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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2016년 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싱가포르에서 금융보다 제조업 육성책 배울점 많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싱가포르에서 금융보다 제조업 육성책 배울점 많다”


“저출산 등 인구문제 30년은 바라보고 대책 세워야”
베스트셀러 ‘김우중과의 대화’, ‘금융전쟁’ 집필




싱가포르는 고령화, 저출산,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국가로 손꼽힌다. 1999년부터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신장섭(경제80-86) 동문은 “싱가포르는 1990년경부터 고령화 문제 등을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 때부터 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며 “장기적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정책을 세우는 싱가포르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에서 금융을 배우기 위해 싱가포르를 많이 찾지만 오히려 싱가포르의 제조업 육성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고 조언했다. 이메일로 신 동문에게 난국을 헤쳐 나갈 견해를 청했다. 신 동문은 ‘금융전쟁’, ‘김우중과의 대화’ 등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경제학자다.



-근황이 어떻게 되는지.
“여기는 1월 둘째 주에 학기가 시작한다. 강의한 지 몇 주가 지났다. 여기 온 지 이제 17년 째다. 처음 올 때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벌써 대학 졸업하고 한국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싱가포르국립대와 인연이 궁금한데.
“우연하게 싱가포르 대학 웹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내 전공분야 교수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국제시장에서 내 몸값이 얼마나 되나 알아보자’는 생각에서 지원했는데 덜컥 채용이 됐다. 그 전 직장(매일경제신문)에서 해야 하는 일도 있고 해서 1년여를 끌다가 1999년 가을에 싱가포르로 왔다. 현재 ‘기술과 혁신’(Technology and Innovation), ‘동아시아 경제성장론’(Economic Growth in East Asia) 등을 강의하고 있다.”


-그곳 학생 수준은 어떤가.
“처음 여기에 올 때는 싱가포르 대학생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을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가르쳐 보니 상층부에는 굉장히 똑똑한 학생들이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모교 경제학과 학생들보다 좀 떨어지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싱가포르는 5백만 인구에서 뽑힌 학생들이고 한국은 5천만에 가까운 인구에서 뽑힌 학생들이니까 평균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대학을 졸업한 뒤 싱가포르 대학생들이 서울대학생들보다 훨씬 취직을 잘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 싱가포르라는 브랜드, 싱가포르국립대라는 브랜드가 한국을 앞서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싱가포르국립대와 비교해 서울대는 어떤 것 같나.
“서울대의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는 솔직히 거의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대학 교수들이 연구 못지않게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것 같다. 대학에 학비를 내는 부모들이나 정부가 세금으로 대학을 지원해줄 때에는 연구보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 달라는 요구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학들이 국제적인 순위 경쟁에 너무 매달리면서 연구와 교육의 비중이 소비자들 요구와 거꾸로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싱가포르 생활에서 배우는 게 있다면.
“싱가포르는 장기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국내서는 고령화, 생산인력 정체 등의 인구 문제가 이제야 부각되는데, 인구 문제는 30년은 바라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사안이다. 싱가포르는 1990년경부터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 때부터 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덕분에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가 제일 잘 되어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많은 중요한 일들이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꾸준히 해나가야지만 결과가 잘 나온다.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체제를 다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지금 거꾸로 정치판이나 금융시장의 기업실적 평가 등이 갈수록 단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싱가포르가 금융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어떻게 되나.
“싱가포르의 금융을 배우겠다고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는데, 금융중심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동남아의 금융중심지였고, 그 기반 위에서 금융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싱가포르의 금융에서 배울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싱가포르의 제조업 육성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가 넘었지만 제조업을 적극 육성하고 국민총생산 대비 22% 가량을 제조업이 담당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고부가가치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큰 나라에게는 제조업 육성이 더욱 중요하다. 금융도 투기적인 부문보다 산업과 ‘윈-윈’(win-win)할 수 있는 부문을 더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국제 금융 인재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싱가포르에서 보면 성공한 한국계 금융인들이 많이 있다. 외국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도 있지만 국내에서 경험을 쌓은 뒤 나와서 성공한 사람도 많다. ‘한국의 금융경쟁력이 우간다보다도 떨어진다’고 자괴하는언론보도가 있던데, 그건 말도 안 된다. 한국 금융인들이 상당히 국제화되어 있다. 영국이 금융이 많이 발달한 나라지만, ‘금융인재’라고 하는 사람들을 별도로 키웠기 때문이 아니다. 역사학, 고전학과 출신이 금융기관에 제법 뽑힌다.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런 학과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갔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이 사람들을 뽑아 쓰는 거다. 서울대가 국제금융인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루두루 역량을 갖추고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잘 길러낸다는 목표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자 생활을 오래 했는데, 학자로 변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기자생활 중간에 해외연수 갈 기회가 생겼는데, 장학금이라든지 다른 여건들이 겹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 때는 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좋은 경제 칼럼니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신문사에 돌아와서 5년 가까이 지나니까, 다른 기회도 생기고 생각도 좀 달라진 부분이 있어서 학자의 길로 가게 됐다. 기자 생활을 한 경험도 있고, 교수가 될 때 마음먹은 것도 있고 해서 학문과 현실을 연결시키는 연구를 해왔다. 그것이 쌓이다 보니까 좋은 평을 받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금융전쟁, 김우중과의 대화 등 많은 책을 집필했는데. 준비 중인 책이 있나.
“연구하는 것이 직업이니까 몇 가지 주제를 놓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책을 내는 것과 관련해서는 금융전쟁의 후속편을 준비하고 있다.”


-‘김우중과의 대화’가 큰 화제가 됐다. 지금도 연락하나. 김 회장의 공과에 대해 평해 달라.
“지난 주말에 하노이에 가서 김 회장님을 만나고 왔다. 한국에서나 베트남에서나 싱가포르에서나 기회될 때에 계속 만난다. 연말에 팔순을 지내셨는데, 남은 여생을 청년사업가 양성프로그램인 ‘글로벌YBM’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 하노이에서 만났을 때 그 다음 날에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반둥에 간다고 하더라. 글로벌 YBM의 인도네시아 프로그램을 새로 열었는데, 학생들도 격려하고 현지기업인들도 만나러 가는 거다. 대우그룹을 되살리지는 못하더라도 대우 정신을 가진 청년사업가들을 잘 만들어내서 대우인들을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우중과의 대화’ 책을 내면서 부제를 ‘세계를 경영한 민족주의자’라고 붙여서 출판사에게 줬다. 그런데 출판사에 그렇게 하면 책이 잘 안 팔린다고 해서 그 말은 서론의 제목으로 들어갔지만 (책 표지의 부제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로 출간) 나는 그것이 김우중 회장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경영이 거의 열매를 맺을 때쯤 해서 아시아 금융위기의 파도를 만나 좌초됐지만 김 회장과 대우에 대해 역사적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우 흥망이 한국현대경제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분수령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앞으로 좀 더 많은 연구와 논쟁이 벌어졌으면 한다.”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경제학 강의 중에서는 임원택 교수님의 ‘경제사상사’와 조 순 교수님의 ‘경제학 고전강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임원택 교수님은 ‘제2 자본론’이라는 책을 쓰실 정도로 마르크스와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를 자신의 체계를 만들어 극복하려고 했다. 실제로 극복했는지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기상과 야심에 감탄했다. 조 순 교수님은 한학자답게 경제학 고전을 읽으면서 한학 고전에 나와 있는 문장을 연결시키면서 설명해주셨던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갖고 있는 슘페터의 ‘경제발전론’ 책에는 조 순 교수님께서 당시 강의 시간에 말씀하셨던 논어 관중편 얘기가 여백에 적혀 있다.”

 
-경제학자로서 사명이라고 할까, 왜 경제학자가 됐나.
“대학교 때 경제학을 택한 이유는 ‘경제’의 원래 한자어인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말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세상과 사람을 다스리는 학문이라는 것이 굉장히 웅대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경제학과에 들어와서 실제로 배운 내용들은 그리스어 어원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의 ‘절약’이라는 뜻에 더 가까운 최적화 등을 주로 다루더라. 그래서 경제학에 흥미를 잃기도 했다. 경제학은 현실 학문이다. 경제학자들 중에서 ‘경제학’과 ‘응용경제학’을 나누어 얘기하는 분들이 많고 경제학과조차도 그렇게 나뉘어져 있는 곳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나뉜 것 자체가 현재 경제학계가 갖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은 ‘순수경제학’을 응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론과 현실을 처음부터 결합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학자들이 추구해야 할 바라고 생각한다.”


-올해 국내 경제상황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한데.
“많은 분들이 국내경제만 자꾸 어렵게 보는데,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다 어렵다. 어려울 때에 나만 어렵다고 생각하면 극복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잘못된 대책이 나올 수도 있다. 다함께 어려운 국면을 지나가는데 함께 잘 극복하는 방안을 찾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혹시 주식을 하나.
“현재 주식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금융전쟁’ 책에서 내놓은 ‘금융명제 4’가 ‘음모론을 믿어라’이다. 금융시장에는 각종 음모, 작전이 횡행한다. 그것이 다 성공하지는 않지만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금융시장에 접근해야지 교과서대로 ‘펀더멘탈’에 따라 금융상품 가격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돈을 벌기가 어렵고, 제대로 된 정책도 나오지 못한다. 고급정보와 네트워크에 접근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주식투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저를 찾아와서 어느 학과를 가는 게 전망이 좋은지를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것 따지지 말고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잘하기만 하면 어느 분야에서건 어느 정도 이상 살 수 있다. 내가 좋아해야만 어느 분야건 잘할 수 있다. 시류에 따라서 월급 많이 준다든지, 다른 조건이 좋다는 것 등을 먼저 따지면 그 후에 계속 잘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반면 처음에 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거기서 잘하면 만족감도 있고 더 잘될 수 있다. 특히 서울대학생들은 역량이 어느 정도 이상 되고, 사회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그 역량을 잘 찾아서 본인도 크고 사회도 클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취직 잘하겠다’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세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남주 기자>




신장섭 교수는


매일경제신문 기자서 경제학자 변신


신 동문은 한국 현대경제사를 연구하는 경제학자이다. 한국 경제의 캐치업(따라잡기)에 관한 국제비교로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일본과 한국의 캐치업 과정을 19세기 후반 유럽의 캐치업 과정과 비교했고, 기술적·제도적 요인들이 캐치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기 위해 반도체산업과 철강산업을 사례연구했다. 그 후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부문 세계 1등 유지에 관한 ‘선발주자 이점’으로도 연구를 확장했다.


1997년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에 들어간 뒤에는 IMF처방 및 구조조정에 비판적인 글을 쓰고 한국 경제의 대안을 모색해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국제금융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5대 금융명제’를 내놓고 금융위기의 원인과 대응에 관한 정책적 대안들을 제시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비상근 2008∼2009)으로도 일했다.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경제부차장 등을 역임했다.

1999년부터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김우중과의 대화’ (2014 북스코프),

THE GLOBAL FINANCIAL CRISIS & THE KOREAN ECONOMY (2014, ROUTLEDGE), ‘금융전쟁’(2009, 청림), ‘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2008, 청림), ‘삼성 반도체 세계 일등 비결의 해부’(2006, 삼성경제연구소), ‘RESTRUCTURING KOREA INC.’(2003,ROUTLEDGE, 공저), ‘한국 경제 제3의 길’(1999, 중앙M&B), ‘THE ECONOMICS OF THE LATECOMERS’(1996, ROUTLEDG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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