최근 펴낸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이날의 강의에서 시작됐다. 매 강의시간 그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려주고 노랫말 속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철학을 가르쳤다. 이어 학생들에게 ‘철학 카페’ 방식으로 각자의 고민을 철학으로 해결하는 발표와 토론 수업을 하게 했다. 모교 학부와 평생교육원은 물론 TV, 라디오와 청소년 특강을 통해서도 열렬한 호응을 얻은 강의 내용을 한 권의 책에 엮었다.


왜 김광석일까. 2월 29일 모교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저자는 “독일 유학 시절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그의 노래 속에서 슬픔과 아픔, 뿌리 깊은 불행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궁극의 학문인 철학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바로 그 주제였다.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는 철학은 아무 소용없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도 그를 북돋웠다. 여기에 강의를 하면 할수록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김광석 노래의 힘’을 느꼈다.


“철학은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삶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그 도움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지 못하죠. 일단 다가서야 철학이 능력을 발휘하지 않겠어요. 김광석의 도움이 없인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자는 귀에 익은 김광석의 곡들에서 철학적 키워드를 찾아내 고대, 근대, 현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열두 명과 짝지었다.


목적은 ‘흔들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이등병의 편지’에서 거울을 통해 짧게 잘린 머리를 마주하는 낯섦은 칸트의 인식론과 ‘자기비판의 행복론’으로 이어지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절절한 사랑은 ‘불안이 행복을 낳는다’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통해 ‘희생과 의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 강의는 노년층의 뜨거운 공감을 얻기도 했다. “행복은 맞춤옷과 같아서 이 중 자신의 삶의 모양에 맞는 행복 철학을 고르면 된다”는 저자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모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 독일 베를린공과대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각종 철학 콘서트와 온·오프라인 철학카페(서울 홍대 카페 ‘루치아’, 네이버 카페 cafe.naver.com/philocafe) 등을 열고 거대 담론보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철학, 친근한 철학을 지향해왔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자신의 사상인 ‘몸의 철학’을 소개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몸이며, 행동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근육’이 몸에 배게 하라고 주문한다.


책 속에는 서울대 학생들이 저자에게 보내온 고민 상담 편지도 종종 등장한다. 학업과 취업, 연애 등 내용은 달라도 결국 ‘불안’하다는 고민들이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왜 그것을 고민으로 여기는가’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한바탕 공방을 마치고 나면 불안은 뿌리까지 해체돼 사라지고, 명쾌한 답을 얻은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시원해진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철학 상담의 효과다.


마지막으로 83학번 김광식이 ‘82학번 김광석’에게 건네는 한 마디를 부탁했다.


“학번은 다르지만 동갑내기니까 말을 놓을게. 광석아, 잘 있니? 함께해 행복하다. 난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을 생각으로 다독이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이 있어 생각만큼 다가가기 쉽지 않더구나. 네 목소리에 담긴 애틋한 감성이 그들의 철옹성 같던 마음의 벽을 녹여줄 땐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젠 우리의 책을 읽고 너의 깊은 슬픔이나 아픔도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2016년 네가 떠난 지 20년 만에, 광식이가 광석이에게.”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